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 참사 시즌2' 일본, 이라크에 1-2 충격패! 한일전 결승 아닌 16강 조기 격돌 가능성 ↑ [아시안컵]
[스포티비뉴스=조용운 기자] 일본이 조 1위를 놓고 다툰 이라크전에서 고개를 숙였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끈 일본 축구대표팀은 지난 19일 카타르 알 라얀에 위치한 에듀케이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2차전에서 이라크에 1-2로 졌다. 전반 시작과 끝에 한 골씩 허용하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잃었다. 짧게나마 뒷심을 발휘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로써 일본은 조 2위로 떨어졌다. 앞서 베트남을 4-2로 제압할 때만 해도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리란 꿈에 부풀었다. 대회 전부터 이어오던 A매치 연승을 아시안컵 본선에서도 가져간 것에 한껏 들떴다.
일본은 대회 전부터 아시안컵 우승후보 1순위로 꼽혔다. 모리야스 감독과 2기를 보내고 있는 현재 결과가 빼어난 건 사실이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성과를 인정해 재계약을 체결한 모리야스 감독은 파죽의 A매치 10연승을 이끌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엘살바도르전(6-0)을 시작으로 페루(4-1), 독일(4-1), 튀르키예(4-2), 캐나다(4-1), 튀니지(2-0), 미얀마(5-0), 시리아(5-0), 태국(5-0) 등 대륙 및 전력에 상관없이 상대를 제압했다. 아시안컵을 대비해 1월 1일 안방에서 동남아시아 강호로 분류되는 태국을 맞아 출정식을 펼친 경기에서도 한 수 위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여기에 아시안컵 최종 모의고사였던 요르단과 비공개 연습경기에서도 6-1로 이기는 힘을 과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한 교체 선수 인원을 넘겨 요르단전은 정식 A매치로 인정되지 않았어도 지난해부터 이어온 대표팀 경기 연승 행진을 지속하며 아시안컵 스타트를 끊었다.
이러한 행보에 대외평가는 모두 일본의 우승을 기정사실처럼 여겼다. 일본 언론 '풋볼 채널'은 "일본이 10연승을 달리며 45골을 넣고 있다. 이긴 팀 중에 독일이 있다. 독일까지 압도한 사실이 대단하다"는 루마니아 언론 'Digi Sport'의 호평을 크게 보도했다. 또 '사커 다이제스트'는 카타르 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일본은 더 이상 아시아 레벨이 아닌 유럽 레벨이다. 어떤 대회에서든 일본은 요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칭찬에 한껏 들떴다.
축구 통계 전문이라는 '옵타'도 거들었다. 대회 전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산출한 옵타의 아시안컵 우승 확률에서 일본은 24.6%로 가장 높았다. 빅클럽 주전이 즐비한 대한민국은 되려 14.3%로 2위에 그쳤다. 일본이 10% 높은 확률을 가져갈 만큼 고평가를 받았다.
옵타는 "우리 예측 모델에 따르면 일본이 토너먼트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다"며 "엔도 와타루가 주장을 맡은 일본은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이 포함된 조에서 1위에 오르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뒤 이번 대회에 나섰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아시안컵에서 9차례 출전 중 5회 결승 진출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며 "FIFA 랭킹 17위로 AFC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고 조명했다.
계속해서 "일본은 D조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16강 진출 확률이 92.7%에 이른다. 또 준결승 진출 확률은 52.8%다. 일본 다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팀은 한국인데 39.9%로 일본보다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약점 투성이다. 베트남전부터 불안했다. 4-2의 최종 스코어는 여유로워 보이지만 흐름은 쉽지 않았다. 전반 한때 베트남에 1-2로 끌려갈 만큼 쉽게 풀어간 경기는 아니었다. 베트남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94위에 불과한 걸 고려하면 일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 셈이다.
