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한 벌, 구두 한 켤레…누군가에겐 생존·존엄성 문제

2024. 1. 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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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외투』에 수록된 삽화, 넵스키 거리의 아카키.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그림. [사진 지만지]
가난을 감추기 어려운 계절이다. 외투에 따라 체감온도는 천차만별인데,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만만찮다. 2000년대 시장을 평정했던 노스페이스의 바통을 이어 2010년대 노비스, 몽클레르, 캐나다구스 등 해외 프리미엄 패딩이 본격 수입되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는 일명 ‘패딩 계급도’가 나돌았다. 적게는 수십만원 대부터 수백만원 대를 호가해 ‘등골브레이커’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목에 닿는 검정 롱패딩을 입고 펭귄처럼 무리지어 다니던 학생들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거리는 엉덩이를 드러낸 숏패딩을 입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길이가 짧아졌으니 가격도 다운됐을까. 매장을 찾은 학부모들은 가격표를 보고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 극빈자들 심리 꿰뚫어

누군가에게 외투는 과시욕, 소비욕을 표현하는 패션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다. 현재의 문제만은 아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대표 주자인 고골의 『외투』와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예나 지금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뼈를 애는 추위와 상대적 박탈감, 절대적 소외감과 싸우고 있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시작을 알린 문호이자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니콜라이 고골은 『외투』라는 단편 소설을 통해 기존 러시아 문학사에 등장했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가난에 찌든 소시민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켰다. 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귀족을 위한, 귀족에 의한, 귀족계급의 문학이었다. 등장인물도 대부분 귀족계급이었기에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사랑, 철학 등을 주된 주제로 다뤘다. 그런데 고골은 러시아 계급 체계의 가장 말단에 있는 9등 문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가난과 사회 불평등의 문제 등을 다뤘다.

『가난한 사람들』에 수록된 삽화, 제부시킨. 표트르 보클렙스키 그림. [사진 지만지]
박봉과 자신을 무시하는 동료들에게 시달리는 러시아 하급 관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는 넝마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외투가 한 벌 있다. 러시아인에게 외투는 단순한 ‘유행템’이 아닌 ‘생존템’이다. 아카키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새 외투를 마련하기로 마음먹는다. 문제는 돈이다. 새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려 자신의 연봉 35%에 해당하는 거액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새 외투 장만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생존템을 마련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처절하다. 구두 굽이 닳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살살 걸었고, 속옷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집에 돌아오면 얼른 벗어 놓았다. 저녁 식사도 포기하고 촛불도 켜지 않은 채 길고 무거운 러시아의 밤을 버텨 냈다.

애초 그는 ‘빵에 파리가 앉아 있으면 빵을 파리와 함께 삼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에 무신경하고 무감각한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쓴 문서를 예쁜 글씨로 작성해주는 정서(淨書)라는 직업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타인의 생각을 베끼면 그만이었다. 그의 이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또한 아버지의 이름을 반복한 것으로 ‘아카키의 아들인 아카키’라는 의미다. 태생부터 독자적 인간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카피였던 셈이다.

‘구두’, 고흐 그림. [사진 지만지]
그랬던 그가 생애 최초의 사치품이자 최고급품인 새 외투를 손에 넣은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생전 처음 미소를 짓고 이성에 관심을 갖는다. 가족을 가진 느낌까지 받는다. 복사기와 같았던 생활에 인간적인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면서 자신이 속해있던 낡은 세상에서 불쾌한 냄새도 맡게 된다. 마치 자신은 그런 삶에 속하지 않았던 듯, 마치 자신은 그런 과거와 영원히 안녕이라도 한 듯 우쭐한 기분도 맛본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김첨지식 행복이다. 늦은 귀갓길 소중한 외투를 강탈당하고 만 것. 도둑맞은 것은 단순한 외투가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의 시간,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강탈당한 것이다. 그는 애타게 외투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도스토옙스키, 바실리 페로프 그림. [사진 지만지]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비평가들은 ‘새로운 고골’이 등장했다며 반겼다. 러시아 사실주의의 제창자라고 평가받는 비평가 벨린스키는 『가난한 사람들』이 불평등과 가난의 제반 문제를 지적한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방점을 둔 것은 ‘가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방점은 ‘가난’이 아닌 ‘사람’에게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가난이 사람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극빈에 가까운 상태다. 소설의 주인공 제부시킨은 궁핍한 자신의 처지를 ‘가느다란 실오라기 하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삶’이라고 표현했다.

