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항공사 사장 된 스튜어디스

김홍수 논설위원 2024. 1.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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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1930년 미국에서 25살 간호사 엘런 처치가 세계 최초로 스튜어디스가 됐다. 그녀는 항공사에 편지를 보내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조르다 계속 거절당하자, 새 제안을 내놨다. “간호사가 함께 타면 승객들이 안심할 것”이라면서 객실 승무원으로 써달라고 했다. 열정에 감동한 항공사가 한 달 시범 조건으로 채용했다. 승객들은 베레모와 망토 차림 여승무원의 등장에 열광했다. 항공사들이 앞다퉈 여승무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여승무원 채용 조건은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 25세 이하 독신, 키 162㎝ 이하, 몸무게 52㎏ 이하’였다. 비행기가 작아 몸집 큰 여성은 곤란했다. 유럽 항공사들은 유니폼으로 아예 간호사 복장을 입혔다. 여승무원 명칭은 여행을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에서 쿠리어(Courier)라고 부르다, 에어 호스티스(Air hostess), 에어 걸(Air girl)을 거쳐 ‘스튜어디스’로 정착됐다. 요즘엔 남여 구분없이 캐빈 어텐던트(Cabin attendant)라는 명칭을 쓴다.

▶해외여행을 거의 못 하던 시절, 한국에선 스튜어디스 지망생인 항공운항과 여대생들이 남학생 선호도 1위에 꼽혔다. 현역 여승무원들은 1등 신붓감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외양과 달리 여승무원은 고된 직업이다. 100㎏이 넘는 카트를 끌고 좁은 복도를 계속 왕복해야 하고, 더러운 세면대와 변기도 직접 닦아야 한다. 장거리 비행 탓에 걸핏하면 밤을 새운다. 10시간 넘게 서서 일하다 꼬리날개 부근에 있는 벙크(bunk)라 불리는 창고 방에서 1~2시간 쪽잠을 자는 게 유일한 휴식이다. 그래서 왕고참들은 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위염, 기관지염을 달고 산다.

▶여승무원은 ‘항공사의 꽃’이란 상징 탓에 복장, 화장법, 헤어 스타일까지 회사 규정에 따라야 한다. 처음부터 타이트하게 재단된 유니폼 탓에 마음대로 먹지도 못한다. 유니폼이 보라색인 항공사는 와인색 계열의 화장만 허용한다. 한때 일본항공(JAL)에선 일등석 여승무원에게 기모노를 입혔다. 비좁은 화장실에서 기모노를 10분 안에 갈아입는 훈련을 수없이 받아야 했다.

▶이런 일본항공에서 30년간 스튜어디스로 뛴 사람이 1951년 창사 이래 첫 여성 사장이 됐다. 세계 100대 항공사 중 KLM, 에어링거스 등 12곳에 여성 CEO가 있지만, 아시아권에서 스튜어디스 출신이 연 매출 13조원, 종업원 3만명의 초대형 항공사 사장이 된 것은 세계 항공사에 기록될 파격이다. 그녀는 취임 일성으로 “JAL 여직원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에선 여승무원이 임원까지 승진한 적은 있지만, 경영자로 변신한 사례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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