그것도 선제골로 잘 출발하고도 리드를 내주는 불안함을 노출했다. 전반 11분 미나미노 다쿠미(AS모나코)의 첫 골을 지키지 못하고 16분과 33분 연달아 베트남에 실점했다. 두 번 다 세트피스에 의해 일본의 수비가 무너진 게 눈에 들어왔다. 평균 신장에 있어 일본이 베트남에 우위를 보이는 데도 공중볼에 관한 처리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본의 기본 전력은 상당했다. 미나미노 다쿠미(AS모나코)를 중심으로 한 유럽파 2선이 첫 경기부터 폭발한 건 무기였다. 그래서 이라크전에 대한 승리 기대감이 상당했다. 이라크가 복병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FIFA 랭킹에서는 17위의 일본과 비교해 63위 이라크가 얼마나 고민을 안길지 알 수 없으나 분위기는 크게 나쁘지 않다. 이라크도 최근 A매치 5경기에서 4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과 전력이 엇비슷한 대한민국과 평가전에서만 0-1로 졌다. 아시안컵 첫 경기에서도 인도네시아를 3-1로 제압하며 힘을 과시했다.
이라크는 확실히 강했다. 일본이 힘을 뺀 것도 아니었다. 일본은 아사노 다쿠마(보훔)를 최전방에 두고 미나미노,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이토 준야(랭스)를 2선에 배치했다. 3선에는 모리타 히데마사(스포르팅CP), 엔도 와타루(리버풀)가 호흡을 맞췄다. 포백도 이토 히로키(슈투트가르트), 다니구치 쇼고(알 라이얀), 이타쿠라 고(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스가와라 유키나리(AZ 알크마르)가 섰다. 골문은 스즈키 자이온(신트 트라위던)이 지키면서 유럽파가 10명에 달하는 막강한 라인업을 꺼냈다. 더구나 1차전에서 부상으로 교체로 잠깐 뛰었던 구보가 선발로 나서 기대감을 키웠다.
그런데 베트남에 2골을 내준 허술한 수비가 또 문제였다. 전반 4분 만에 일본이 선제골을 빼앗겼다. 이라크가 중원을 넘거 거침없이 전진했다. 우물쭈물하는 일본 수비진을 상대로 순식간에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에 성공했다. 페널티박스에서 올린 크로스를 스즈키 골키퍼가 손으로 막아 냈으나, 달려들던 후세인이 머리에 맞혀 공을 골문 안으로 보냈다. 3분여에 걸친 비디오 판독(VAR) 끝에 득점이 인정됐다.
스즈키 골키퍼의 불안함이 결국 독이 됐다. 이번 대회 일본의 넘버원 골키퍼인 스즈키는 2002년생으로 아직 어리다. 가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골키퍼인 스즈키는 190cm의 장신을 활용한 신체 조건이 좋다. 2021년 우라와 1군에 진입하며 프로에 데뷔했다. 지금은 유럽파 골키퍼가 됐다. 지난해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에서도 벨기에 신트 트라위던을 택해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다만 프로 무대 경험이 많지 않고, A매치 출전도 5경기가 전부다. 베트남전에서 내준 실점도 연장선에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실점은 상대 헤더의 코스가 날카롭다거나 강력하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허용한 골이었다. 누가봐도 스즈키의 잘못이었다.
스즈키의 성급한 판단은 갈수록 공격력이 좋은 상대를 만날 때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 '도쿄 스포츠'도 "스즈키가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전반에 볼 처리가 허술했다. 베트남전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일본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마에카와 다이야(비셀 고베)를 주전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쿄 스포츠가 모은 일본 팬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반응도 "스즈키는 전체적으로 판단이 좋지 않았다", "마에카와가 더 좋은 선수다", "마에카와가 왜 평가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등 상당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스즈키를 믿고 이라크전에도 출전시켰으나 또 다시 공중볼 처리가 미숙해 뒤로 흐르게 했고, 선제 실점 빌미를 제공했다. 일본 반응은 뜨거웠다. '스포츠 호치'는 실시간 보도를 통해 "일본 팬들이 스즈키의 실수를 비판하고 있다"며 "확실히 일본은 전통저긍로 체력이 강하고 단순하게 플레이하는 팀에 서투르다"고 꼬집었다.
'히가시스포츠웹'은 조금 더 노골적으로 "스즈키가 문제다. 세트피스 수비에서 실수를 반복하면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모습이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뉘우치겠다고 했지만 또 아쉬움을 남겼다"고 했다.
일본이 흔들렸다. 점유율을 70%나 가져갔지만 정작 위협적인 건 이라크였다. 역습으로 만들어진 코너킥이 일본을 다시 위협했다. 이번에도 일본 골키퍼 스즈키가 공중볼을 한 차례 놓치는 바람에 실점 위기로 이어질 뻔했다.