제부시킨 역시 구멍이 숭숭 뚫린 자신의 신발에 편집증적일 정도로 많은 신경을 쓴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신발이 낡아 빠졌다는 사실을 눈치챌까 봐서다. 돈을 빌리면 제일 먼저 새 신발을 사고 싶다고 말하고, 고위직 상관이 불쌍히 여겨 100루블을 주자 정말 새 신을 신고 넵스키 거리를 활보했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극빈한 그가 먹거리도 아닌 신발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지금 우리는 상대적 빈곤으로 더 고통

수입 프리미엄 패딩 매장. [사진 한화갤러리아]
신발은 사람의 신체 중 가장 아래를 감싸는 물건이다. 온갖 더러운 것들을 밟고 다니며 때로는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발에 밟히기도 한다. 러시아 계급 사다리에 빗대어 본다면 최하위 직급인 9등관에 해당할 것이다. 사다리의 맨 아래를 차지하는 계급으로 윗사람들의 온갖 멸시와 모욕, 호통을 참아 내야 하는 자리다. 우리나라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는다. 결국 신발은 제부시킨의 사회적인 위치의 상징이다. 제부시킨이 사랑하는 여인 바렌카에게 전하는 고백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내 사랑하는 바렌카, 바로 이런 이유에서 구두는 명예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내게 꼭 필요하단 말입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구두를 신고 다닌다는 것은 곧 이런 것들을 다 상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가난하고 억압받고 불행한 사람들의 작가다. 사망 전 몇 해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고, 그래서 그는 19세기의 다른 어느 작가들보다(19세기 대부분의 작가들은 부유한 귀족이었다) 가난의 심리학, 핍박받고 억압받고 모욕받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난은 ‘아무 데도 기댈 곳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는’ 벼랑 끝에 선 극빈자들의 생과 사의 문제다. 그리고 이런 극빈이 사람들의 심리와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참고로 여기서 ‘가난한’이라고 번역한 ‘베드니(бедный)’라는 러시아어는 가진 자, 못 가진 자라는 사회경제적인 의미의 ‘가난’뿐 아니라, ‘가엾은’ 그리고 더 나아가 ‘불행한’이란 정서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품의 원제 ‘Бедные люди’는 ‘가난하고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번역해야 합당할 것이다.

『외투』와 『가난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절대적 빈곤으로 고통받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으로 더 많은 상처를 받고 허덕인다. 누구는 자신을 과시하거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입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최소한의 존엄과 인간다움을 위해 외투와 신발을 구비 한다. 누구는 몰스킨 수첩에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적어 나갈 때 또 다른 누군가는 ‘해보고 싶지만 돈이 드는 것’‘소질과 흥미도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차분히 지워 나간다.

주거비와 은행 이자, 교통비와 식료품을 해결하기에도 빠듯하기에 또 다른 기회, 안목에 대한 투자, 내일의 가능성을 스스로 삭제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난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하게 만들어 미래에 대해서는 꿈꿔 볼 수도 없게 한다. 하지만 삶이 어려울 때 신에게 귀의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때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가 극에 달하는 것처럼, 삶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 구원에 대한 열망도 그만큼 강해지는 법이다. 아카키도 제부시킨도 그러했다. 우리도 물론 그럴 것이다.

맵시나는 캐시미어 코트 아래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방한복을 겹겹이 껴입고 대로변에 앉아 손으로 뜬 수세미를 파는 어르신이 보인다. 겨울은 유난히도 서로의 형편이 눈에 보이는 계절이다.

김정아 번역작가·CEO. 노문학 박사. 낮에는 패션회사 스페이스 눌의 대표로, 새벽에는 도스토옙스키 번역가로 일한다.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단일 번역가 번역이라는 세계 최초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죄와 벌』 『백치』 『악령』 완역본이 출간됐고, 현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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