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한국의 프로 선수들…'자생력'없으면 프로가 아니다

손태규 교수 2024. 1.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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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민국 스포츠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걱정이 많다. 도쿄 올림픽,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이전보다 순위가 떨어졌다. 여자배구의 27연속 패배 등 여러 구기 종목의 국제대회 성적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파리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다고 한다.

프로 구단들이 수 없이 생기면서 시설이나 선수 대우 등 여건은 훨씬 나아졌는데 경쟁력은 왜 떨어지는가? 프로가 오히려 선수들을 망치고 있는가?

프로 스포츠는 냉정한 곳이다. 실력 없이는 프로가 될 수 없다. 실력이 있어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프로 스포츠의 생명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살아 나가는 능력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가 아니다. 프로 스포츠는 자선을 받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들은 프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프로 스포츠가 가장 먼저 태어나고, 가장 발달한 미국. 그곳이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세계 최고 선수의 프로 경력은 단 3년

미아 햄은 세계 여자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 꼽힌다. ‘여자 펠레.’ ‘여자축구의 상징.’ 1987년 15살 때 미국 국가대표. 17년 동안 올림픽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획득. 두 번의 월드컵 우승. 2001년, 2002년 국제축구연맹 올해의 선수. 5년 연속 미국 ‘올해의 선수.’ 브라질의 펠레가 뽑은 125명의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한 명. 세계 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여자 선수. 국제경기 158골은 20년 동안 남녀 통틀어 최고기록. 현재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글로벌 대사며 이탈리아 AS 로마의 이사다. 이밖에도 햄의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 햄이 프로에서 뛴 기간은 딱 3년뿐이었다. 햄은 노스캐롤라이나 대에서 4년 연속 전국 선수권대회 우승을 하고 1994년 졸업했다. 재학 중 중국 월드컵 우승도 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선수 햄이 뛸 곳은 없었다. 무려 7년을 무적 선수로 지냈다. 세계에서 가장 프로 스포츠가 발달한 미국에 여자축구 프로리그가 없었기 때문. 프로 구단은 물론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실업 구단도 없었다. 미국은 회사 자금이나 국민 세금으로 프로 스포츠를 운영하지 않는다. 프로는 스스로 돈을 벌어 팀을 꾸려나가야 한다.

올림픽에다 월드컵까지 우승한 종목이 프로는커녕 실업구단이 없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는 무엇 하냐고 난리 났을지 모른다. 소속 없는 선수들 실력이 다 떨어진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햄은 축구 경력에서 7년은 국가대표 활동뿐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선수촌을 두어 국가대표가 1년 내내 훈련하는 구조가 아니다. 국가대표 시합이 없을 때 햄은 동호회 등에서 축구를 했으리라 짐작된다. 1년 중 상당 기간은 동네 학교 축구팀에서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대학 선수가 아닌 다른 대표선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터. 그러면서도 그들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미국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스웨덴 월드컵에서 3위를 했다. 소속 팀도 없이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개인훈련을 했겠는가? 경쟁력은 여건보다는 자신의 운동에 대한 열정과 책임으로 이뤄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드디어 햄은 2001년 프로 선수가 되었다. 세계 최초의 프로 여자축구 리그인 ‘여성연합축구협회(WUSA)’가 만들어진 것. 2001년 세계 1,000 개 기업 광고책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햄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 있는 여자 선수”로 꼽혔다. 막 태어난 여자축구 리그는 광고와 홍보에 그녀를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8개 구단으로 출발한 프로리그는 겨우 2년 6개월을 버티고 2003년 중단했다. 그동안 쌓인 1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견디지 못했다. 1999년 월드컵에서 미국이 우승하면서 여자 축구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관중 숫자나 텔레비전 시청률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리 국제대회 성적이 좋아도 인기가 없었다. 5년 동안의 예산으로 잡은 500억 원을 첫해에 다 써버릴 정도로 흥행이 되지 않았다. 3년째에는 모든 선수들이 최고 30%까지 연봉을 깎았다. 직접 투자까지 했던 선수들이 가장 많이 삭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적자를 견딜 수 없어 문을 닫고 말았다. 돈을 벌지 못하니 방법이 없었다. 정부나 지자체, 공기업, 재벌기업 어디에도 그냥 지원하는 곳이 없었다. 미국에는 그런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팀이 없어진 미아 햄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끝으로 은퇴를 했다. 단 3년. 세계 최고의 선수였으나 비운의 프로선수였다.

