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치매 노인 돌보는 83세···"15년째 돕고 삽니다"

유주희 기자 2024. 1. 1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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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복지관 노노케어 최장 참가자 김대홍씨
서울 약수 노인복지관 인근에서 만난 ‘노노케어’ 참가자 김대홍 씨. 사진=신지민 기자
[서울경제]

15년 전 경증 치매 환자를 돌보던 때였다. 역시 고령인 환자의 부인 대신 식사와 간병, 목욕까지 도왔다. 그러던 중 환자의 자녀 결혼식을 맞아 서울에서 인천의 예식장까지 그를 모셔다드리게 됐다. “서울에서 목욕 다 시키고 양복 입혀서 모시고 갔어요. 가는 중에 차에서 대변 냄새가 나더라고. 기저귀를 채우기는 했지만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결혼식장 화장실에서 다시 씻기고 기저귀 갈아서 겨우 혼주 자리에 앉혀드렸어요. 혼주석에 앉은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날 이후 김대홍(83) 씨는 15년째 ‘노노(老老)케어’에 참여하고 있다. ‘노노케어’란 건강한 고령자들이 다른 고령자들을 돌보는 공익형 어르신 일자리 사업이자 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서비스다. 과거 복지관 반장·회장을 역임한 김 씨는 노노케어 사업이 제도화되기도 전부터 주변 이웃을 발 벗고 돕고는 했다. 자연스레 현재 복지관의 노노케어 최장 기간 참가자가 됐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지만 15년 전 혼주석에 앉은 수혜자를 떠올릴 때마다 책임감이 솟고는 한다.

서울 중구 약수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씨는 “지난해부터 약수동에서 도시락 배달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한 달에 열 번(월 30시간) 정도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 가정에 방문해 점심 도시락을 전달하는 일이다. 노노케어는 말벗, 안부 확인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이뤄져 있어 복지관마다 프로그램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옆 동네 신당동에서는 두 명의 노인이 한 팀이 돼 수혜자 한 명을 대상으로 말벗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노노케어 참가자 한 명이 보통 세 명의 수혜자를 담당한다. 김 씨는 “이웃들이 대부분 혼자 살고 있어 도착해 벨을 누르면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독거노인은 외출하지 않는 이상 온종일 대화할 일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그런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귀한 손님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그는 “특히 건강한 상태에서 뜻대로 타인을 도울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일 자체는 부담이 적지만 책임감은 무겁다. “벨을 눌렀는데 조용하거나 대답이 없으면 식겁해요. ‘무슨 일이 생겼나?’ 인기척이 들리기까지 몇 초간 정적이 흐를 때는 식은땀도 나요. 만약에 뭔 일이 났는데 내가 없었다고 생각해봐요. 아찔하죠. 그러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반가운지.” 도시락을 전하고 안부를 주고받던 김 씨는 “건강 상태도 묻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 연락처도 수시로 확인하다 보면 이웃도 챙기고 오가며 운동도 돼 보람이 넘친다”고 답했다.

약수 복지관은 수혜자를 선발할 때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한 취약 노인 외에도 노노케어 참가자들의 정보를 십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노노케어 참가자가 지역에서 취약·조손·거동불편 노인의 소식을 접하고 요양사를 연결해주는 경우가 많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곳까지 훑으면서 같은 고령자끼리 안전 울타리를 둘러주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 전체 인구 966만 7669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166만 7411명(17.2%)에 달했다. 전국의 고령화 비율은 18%며 20%를 넘어선 지역은 전남(25.5%), 경북(23.9%), 전북(23.4%), 강원(23.3%), 부산(22.2%), 충남(20.4%) 등 6곳이다. 사실상 전국 대부분 지역이 이미 초고령사회(고령화 비율 20%)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

반면 노인을 부양할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가고 있다. 다음 달 발표될 2023년 합계출산율은 0.68명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고령화 문제를 모두가 나서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의 ‘2023 고령자 통계’에서 65세 이상 응답자 절반 이상이 “노인 부양을 위해 가족·정부·사회가 함께 힘써야 한다”고 답했다. 고령자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는 김 씨 역시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주변을 무관심하게 지나치면 안 돼요.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면 서로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요. 서로 돕고 사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유주희 기자 ginger@sedaily.com신지민 인턴 기자 jmgody@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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