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바위산 품은 쪽빛 바다, 고요한 전나무숲길

글 사진 강릉·평창=손효림 기자 2024. 1. 2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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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겨울철 빛나는 강릉-평창
강원 강릉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층층이 다른 색깔로 다져진 바위와 우뚝 선 소나무가 짙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해안 경계를 위한 군사지역이었던 이곳은 2016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푸른빛이 짙은 바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전나무 숲길, 고즈넉한 한옥 고택….
겨울에 더 운치 있는 곳이다.
강원 강릉, 평창에서는 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KTX 자동차 버스까지, 갈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고 가는 길 역시 수월해졌다.
마음을 비우고 싶은 이, 혹은 꽉 채우고 싶은 이,
눈밭을 만끽하고 싶은 이 모두 반길 만한 곳이다.》

● 바다 위 걷고, 한옥 정취 음미

강릉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해안을 따라 자리한 계단 모양 지형인 해안단구에 조성돼 탁 트인 바다를 바로 눈앞에서 보며 걸을 수 있다. 생김새가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비슷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심곡항∼정동항에 마련된 탐방로를 11일 천천히 걸으니 짙푸른 바다가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거리에 따라 남색, 옥색이 층을 이루며 영롱한 빛을 띠는 바다는 그저 하염없이 보게 된다.

국내 유일의 이 해안단구는 약 230만 년 전 지반이 융기해 해저 지형이 육지화됐다. 200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걸어서 왕복 2시간가량 걸리는 2.86km 길이의 탐방로는 구간에 따라 철제 혹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철제 구간은 바닥이 직사각형 그물 모양으로 돼 있어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광경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굽이 있는 신발은 피하고 운동화처럼 바닥이 평평하고 걷기 편한 신발을 신는 게 좋다. 오랜 시간 파도에 다듬어진 동글동글한 돌들이 정겹다. 거칠게 깎아지른 듯 층층이 다른 색으로 다져진 바위와 바위산도 눈길을 끈다. 바닷바람에 제법 쌀쌀했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몸이 더워졌다. 크게 숨을 쉬며 청명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게 된다. 구불구불 이어진 탐방로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매번 새로운 광경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다.

탐방로는 북쪽으로 0.64km 구간을 연장하는 공사를 지난해 12월 마쳤다. 올해 3월쯤 새 구간을 운영할 예정이다. 카페도 열 계획이어서 향긋한 차와 함께 느긋하게 정취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4∼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11∼3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운영한다. 7∼10월에는 오전 8시에 개장한다. 입장료는 5000원(성인 기준)이다. 반려동물은 동반할 수 없고, 탐방로에서 취식은 금지돼 있다.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으로 불린 강원 강릉선교장은 시간대별로 전문 해설사가 설명을 해준다.
바다 내음을 가득 품은 뒤 한옥 고택으로 향했다. 먼저 간 곳은 강릉선교장. 효령대군 후손인 이내번(1692∼1781)이 세웠다. 집 앞이 경포호수여서 배로 다리를 만들어 호수를 건너다녔다고 해 선교장(船橋莊)이라 부르게 됐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러 온 많은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하느라 꾸준히 건물을 증축한 결과 현재 모습을 갖췄다. 한옥스테이도 운영한다.

선교장 둘레길은 청룡길과 백호길로 나뉜다. 행랑채,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했던 중사랑을 지나 소나무 숲길로 올라가니 선교장 전경이 보인다. 정갈한 한옥들은 몸을 낮춰 차분하게 땅에 내려앉은 듯 보였다.

허균·허난설헌 생가 터도 인근에 있다. 빼어난 문장가였지만 두 자식을 잃고 26세에 요절한 허난설헌의 동상이 객을 맞는다. 허균, 허난설헌과 이들의 아버지인 초당 허엽 등 문장이 뛰어난 다섯 명의 허 씨 오문장가를 각각 기리는 시비(詩碑)들도 볼 수 있다. 특히 눈길이 간 곳은 소나무숲이었다. 하늘 높이 우아하게 뻗은 적송들과 연한 분홍빛 노을로 물든 하늘, 잔잔한 경포호가 어우러진 풍경은 모든 생각을 잊고 오직 이 순간을 찬찬히 음미하게 만들었다.

