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 시대, 빈곤율은 OECD 1위…공적연금 강화해 복지 사각 해소를
초고령 사회의 그늘
그로부터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이 흘렀음에도 노인 자살 문제는 나아진 게 없다. 지난해 10~29세 청년은 10만명당 28.6명이, 70세 이상은 10만명 중 98.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흔히 자살하면 젊은 층의 극단적 선택을 떠올리지만, 평생 온갖 고난을 견뎌온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압도적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의 자살에는 주로 병들고 가진 것 없어 늘그막에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이타적 원인이 많다”고 말했다.
노인 빈곤과 이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노인은 더 늘어날 것 같다. 노인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는데, 노인들의 경제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에 따르면 올해 8월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다. 하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고금리·불경기에 노인들이 가장 먼저 쓰러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신청자 10명 중 4명(41%)은 60세 이상이었다.
미비한 연금제도, 의료비 등이 빈곤 심화시켜
전체 신청자 2만745명 중 60세 이상이 8504명으로 가장 많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증가세다. 파산 신청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부터 매해 25.9%→27.7%→31%→35.2%→38.4% 크게 증가했다. 이효선 한국노인상담센터 센터장은 “노인 파산이 늘고 있는 건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노후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파산 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정상담 등을 활성화시켜 위기 대응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낮은 출산율도 문제지만 고령사회 정책도 뒤로 밀려선 안 되는 시급한 과제”라며 “고령사회 정책은 노인 빈곤 문제를 중심으로 본격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건강·의료 문제로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와 배재윤 한국노인개발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 중 65세 이전 경제 활동 수행 경험이 있는 비율은 85.9%였다. 평균 경제 활동 기간은 23년 7개월이다. 은퇴 전 주된 직장에서 24년 가까이 일을 했지만 은퇴 후 빈곤층 추락을 면치 못한 셈이다.
이들이 노후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 주된 사유는 ‘건강 악화’(39%), ‘해고·명예퇴직’(26.1%)이었다. 이민아 교수는 “평균 수명은 올라가고 있지만 각종 질병으로 건강수명은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며 “노인 건강관리 체계를 보다 촘촘히 만들어가는 것이 노인 빈곤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2018년 기준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4.4세에 그친다.
그리스, GDP 16% 연금에 써…한국 4% 안돼
코로나19 이후 경쟁력이 뒤로 밀리긴 했지만 한국은 전 세계 13위의 수출대국임에도,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 기여도가 매우 낮다는 지적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이탈리아 등은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연금에 지출한 반면, 한국의 재정 비율은 4%에도 못 미친다. 허 교수는 “덴마크·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들은 우리보다 경제력이 앞서는 것이 아닌데도 정부가 이전소득이라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원한다”고 전했다. 공적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비정규직 등 저임금 노동자도 공적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 등에서 소외되는 빈곤층을 위해선 기초연금 지원을 더 두텁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초연금은 올해 33만4000원으로, 전년보다 1만2000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최소 생계비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해 적어도 최소 생계비는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정된 재원이 문제라면 계층을 세분화해 기초연금이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더 두텁게 주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기업 정년 연장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공론화를 통해 논의를 해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