결국 전반이 끝나기 전에 추가골을 넣었다. 일본은 또 오른쪽이 허물어졌다. 이라크는 왼쪽을 파고든 뒤 크로스를 올렸고 다시 후세인의 머리가 해결했다. 두 골을 허용한 일본은 마음이 급해졌고 그러면서 다시 이라크가 기회를 잡았다. 후반 8분 만에 이라크가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일본의 압박을 뚫어내고 순식간에 중원을 장악했다. 중원에서 뿌린 스루패스가 단번에 일본 페널티박스 안으로 연결됐다. 일본 골키퍼 스즈키가 이번엔 빠른 판단력으로 공을 먼저 걷어 내며 실점 위기를 넘겼다.
정확한 VAR도 일본을 도와주지 않았다. 후반 10분 아사노가 공을 향해 달려드는 과정에서 수비와 함께 넘어졌고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의 페널티킥은 VAR에서 수비와 접촉이 없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페널티킥 판정이 취소됐다.
일본은 후반 추가시간 주장 엔도가 만회골을 넣었다. 코너킥에서 띄운 공을 엔도가 헤딩슛으로 연결해 이라크 골망을 갈랐다. 1골 차로 따라붙은 일본은 남은 시간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끝내 동점엔 실패한 채 경기가 마무리됐다.
일본이 걱정하던 도하의 비극이 30년 만에 재현됐다. 일본은 경기 전부터 '왜 하필 이곳에서 이라크를 만났을까'라고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일본과 이라크는 객관적인 전력을 떠나 아직도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일본 축구사에 길이 남을 비극이 펼쳐졌다.
1994 FIFA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펼쳐졌던 도하에서 일본은 이라크를 최종전 상대로 만났다. 경기 종료 시점까지 미우라 가즈요시와 나카야마 마사시의 골을 앞세워 2-1로 앞서 있었다. 이대로 끝나면 북한을 잡고 승점 6점을 기록한 대한민국을 따돌리고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종료 20초 전 이라크의 움란 자파르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내줬다. 결국 2-2 무승부로 끝났고, 일본은 대한민국과 승점이 같아졌다. 이라크에 내준 그 한 골이 득실차에서도 불리하게 만들면서 미국행 티켓을 대한민국에 넘겨줬다. 우리에게는 도하의 기적이 일본에서는 도하의 비극으로 불린다.
그 현장에 모리야스 감독이 있었다. 풀타임을 잘 뛰고도 월드컵 탈락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31년이 흘러 카타르에서 이라크를 상대하게 됐다. 모리야스 감독 입장에서는 도하의 비극을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로 이겨낸지 오래다. 그래도 이라크를 확실하게 잡아야 악몽을 지울 수 있다.
어김없이 이라크전을 앞두고 도하의 비극이 거론됐다. 모리야스 감독은 "1993년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지금은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이곳에 왔다. 내일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이타쿠라 고(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보면서 "1993년에 이 선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만큼 옛날 이야기다. 이후 일본은 발전했고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팀이 됐다"라고 과거로 치부했다.
대신 도하의 비극에서 얻은 교훈을 강조했다. 종료 직전에 아픔을 겪었던 만큼 모리야스 감독은 "이번 대회는 추가시간이 정확하게 잡히면서 길어지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운영해야 한다"며 "베트남전에서도 전반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넣었고, 후반에는 잘 마무리했다. 3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일본은 이날 경기 패배로 D조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선수와 감독으로 도하의 비극을 맛본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여러가지 반성을 해야 한다. 선수들은 이라크전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결과에만 좌우되지 않고 성과와 과제를 제대로 해 다음 경기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대한민국과 관련이 큰 변화다. 대진상 D조 2위는 16강에서 한국이 속해 있는 E조 1위와 16강에서 만난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전력이 조 상위권이라 나란히 1위로 진출하면 결승에서나 만날 것으로 봤다. 한일전 결승전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이유다.
그런데 일본이 2위로 밀리면서 한국이 E조 1위를 하면 16강부터 만날 가능성이 생겼다. 양팀 모두 너무 일찍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행보다. 일본이 덜미를 잡힌 가운데 한국은 20일 오후 8시 30분 요르단과 2차전을 펼친다. 요르단이 말레이시아와 첫 경기를 4-0으로 이기면서 중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어 한국 역시 선두 여부를 놓고 다투는 경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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