● 월정사 전나무숲길, 고요 속 청명함

강원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길.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맑은 기운을 뿜어낸다. 하얀 눈이 길을 뒤덮어 초록빛이 더 또렷하다.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약 1km에 걸쳐 드높은 전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도깨비)와 김고은(지은탁)이 사랑을 확인한 곳으로, 국내에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눈이 내린 길을 12일 걸었다. 지인, 가족과 함께 온 이들도 가만가만 발을 내디디며 나무들이 뿜어내는 기운에 몸을 내맡긴다. 고운 빛깔의 새들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하늘에 작은 점을 찍었다. ‘나무는 정면이 없다//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나무는 언제 보아도//완성되어 있고//언제 보아도 다르다//나무는 경계가 없어서//자기에게 오는 모든 것들을//받아들여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달이 뜨면 달이 뜨는 나무가 되고//새가 날아와 앉으면//새가 앉은 나무가 된다//나무는//바람의, 눈송이들의, 새들의//시다’(김용택 ‘새들의 시’)

회색 법복을 입고 털모자를 쓴 스님은 미끄러운 눈길에도 아랑곳없이 바람처럼 가볍게 걸어간다.

월정사 계곡을 덮은 눈은 바위 모양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연이어 그려 놓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금강교는 한없는 곡선이 펼쳐진 풍경과 맞춤으로 어우러졌다.

평창송어축제에서 맨손으로 송어를 잡고 활짝 웃는 참가자들. 평창송어축제위원회 제공
색다른 체험을 해보고 싶다면 평창송어축제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에서 28일까지 열리는 평창송어축제에서는 송어 얼음낚시와 송어 맨손잡기, 실내낚시 등을 할 수 있다. 얼음낚시는 얼음판에 직경 15cm가량의 구멍을 뚫어 송어를 잡는다. 목도리와 귀마개, 장갑으로 단단히 채비를 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동그란 구멍에 낚싯대를 넣고 송어를 기다리는 모습이 새하얀 얼음판 위에 드넓게 펼쳐졌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구멍을 뚫어져라 보던 한 아이가 “방금 송어 지나갔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 낚시터는 추위에 약한 어린이, 어르신이 애용하는 편이다. 처음 송어잡이에 나선 이들을 대상으로 송어 낚시 교실도 열고 있다.

연어과 어류인 송어는 회, 구이, 매운탕, 튀김 등 여러 조리법으로 맛볼 수 있다. 다 큰 송어는 길이 30∼40cm, 무게는 800g가량 된다. 살은 주홍빛이다. 회는 비린내가 없는 데다 연하고 고소해 씹을수록 맛있다. 구이는 담백하고 깔끔하다. 부드럽고 고소한 송어 탕수육은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온몸으로 놀거리도 많다. 눈썰매를 비롯해 눈밭에서 래프팅을 하는 스노 래프팅, 얼음 자전거, 스케이트, 썰매, 범퍼카 등을 즐길 수 있다.

강원 지역 먹거리도 빠질 수 없다. 감자를 갈아 새알심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끓인 옹심이는 쫀득하니 씹는 맛이 좋고 담백하다. 장을 풀어 넣은 장칼국수는 칼칼하게 입맛을 돋운다. 강릉시 남항진 인근에 옹심이 식당이 많다. 강릉 초당두부마을 짬뽕순두부도 유명하다. 맵지 않으면서도 자꾸 숟가락이 가는 중독성 있는 국물에 보드라운 순두부가 속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든든하게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포만감을 선사한다. 삼겹살과 오징어를 붉은 양념장에 버무려 익힌 오삼불고기에, 간장을 조금 넣고 비빈 곤드레밥을 김에 싸 먹으면 그만이다.

한편 2024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대회가 19 일 개막해 2월 1일까지 강릉 평창 횡성 정선에서 열린다. 79개국에서 1803명의 선수가 참가하며 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컬링, 스키, 봅슬레이 등 경기를 한다. 경기는 무료로 볼 수 있다.

청소년올림픽 기간 강릉아트센터에서 여러 공연도 열린다. 국립발레단은 대표작 ‘해적’(31일)을 해설을 곁들여 선보인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작품 ‘브레이킹’과 ‘비호보’로 구성된 ‘HIP合’(23일)을, 국립오페라단은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오페라 여행’(27일)을 각각 무대에 올린다. 무료(1인 4장)이며 예매는 모두 마감됐지만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 수령하지 않은 티켓은 자동 취소돼 현장 대기자에게 배부한다.

글 사진 강릉·평창=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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