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징역 18년” 반도체 등 기술유출 막는다

조동주 기자 2024. 1. 20.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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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法 양형위 처벌강화 기준 의결
“기존 9년형 형량 낮다” 지적에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조항 신설
공청회 등 거쳐 3월 확정 예정
앞으로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유출범에 대한 처벌을 최고 징역 18년으로 강화하라는 대법원 권고가 나왔다. 초범이어도 실형 선고를 권고하고, 유출이 미수에 그쳤어도 빼돌린 기술을 완전히 반환해 폐기하지 않으면 형을 깎아주지 않기로 했다. 대법원의 양형 기준이 법정 최고형에 비해 턱없이 낮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일자 양형위원회가 권고 형량을 대폭 상향한 것.

19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상원)는 전날 전체회의를 열고 ‘지식재산·기술침해범죄 양형 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양형위는 별도 양형 기준이 없었던 ‘국가핵심기술 등 국외 침해’ 조항을 신설해 최대 징역 18년형까지 선고하도록 권고했다. 또한 기존엔 영업비밀 침해 행위와 같은 유형으로 묶여 최고 형량이 징역 9년에 그쳤던 산업기술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해서도 징역 15년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고쳤다.

그간 반도체 등 국내 기업의 핵심 기술을 나라 밖으로 빼돌리는 범죄가 끊이지 않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양형 기준이 낮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2019년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기술유출 범죄 형량이 늘었지만 정작 법원의 양형 기준은 그대로라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사례가 속출한 것. 하지만 이번 양형위의 결정으로 법원이 유출범에게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형위는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을 빼돌린 경우 초범이라도 정상을 참작하지 않도록 하고 집행유예를 제한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또한 유출 대상이 복제가 쉬운 디지털 설계도 등인 점을 고려해 유출 시도가 실패했더라도 피해물을 되돌려 받아 완전히 폐기된 경우에만 형을 줄이는 요소로 삼기로 했다.

유출된 기술의 금전 가치를 객관적으로 산정하기 어려운 특성을 고려해, 가중 처벌 대상에 ‘상당한 금액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특허권, 영업비밀, 기술 등을 침해한 경우’도 포함하도록 했다. ‘비밀 유지에 특별한 의무가 있는 자’의 범위에 거래처와 파견직원 등을 명확히 포함해 기술 유출 시 가중 처벌하도록 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청회 등을 거쳐 3월 25일 확정될 예정이다.

핵심기술 유출 초범도 실형… 거래처 직원도 가중처벌 대상에

[기술유출 양형기준 상향]
大法, 처벌강화 양형기준안 의결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기술 유출땐, 전과 없다는 이유로 집유 선고 못해
대법 “엄정한 양형, 국민 공감대 반영”… 산업계 “기술안보 장치 마련돼” 환영

“기술침해(해외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엄정한 양형을 바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상원)는 19일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유출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새 양형기준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초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의 핵심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유출돼 국가 경쟁력이 훼손되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법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아 처벌이 미약하다는 비판을 양형위가 전면 수용한 것이다.

● 초범도 가급적 실형, 거래처 직원도 가중처벌 대상

자료 : 대법원 양형위원회
이번 개정안은 국가핵심기술 유출사범에 대한 양형기준을 새로 만들고, 지금까지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분류돼 처벌이 약했던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따로 떼어내 최고 형량을 대폭 높인 게 핵심이다.

양형위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13개 분야 75개인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사범의 경우 △감경(징역 2∼5년) △기본(3∼7년) △가중(5∼12년) 영역으로 양형을 권고했다. 가중 처벌할 조건이 형을 깎아줄 조건보다 2개 이상 더 많으면 형량을 최고 1.5배까지 올릴 수 있다. 죄질에 따라서는 가장 엄중한 징역 12년의 1.5배인 징역 18년까지 선고를 권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양형위는 가중처벌 조건도 대폭 넓혀 현실화했다. 우선 기술 유출 시 가중처벌을 받는 ‘비밀 유지 의무자’의 범위를 ‘계약관계 등에 따라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거나 그에 준하는 경우’로 폭넓게 정의했다. 현재는 ‘대상기관 임직원’ 등으로 정의돼 있는데, 실제로는 거래처 직원이나 파견직 등을 통해서도 기술이 유출된다는 산업계 의견을 반영했다.

반면 유출범이 집행유예로 빠져나갈 구멍은 좁힌다. 초범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집행유예를 내릴 주요 사유에서 제외한다. 기술 유출범 대다수는 전과 없이 살다가 ‘한탕’을 노리고 기술을 빼돌리는데, 적발돼도 초범이라며 실형을 면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따랐다.

다만 법정 형량이 ‘3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규정된 국가핵심기술 유출사범을 양형기준상 최고 형량(18년)까지만 처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판사의 재량에 따라 이보다 강한 처벌을 내릴 수도 있다. 양형위 관계자는 “양형기준은 70∼80%가량의 일반적 사건에 대한 권고안”이라며 “원칙상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범에겐 유기징역 최고치인 징역 30년형까지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영업비밀 해외 유출과 동일하게 취급돼 최대 9년형에 그쳤던 산업기술 해외 유출도 양형기준이 별도로 생기면서 최대 권고형량이 15년형까지 높아졌다.

● 산업계 “핵심기술이 안보와 직결, 공감대 반영”

자료 : 대법원 양형위원회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인 기술이 고액 연봉을 받고 이직하는 전직 직원 등에 의해 중국 등 해외로 새 나가는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는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한국의희망 양향자 의원실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기술유출 적발 현황은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지난해 23건으로 증가세다. 최근 5년간 유출된 기술은 반도체가 38건(39.6%)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16건·16.7%), 자동차(9건·9.3%), 배터리(7건·7.2%) 등이 뒤를 이었다. 2016∼2018년 1건이었던 반도체 기술 해외 유출은 지난해 13건까지 늘었다.

이에 2019년 8월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됐지만 정작 관련 양형기준은 4년여 동안 마련되지 않았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맡았던 한 수사관은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하고도 집행유예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기술 유출이 잦았던 반도체업계를 포함한 산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적인 장치가 하나 더해졌다”고 평가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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