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태양왕’ 하이힐 유행 이끌다

김수미 2024. 1. 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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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루이 14세, 키 커보이려 신어
귀족·귀부인 따라하며 확산돼
과거 스타킹도 주로 남자가 착용
‘우산 쓴 남성 나약하다’ 오명 등
일상용품 속 인류 문화 되짚어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세계사/찰스 패너티/이형식 옮김/북피움/3만3000원

가늘고 긴 굽으로 여성의 몸매를 더욱 강조해 주는 하이힐과 여성의 다리를 팽팽하게 조여 실루엣을 살리는 스타킹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며 영화나 광고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오브제로 자주 등장해왔다. 하지만 사실 하이힐과 스타킹은 남성들이 여성보다 먼저 즐겨 신던 것들이다.

16세기 말을 타던 남성들은 신발 굽이 높을수록 등자(말안장 밑에 달린 발 받침대)에 발을 넣었을 때 잘 고정되고 편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승마용 부츠의 굽이 높아졌고, 당시 변변한 하수시설이 없어 동물의 오물이 길거리에 넘쳐흐르자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바닥이 두껍거나 굽 높은 신발을 신게 됐다.
하이힐을 신고 있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초상. 북피움 제공
하이힐의 본격적인 유행을 이끈 것은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였다. 그는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73년간 재위하면서 프랑스의 황금기를 이끌었지만,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키를 좀 더 커 보이게 하려고 구두 굽을 높였는데 이를 귀족과 귀부인들이 앞다퉈 따라 하면서 높은 굽이 유행했고, 오늘날의 하이힐이라는 이름의 여성 구두로 남은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로 만들어졌듯이 우리를 둘러싼 사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미신과 오해, 우연에서 시작해 인간의 필요와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필수품이 되기도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신간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세계사’(북피움)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300여 가지 사물의 유래와 원조, 파란만장한 진화의 역사를 두루 훑어준다.
찰스 패너티/이형식 옮김/북피움/3만3000원
스타킹도 하이힐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기 100년까지 로마인들이 우도(udo)라 불리는 천으로 된 양말을 신다가 장화 속에 신을 수 있도록 무릎 위까지 양말 길이를 연장하면서 스타킹의 역사가 시작됐다. 4세기에 교회는 무릎 위까지 오는 흰 리넨 스타킹을 신부의 예배 복장으로 채택했고, 5세기에는 로마의 신부와 평신도 사이에서 풀 사이즈 스타킹이 유행했다.
11세기 들어 몸에 딱 달라붙는 스타킹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스킨 타이츠’라는 바지로 진화했다. 14세기 남자들의 타이츠는 다리, 엉덩이, 사타구니의 모든 윤곽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 교회 성직자들이 점잖지 못하다고 비난했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스타킹 팬츠를 더 야하게 만들어 10대 남성과 부모를 갈라서게 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타킹은 주로 신부, 군인, 젊은 남자들이 신었는데, 여성들은 다리를 드러내지 않아 언제부터 신기 시작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스타킹은 성직자, 젊은 남자들이 주로 신었다. 북피움 제공
반대로 우산은 남성들에게 나약하다는 오명을 씌워 로마 시대 이래로 남성들은 비가 오면 그냥 맞았다. 파라솔과 우산은 18세기까지 주로 여성들의 액세서리로 여겨졌고 남성들은 비를 흠뻑 맞아야 했다. 그러나 성공한 영국 사업가 조너스 핸웨이가 1750년부터 우산을 쓰며 투쟁을 시작했다. ‘양성’이라고 비난받고 야유도 받았지만 그는 죽기 전까지 30여년간 비가 오든 안 오든 외출할 때마다 꼭 우산을 갖고 나갔다. 곧 다른 남성들도 우산을 사는 것이 비가 올 때마다 마차를 부르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1786년 영국 신사들은 비가 오면 우산을 쓰기 시작했고, 우산을 ‘핸웨이즈(Hanways)’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천연두가 남긴 곰보 자국을 가리기 위해 붙이기 시작한 ‘애교점’과 애교점을 담았던 용기가 콤팩트가 된 이야기, 술자리에서 단합이나 축하를 위해 하는 건배가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사실, 의치와 가발은 과거 전쟁 포로의 이와 머리카락을 뽑아서 만들었다는 끔찍한 기원 등 다양한 사물의 역사가 술술 읽힌다.

세계적인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수백 권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일상용품들의 오래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장대한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유산을 통찰하게 해준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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