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근로복지공단, ‘태아산재’ 첫 공식 인정…삼성 반도체 3건도 인정될까?

최유경 2024. 1. 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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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산재',
근로자가 임신 중 일터에서 유해 인자에 노출돼 아기가 선천성 질병을 갖고 태어났을 경우 국가가 산업재해를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2020년 4월 대법원에서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태아 산재가 처음으로 인정됐고, 이듬해 12월엔 태아의 장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법안 통과 이후 6건의 태아산재 신청이 들어왔지만, 2년 동안 실제로 태아산재를 승인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실상 죽은 법이 되어 버렸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12일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서 처음으로 태아 산재를 공식 인정했습니다.

현재까지 공단에 접수된 태아 산재 신청은 모두 6건, 오늘(19일) 기준으로 이 가운데 1건은 공식 인정됐고, 3건은 역학조사가 끝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근로복지공단 '태아산재' 첫 인정…'투석액 혼합' 담당한 병원 간호사

지난달 '태아산재'로 공식 인정받은 건, 병원 인공신장실에서 투석액 혼합 업무를 담당했던 1979년생 간호사 사례입니다.

임신 중 6개월 동안 해당 업무를 수행했는데, 매번 초산 냄새가 너무 심해 괴로웠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이 간호사가 2013년 12월 출산한 둘째 딸은 '무뇌이랑증'이라는 선천적 기형을 안고 태어났고, 2015년엔 뇌병변 1급 장애진단을, 2017년엔 사지 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역학조사를 진행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근로자 자녀의 상병이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고, 지난달 12일 신청한 지 2년여 만에 산재가 승인됐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12일 병원 간호사 자녀에게 발생한 무뇌이랑증과 관련해 처음으로 태아산재를 인정했다.


연구원은 조사 보고서에서 "초산을 공기 중으로 흡입해 급성 폐 손상 또는 화학성 폐렴이 발생해 저산소증이 발생한 환자가 응급실에 입원한 사례들을 보았을 때, 근로자는 업무 당시 진단을 받지는 않았으나 임신 중 반복적으로 폐 손상 및 저산소증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저산소증은 뇌와 관련된 기형을 유발하는 잘 알려진 요인이었으며, 근로자는 임신 1분기에 해당 업무를 수행했는데 임신 1분기는 특히 뇌의 기형 발생에 취약한 시기"라고 짚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직종이나 유사사례의 영향보다는, 유해인자에 노출된 게 과학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인정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삼성 반도체 공장 근무자들은?…"간접증거 확인했으나 과학적 근거 부족"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수년간 오퍼레이터로 일했던 산모 3명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연구원은 직업관련성을 '낮음'으로 판단했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A 씨는 확산 공정에서 웨이퍼를 가공했고, B 씨는 몰드공정에서 몰드와 금형 세정 작업을 하거나 반도체 칩 불량 여부를 검사했습니다. C 씨는 포토마스크 제작공정에서 화학물질을 다뤘습니다.

근무 중 생식독성물질과 전리방사선을 포함한 각종 유해 화학물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아이를 낳은 다음 알게 됐습니다.


A 씨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왼쪽 신장이 없었고 식도에 기형이 있었습니다. 시력·청력 이상과 발달장애 증상까지 나타났습니다.

B 씨 아들은 선천성 거대결장 탓에 평생 배변에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C 씨 아들은 한쪽 신장이 없는 데다 방광요관역류와 지방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지금도 아이의 신장은 10%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1년 5월 산재 신청 2년 반이 지나서 나온 역학조사 결론은 "근로자 자녀의 상병이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 근로자에서 자녀의 선천성 기형 위험이 증가한다는 간접적인 증거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며 "특히, 국내 반도체 연구들에 따르면 2010년 이전의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더 많은 유해물질(벤젠, 기타 유기용제 등)에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국내에서 2010년 이전의 반도체 업종 근로자 자료를 가지고 자녀에서 발생한 선천성 기형의 위험을 평가한 연구는 없었기 때문에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는데 제한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 남은 건 '질병판정위' 최종 판단…공단 "1~2월 중 결과 나올 가능성"

산업재해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변호사·의사 등으로 구성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이곳에서 역학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최종적인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데, 이르면 이달 중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역학조사에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다고 하더라도, 산재 인정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닙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반올림' 소속 조승규 공인노무사는 "(대리한 사건 가운데) 역학조사 관련성이 낮았던 사건 중에도 55건은 승인됐고, 44건만 불승인됐다"며 "이번 조사 내용은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결론을 살펴보면 관련성을 열어두려고 고민을 많이 한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조 노무사는 "산재 신청자들은 산재보험법을 바꾸는 것부터 역학조사가 끝날 때까지 정말 오랫동안 결과를 기다려왔다"며 "판정위원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과학적 근거가 낮은 사례 중에 산재가 인정된 사례들이 상당수 있었다"라며 "이번 태아산재의 경우 1~2월 중 판정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그래픽: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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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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