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집 4만명, 하루 6600원 벌어…정부, 빈곤노동 악순환 고리 끊어야”
초고령 사회의 그늘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는 국내 폐지 줍는 노인의 고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배재윤 한국노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폐지 수집 노인이 전국 4만2000명에 육박한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폐지 수집 노인의 일자리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가 폐지 줍는 노인 연구를 시작한 건 2022년. 그는 “출근길에 폐지 수집 노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공적인 일자리로 흡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학계와 관계부처 등의 반응이 회의적이었다. “6·25 때부터 존재했다. 뚜렷한 대책이 없다” “자연소멸하게 놔둬라”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폐지 연구 계획이 일부 미디어와 정치권의 관심을 받으면서 조사가 급진전됐다.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 우선 폐지 수집 노인의 전국 실태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 큰 결실이다.
2022년 각 지자체를 통해 추산한 폐지 수집 노인 수는 전국 1만5000명 정도였으나, 지난해 전국 고물상을 중심으로 실태조사에 들어가자 전국 4만2000명에 육박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복지부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 전수조사를 통해 폐지수집 노인 지원 표준 조례(안)를 마련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더 높은 소득과 안전을 보장할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배 연구위원은 “폐지 단가 상향 등 활동 지원에 초점을 맞춰선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며 “우리 사회에서 폐지 수집 노인이 사라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국내 폐지 수집 노인이 왜 이리 많나.
A : “폐지 수집 노인들의 평균 연령이 76세다. 다른 대안이 없는 거다. 그 일 외에는 현금을 바로 만지기 어렵고, 다른 일자리 접근도 쉽지 않다. 사실 폐지 수집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고강도·저임금 노동이다. 어쩔 수 없이 빈곤 노동에 몰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신고 고물상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도 우리나라에 유독 폐지 수집 노인이 많은 배경 중 하나다.”
Q : 고물상이 문제라는 얘긴가.
A : “경기도(1만2989명), 경북(3514명), 충남(2852명)에 폐지 수집 노인이 많고 세종(97명)이나 제주도(347명) 등에 상대적으로 적다. 변수는 지역 고물상 수다. 고물상이 많은 곳에 폐지 수집 노인도 많았다. 현재 영세 고물상은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할 수 있고, 이들은 어르신들과 계약 관계도 없이 절반의 수익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신고 대상이어서 현황 파악도 쉽지 않다. 정부가 관리감독에 나선다면, 폐지 수집 노인은 내일부터라도 없앨 수 있다. 일본은 쓰레기를 공공재로 지정했다. 쓰레기가 공공재가 되면, 개인이 수집해서 팔 수 없다. 자원순환품 관리가 엄격한 유럽 등지에선 폐지를 수집해 빈곤 탈출을 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Q : 빈곤 노인을 위해서는 고물상이 필요하지 않나.
A : “당장은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결국 빈곤 노동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고리다. 제도권 일이 아니어서 다치거나 사고를 냈을 때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어르신들이 매우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Q : 폐지 수집 노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A : “어르신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단가 하락이다.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1.6%가 ‘단가 하락’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어 ‘경쟁심화’가 51%, ‘날씨’ 응답은 23%였다. 2018년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한 충격이 컸다. 2017년 ㎏당 144원이던 폐지 단가는 지난해는 74원으로 절반 가까이 폭락했다. 이 금액도 고물상이 절반을 가져가니, 어르신들은 ㎏당 30원대의 수입을 겨우 얻는 셈이다.”
Q : 일부에선 폐지 수집 단가를 지원하는 방안도 나온다.
A :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문제에 관해 어떻게 단가를 지원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 지난해 일부 지자체에서 산모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니 관련 업계가 사용료를 대폭 인상한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려면 보다 정교한 방식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노후 빈곤 문제는 민간시장에 맡기지 말고 공적 영역에서 책임지는 형태로 가야한다. 복지부는 상반기 지자체를 통해 상반기 폐지 수집 노인의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폐지 수집 노인 지원 표준 조례(안)를 마련할 계획이다. 관건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다. 만일 이번에 전수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3년 뒤 혹은 5년 후 또 실태조사를 반복해야 한다.”
Q : 복지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연계 계획을 내놨는데.
A : “노인 일자리가 지난해 88만개에서 올해 104만개로 크게 늘어난다. 폐지 노인 4만여 명을 흡수할 수 있는 규모다. 교통봉사 등 공익형 활동 영역에선 최대 월 29만원과 상해보험 가입을 지원한다. 근로 능력이 높은 노인에게는 사회서비스형으로 월 76만원의 소득 활동과 산재보험을 지원한다. 공공 일자리를 경험해보면 굳이 고강도의 폐지 수집을 고집하는 경우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폐지 수집 활동을 원한다면, 월 38만원을 받으면서 폐지를 줍는 ‘자원 재활용 시장형 사업단’에 참여하는 방안도 있다. 이러한 복지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연계 계획은 매우 고무적이다. 제도권 안에서 다른 일자리 경험을 가질 수 있고, 기타 복지서비스도 연계할 수 있다. 다만 노인 일자리로부터 얻는 수입은 용돈벌이 수준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노후에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국가에서 보장하는 제도적 개선이 바탕이 돼야 한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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