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해외살이’ 겁없는 워킹맘 12人의 에피소드

정진수 2024. 1. 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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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에도 시대의 사회상과 차별이 담기기도 한다.

조선 시대 현모양처만큼이나 '가정과 일의 양립'은 현대 여성이 갖춰야 할 미덕을 담은 용어다.

'일+가정'이라는 두 가지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여기서 '해외 살이'까지 덧붙여 '사서 고생'인 여성들이 있다.

어릴 때 꿈꾸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내며, 가정과 일의 '워라밸'이 어려워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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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은 여자들/김희정 외 지음/생각의창/1만9000원

단어 하나에도 시대의 사회상과 차별이 담기기도 한다. ‘워킹맘’이 대표적이다. ‘워킹 대디’도 있겠지만 사용 빈도를 보라. 워킹맘이 워킹대디를 압살한다. 조선 시대 현모양처만큼이나 ‘가정과 일의 양립’은 현대 여성이 갖춰야 할 미덕을 담은 용어다.

‘일+가정’이라는 두 가지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여기서 ‘해외 살이’까지 덧붙여 ‘사서 고생’인 여성들이 있다.
김희정 외 지음/생각의창/1만9000원
신간 ‘선 넘은 여자들’은 홍콩, 싱가포르 등으로 이주한 겁 없는 여성 12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의 자리에 있기까지 이들은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 위기를 겪어냈다. 많은 워킹맘이 그러하듯 자녀 육아를 위해 시어머니와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3인 4각’ 육아 경기를 하는가 하면, 한창 커리어의 정점으로 달릴 때 건강에 이상이 오며 투병생활을 겪기도 한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고, ‘싱가포르의 대치동’에 살며 아이를 학원에 라이딩하며 교육 문제로 고뇌하기도 한다.

어릴 때 꿈꾸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내며, 가정과 일의 ‘워라밸’이 어려워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해외에 살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덤으로 따라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해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어내는 어려움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해외에서 터를 잡거나, 직업을 구하거나, 아이들 교육 방식에 대한 얘기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이들이 자란 시기는 “여자가 공부 잘하면 팔자 세다”라는 사회의 관념이 있던 시절,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에 굴하지 않았다. ‘자고로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다양한 ‘금기’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임신과 동시에 ‘엄마다움’을 장착하리란 사회의 기대와 달리 우왕좌왕하다 보니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일말의 미안함에 대해서도 토로한다. 사실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될 감정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함, 상상을 초월하는 열정, 절대 포기하지 않은 꿈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어려운 길을 걸어냈기에 저자들은 “이 정도면 잘했어” “그동안 고생했어”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겪은 과정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고, 나아가 저출산 문제라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거대 담론에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사실 이런 ‘언니 선배’들이 알게 모르게 만들어놓은 길이 후배에게는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되는 관문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12명이나 되는 작가의 12개 에피소드를 380여쪽에 담다 보니 역경과 성공의 과정은 있지만 그 치열함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세세히 그려지진 않는다는 점은 한계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랑 비슷하네’, ‘다들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구나’, ‘위안이 된다’라고 위로와 격려와 공감과 연대의 힘을 느끼는 워킹맘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듯하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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