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불발된 강진군의장 불신임 결의…‘씁쓸한 뒷맛’
난형난제, 국회의원 vs 군의장…꼴불견 ‘성명 경쟁’ 파장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난형난제(難兄難弟)'. 요즘 전남 강진 군민들이 지역 정치권을 향해 치밀어 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점잖게 내뱉는 말이다.
18일 오후 4시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는 전남 강진 읍내 종합버스터미널 주변 번화가. 한 주민은 "지금 강진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은 바닥을 치고 있다. 지도력을 발휘하기는커녕 되레 군민들의 짐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는 지방의회가 불신을 자초하는 '추한 정치'라고 규정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껏 지역 정치를 그나마 지탱해 온 관행과 규범, 상대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금도마저 송두리채 사라졌다."
다산 정치고향 강진의 '추한 정치'
강진군의회가 김보미(34) 의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한 것에 대해 지방정가와 주민들은 놀라움과 함께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군의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 발의는 1991년 강진군의회 개원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의장은 전국 최연소 기초의회 의장이자 지방의회 개원 이후 최연소 여성 의장이다. 2022년 5월 제9대 강진군의회 전반기 의장단 투표에서 전체 의원 8명의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출됐다.
특히 이번 사태의 내막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중립적 입장을 보인 김 의장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역 정가에서는 정치적 암투라는 여론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문제가 복잡해질 조짐을 보이자 군의원들은 발을 뺐다. 이들은 15일 낸 입장문에서 "우리는 본뜻이 전도돼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고자 의장불신임 결의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결국 논란이 됐던 의장 불신임 결의안은 18일 본회의에서 표결 끝에 철회됐다. 재적 의원 8명 중 6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패거리 정치', '청년 정치 죽이기' 등 불신임안에 대해 역풍이 일자 마지못해 철회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표면상으로 의장 불신임 결의안이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결의안 발의와 철회 배경을 놓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군의장이 맞서면서다. 난형난제의 꼴불견 성명 경쟁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민주당 김승남(고흥·보성·장흥·강진) 국회의원은 17일 낸 입장문에서 "강진군의회 의장 불신임안 철회를 위한 갖은 노력에도익명의 청년당원들이 '수수방관했다', '총선 줄 세우기를 했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려 이에 대해 강력하게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전날 민주당 소속 강진지역 청년당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김 의원을 공개 비판한 데 따른 후속조치로 풀이된다.
거센 후폭풍…"법적 대응" vs "겁박 멈춰"
김보미 의장도 이날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격했다. 김 의장은 "김승남 의원은 지역구 청년당원들에 대한 겁박을 중단하고 차라리 저를 고소하라"고 맞섰다. 그의 항변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 5명이 불신임 결의안이 발의하려고 할 때 김승남 의원께서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청년당원들이 의견을 말할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허위사실 유포고, 법적으로 대응할 일이냐. 심지어 (김 의원이) 결의안 발의 이후에 했다고 하는 '중재 노력'이라는 것도 저에게 강압적으로 사과문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일 군의회 유경숙 부의장과 정중섭·윤영남·위성식·서순선·김창주 의원 등 6명이 김 의장 불신임안을 발의하면서 비롯됐다. 이들 가운데 5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고 1명은 무소속이다. 김 의장도 민주당 소속이다. 이들 의원은 불신임 결의 사유로 △예결위 의사권 방해 △역대 최대 규모 본예산 삭감처리 및 치적 홍보 △의원 형사소송과 관련된 발언 △품위유지 위반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들의 불신임 결의안 발의는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게 지역정가의 지배적 견해다. 의장 불신임 의결의 사유는 지방자치법 제62조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제출된 의장 불신임 결의안은 법령 위반 사실이나 직무 불이행 사실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지후보를 둘러싼 군의원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 더 힘이 실린다. 김 의장이 특정인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 오히려 불신임안 제출에 도화선이 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고흥보성장흥강진 선거구에서 김승남 현 의원을 비롯해 문금주 전 전남도 행정부지사, 최영호 전 광주시 남구청장, 김수정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조재환 전 초당대 겸임교수, 한명진 전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관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역정가 관계자는 "4월 총선 후보 지지와 관련해 대다수 의원들이 현역의원을 지지하는 모양새인데 김 의장의 경우 중립적인 경향을 보였고 지금은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군수장학생' 역할 의혹도...강진군 "사실 무근"
이번 불신임 결의 사유에는 올해 본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예결위의 권한을 무시하고 예산 삭감에 개입했고 이를 의장의 성과로 홍보해 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정치권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역의 한 정치인은 "군의회가 집행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한 철저한 예산 심사를 통해 혈세 낭비를 막기 보다는 앞장서서 본예산을 많이 깎았다고 의장 불신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의회 사무과의 운영 예산은 5억원(51%)이나 싹둑 깎으면서 왜 집행부 예산 삭감은 반대하는지부터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군의회 내에 존재(?)하는 이른바 '군수장학생'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조심스러운 얘기까지 나온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들은 의장보다 재량사업비 등 재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단체장의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는 의심이다. 또 민선 8기 출범 당시 내구 연한이 남은 군수 전용차량 교체 과정에서 강진원 군수와 김 의장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형성됐었던 점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대해 강진군은 사실무근이다며 펄쩍 뛰었다. 군 관계자는 "무소속 군수와 대부분 민주당 소속인 의원들간 당적이 다른데 어떻게 가당치나 하겠느냐"며 선을 그었다. 군의회 관계자도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인구 3만 2700여 명의 강진 군민을 8명의 군의원이 대의정치를 통해 집행부를 견제감시하고 군민의 의사를 군정에 반영시키는 일을 한다. 군의회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사석에서 군 발전과 군민 행복을 외친다. 하지만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군민들이 경제난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도 상대를 물어뜯는 다툼을 멈출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강진 정치다.
강진은 위민정치를 사유했던 다산 정약용의 정치적 고향이다. 이번 군의장 불신임 결의 사태는 이래저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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