수십만원 식당 1분 안돼 예약 끝... 과시욕이 만든 과소비 사회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 오후 6시가 넘어서자 100여 석이 모두 만석이다. ‘몇 달 전 예약해도 자리가 없다’고 알려진 곳이다. 1인당 저녁 식사 가격은 200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매일 다르게 돈을 받는다. 12일 환율로 계산하면 1인당 26만원 수준, 두 사람이 오면 저녁 한 끼에만 52만원이 넘는데도 빈 좌석이 없는 것이다.
고물가와 경기 불황으로 소비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대한민국은 ‘과시 소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대당 평균 가격이 3억원에 달하는 벤틀리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810대로 일본(727대)을 앞섰다. 명품 중에서도 수억원씩 하는 콘스탄틴·오데마 피게·프레드 같은 초고가 시계·보석 판매 증가세가 가파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국가별 명품 소비 지출액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인당 325달러(약 43만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정부는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4%에서 2.2%로 낮추며 민간 소비 위축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초고가 소비 시장의 모습은 다르다.
이런 ‘과시 소비’는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범한 소비자들도 이를 따라 하느라 허리가 휜다. 작년 10월 한 통신사의 아이폰15 사전 예약에선 기본형 대신 1대당 150만원이 훌쩍 넘는 고급 모델 비율이 80%를 기록했다. 이런 ‘과시 소비’ 때문에 일부는 빚을 지고, 이런 소비를 감당하느라 출산을 꺼리는 등 사회적 문제까지 되고 있다.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는 “자신의 소득에 맞게 구매를 하는 ‘평균적 소비 행태’가 사라지고, 극단을 넘는 초극단 소비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모임 등을 할 때 중산층도 종종 찾는 호텔 뷔페 가격도 치솟고 있다. 서울신라호텔과 롯데호텔 등의 뷔페 저녁 가격은 18만~19만원으로 거의 20만원에 육박한다. 딸기로 만든 디저트를 먹는 딸기 뷔페는 1인당 입장료가 11만원을 넘는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 신사동 한 전시회. 전 세계에서 71병만 생산된다는 발베니 위스키 60년 두 병이 공개됐다. 한 병당 가격은 3억3000만원. 1시간도 안 돼 두 병 모두 팔렸다. 이 제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만 300여 명이었다. 전시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요즘 일부 유명 ‘스시 오마카세(주방장이 알아서 음식을 내는 방식)’ 식당은 특정 날짜와 시간에 예약을 받지만, 1분도 안 돼 예약이 끝난다. 이런 치열한 예약 전쟁을 대학교 수강 신청에 빗대 ‘스강(스시+수강) 신청’이라고 불린다. 유명 한우고깃집 예약은 ‘우강신청’이라고 불린다. 워낙 예약이 어렵다 보니, 예약권이 5만원 등으로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이마저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로 팔린다.
고물가·고금리로 소비자들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지만, 극초고가(極超高價) 상품일수록 더 잘 팔리는 역설은 계속되고 있다. 비쌀수록 가기 힘들고, 가기 어려울수록 그 식당은 더 유명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초고가 식당일수록 빈자리가 없고, 수억원대 수입 자동차의 판매율은 30%가량씩 급증한다.
◇과시 소비 공화국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뮤지컬 티켓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오페라의 유령’ VIP 좌석 가격은 19만원. 그동안 뮤지컬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5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주말 좌석은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식당 고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수원의 한 유명 고깃집은 1인분 가격이 10만2000원에 이른다. 서울 광화문에 새로 문을 연 한 고깃집은 10만원 미만 메뉴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이곳 주인 B씨는 “대부분 법인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가격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비쌀수록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초고가 제품 판매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국내 편의점도 100만원이 넘는 위스키, 고가 와인을 판매한다. 국내 매출 1위 편의점인 GS25는 지난해 4400만원짜리 ‘고든앤맥페일 플래티넘 주빌리 글렌그란트1952′와 2000만원이 넘는 ‘롱몬 1996′ 등을 포함해 100만원 이상 고가 위스키를 400여병 팔았다. 신세계백화점에선 2023년 와인 매출이 전년과 비슷했지만, 100만원대 고가 와인만 취급하는 ‘버건디앤’ 매장의 매출은 50% 넘게 증가했다. 명품 중에서도 초고가 제품의 매출 증가율이 더 가파르다. 갤러리아 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국내 명품 시장 가운데 프레드, 까르띠에 같은 초고가 보석·시계는 작년 한 해 5억원 넘는 제품이 수십개 이상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가 과시욕 자극
초고가 명품 수요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에선 특히 두드러진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선물·접대 때 취향보다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명품을 과시하는 것에 부정적이다’라고 대답한 한국인은 22%로 일본(45%), 중국(38%)에 비해 16%포인트 이상 낮았다. 전 세계 17국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발표하는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도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을 제외한 14국은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요소로 ‘가족’을 꼽았고, ‘직업적 성취’가 둘째 요소라고 답했다. 미국 CNBC 방송은 “한국의 명품 소비 증가는 사회적 신분 상승 욕구와 과시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국가보다 높은 소셜 미디어 이용률도 ‘과시 소비’의 원인으로 꼽힌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뽐내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 그릇에 10만원 넘는 호텔의 ‘빙수’를 시켜놓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DMC미디어의 ‘소셜 미디어 시장 및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셜 미디어 이용률은 89.3%로 아랍에미리트(99%)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53.6%)의 약 1.7배로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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