■자생력이 없으면 프로가 아니다

6년 뒤인 2009년 새로운 리그가 태어났다. 이마저 3년 만에 접었다. 2013년 ‘전국여자축구리그’가 다시 만들어졌다. 낮은 연봉과 운영비로 근근이 유지하면서 10년 동안에 8개 구단에서14개 구단으로 늘어났다.

남자축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메이저리그축구(MLS)’도 1968년 ‘북미축구리그’로 출발했다. 70년 중반 브라질 펠레, 독일 베켄바우어, 포르투칼 에우제비오, 영국의 조지 베스트 등 당대의 선수들을 모아 운영했다. 한때 7만 관중을 동원하는 등 반짝했다. 결국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84년 문을 닫았다. 94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12년이 지난 96년 재출발했다. 그러나 수년 간 고전하며 10개 가운데 2개 구단이 없어지기도 했다.

축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여자농구는 12번의 올림픽 가운데 서울올림픽을 포함해 9번 우승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11번 우승했다.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미국의 첫 번 여자 프로농구 리그는 1978년에 생겼다. 8개 구단으로 시작한 지 3년 만에 접었다. 역시 재정 문제였다, 80년 ‘여성프로농구협회’가 따로 만들어졌으나 한 달도 안 되어 중단했다. 84년과 86년에도 각각 프로리그가 결성되었으나 모두 몇 달 만에 접었다. 결국 몇 차례나 새로 만들어진 리그가 엎어진 뒤 1996년 남자들의 NBA가 WNBA를 만들었다.

남자배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땄다. 세계 선수권대회, 월드컵, 월드 리그 우승국. 여자배구는 도쿄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월드 그랑프리를 6차례 제패하는 등 세계 최강국으로 꼽힌다.

지난해 8월, 네브래스카 대와 오마하 대 여자배구 시합의 관중 수는 9민2,003명. 여자 스포츠 시합에서의 세계 최고 기록이었다. 그 정도로 배구가 인기다.

그러나 미국에서 프로 배구는 성공하지 못했다. 어렵사리 1987년 만들어진 여자 '메이저 리그 배구'는 수익을 올리지 못해 그해 중간에 없어졌다. 2002년에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단 한 시즌 만에 접고 말았다. 최근까지 미국에서는 지속 가능한 프로 배구 리그가 없었다. 최고의 배구 선수들은 생계를 위해 한국 등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올해부터 겨우 ‘프로 배구 연맹’이 새로 창설되어 경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프로야구나 남자농구도 물론 험난한 길을 거쳤다. 그러나 이제 엄청난 수익을 내기 때문에, 선수들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세계 최고 실력이라도 관심을 모으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것이 프로다. 관중과 텔레비전 시청자가 없으면 프로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기업이나 지자체의 돈으로 프로를 유지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

스포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선수들은 종목에 따라 수백 대 1 또는 1500대 1의 경쟁을 뚫고 프로가 된다. 그마저도 리그가 없어지면서 뛸 곳도 없다. 힘들게 리그가 운영되는 종목들의 연봉은 한국 선수들의 절반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그들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다.

한국 프로 스포츠는 신인 선수 선발에서 경쟁률이 2대1만 넘어도 ‘역대급 바늘구멍’이라고 한다. 국제대회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어도, 구단은 사실 적자인데도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비정상도 그런 비정상이 없다. 한국 선수들은 프로가 얼마나 냉엄한 곳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미국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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