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아픈데 확진까지 평균 1년…원인 모르는 섬유근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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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도 헷갈리는 전신 통증
40대 직장인 A씨는 몇 달 전부터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온몸 곳곳이 쑤시고 근육이 심하게 뭉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피로감도 심해졌다. 처음엔 진통제를 먹어봤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반복됐다. 다리와 엉덩이에서 시작한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통증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A씨는 동네의원을 찾았지만 진통제 처방만 받을 뿐 뚜렷한 병명을 듣진 못했다. 정형외과부터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까지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아도 의미가 없었다.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 진통제 가짓수와 복용량은 점차 늘어갔다. A씨는 결국 대학병원에서 여러 과를 거친 뒤 정밀 검사를 받고 나서야 정확한 진단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병원에선 극심한 전신통증의 원인이 ‘섬유근육통’이라고 했다. A씨에겐 생소한 질환이었다.
보통 근육통이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진통제를 먹거나 며칠 쉬면 괜찮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섬유근육통은 일반 근육통과는 차원이 다르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한때 심각한 통증 때문에 월드투어 등 활동을 전면 중단하게 된 질환이 바로 섬유근육통이다.
웬만한 검사엔 정상, 근육통 여기기 쉬워
한마디로 고약한 질환이다. 우선 쉬 낫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아프면 진통제부터 찾기 마련이다. 일시적으로 좀 나아지는 듯하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몇 달은 기본이다. 의학적으로도 전신통증이 6주 혹은 2개월 이상 지속할 때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권한다. 의사에 따라서는 3개월 이상 이유 없는 통증이 지속할 때 의심해볼 만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욱 황당한 점은 웬만한 검사에선 정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혈액검사나 근골격계 검사, 신경학적 검사를 받아도 정상으로 나온다. 즉 선별검사(screening test)가 따로 없다. 선별검사는 특정 질병이 있는 사람을 건강한 사람과 구별하는 검사로, 선별검사에서 이상이 나타나야 확진검사를 받을 수 있다. 즉, 섬유근육통 환자는 온몸이 쑤시고 아파 죽겠는데 일반적인 검사 결과는 정상이니 꾀병으로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게다가 일반 근육통이나 다른 근골격계 질환과 달리 부위가 한정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괴롭다. 통증이 눈·턱·목·어깨·흉부·팔·복부·허벅지·종아리·정강이까지 퍼질 수 있다. 근육뿐 아니라 관절, 힘줄에도 만성적인 통증을 유발한다. 통증 이외에도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만성두통, 어지럼증, 인지장애, 기억력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이들 증상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불안·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신 피로감과 아침에 관절이 뻣뻣해지는 조조강직, 턱관절 장애를 겪기도 하며 시력 저하나 눈 침침함, 가슴 통증, 근막 통증과 근육 경련, 오심(메스꺼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과민성 방광염이나 생리불순 등 비뇨·생식기 계통의 증상이 동반되는 사람도 있다. 섬유근육통보다 증상이 많은 질환을 찾기 힘들 정도다.
섬유근육통이 고약한 질환인 또 다른 이유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의 통증이다. 즉 생활습관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평소에 조심한다고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다만 환자의 신체 상태에 대해선 다소 확인된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통증에 대한 역치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다. 즉 통증과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에서 자극을 받아들이는 센서 자체가 예민해졌다고 볼 수 있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세로토닌 대사 감소, 성장호르몬 분비 감소, 스트레스에 대한 부신피질호르몬 분비 반응 감소, 뇌척수액 내 통증 유발물질 증가, 자율신경계 기능 부전 등을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은 통증으로 느끼지 않는 작은 자극도 통증으로 인식한다. 무리한 근육 사용이나 물리적 충격, 잘못된 자세 등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 이상으로 인한 것이다.
생활습관 문제나 부상 아닌 몸 내부 이상
결국 빠른 진단이 우선이다. 진통제로 조절되지 않는 통증이 몇 주 동안 지속한다면 류머티스내과 의료진에게 진료받는 것을 권한다. 그렇다고 섣불리 섬유근육통을 의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큰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확진 검사를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 기능적 뇌 MRI 검사로 섬유근육통을 진단할 수 있다. 다양한 무게추로 신체 곳곳을 눌러가면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뇌 신호를 감별한다. 섬유근육통일 경우 일반인은 전혀 통증이라고 느끼지 않는 위치와 무게에 통증이라고 반응한다. 이 검사가 보편화하기 전에는 환자가 특정 부위 18곳 중 11곳에서 통증을 느껴야 진단할 정도로 진단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정확한 진단이 이뤄진다면 치료는 크게 어렵지 않다. 주사치료와 수액치료로 통증은 조절할 수 있다. 효과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다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까지가 너무 길고 고되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섬유근육통에서는 특히 조기진단의 일정 부분이 환자에 달렸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한 합리적인 진료과·병원 선택은 환자의 몫이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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