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㉑ 1차 타깃은 방송사 뉴스, 2차는 PD수첩 등...시기별로 목표물 할당 정황
KBS와 MBC 등 4개 방송사에 억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결정 과정에서 이른바 ‘청부 민원’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심의 회의를 앞두고 각 방송 뉴스와 프로그램을 겨냥해 단계별로 들어온 사실이 뉴스타파 분석 결과 확인됐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가족과 지인 수십 명이 백여 건의 민원을 넣은 점, 절반이 넘는 민원 내용이 오탈자까지 똑같거나 매우 유사한 점 등과 함께 ‘청부 민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뒷받침 하는 새로운 정황이다.
지난 해 9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를 대상으로 방심위에 들어온 민원은 모두 277건이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30건)과 민주언론시민연합(32건)에서 넣은 민원과 무효 민원(11건)을 제외하면, ‘청부 의혹 민원’은 204건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민원들이 여러 날에 걸쳐 골고루 섞여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시기 별로 특정 프로그램에 집중된 점에 주목하고, 민원 제출 시점과 대상 뉴스 및 프로그램, 그리고 방심위 회의 일정을 교차 분석했다. 그 결과, 204건의 민원 가운데 대부분이 긴급 안건이 결정되는 주요 회의를 앞두고 특정 뉴스 및 시가 프로그램 등에 몰려 들어왔다는 점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특정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을 방심위 긴급심의 안건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정황이다.
뉴스타파 인용보도를 긴급심의 안건으로 올린 회의는 두 차례다. 2023년 9월 12일에 열린 제32차 방송소위 회의와 일주일 뒤인 19일에 열린 제33차 방송소위 회의다. 두 차례 회의를 기준으로 민원이 쏟아진 시기를 1차와 2차로 분류했다.
9월12일 회의를 앞둔 1차 시기(9월4일~7일)에는 4개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민원이 집중되고, 이후 9월19일 회의를 앞둔 2차 시기(9월10일~15일)에는 'MBC PD수첩', 그리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타깃으로 한 민원이 들어왔다.
1차 시기 : 뉴스 프로그램을 긴급 심의 안건으로 만들기
9월 12일 방송소위원회 회의에 올라온 긴급심의 안건은 ‘KBS-1TV <KBS 뉴스 9>, MBC <MBC 뉴스데스크>, SBS <SBS 8 뉴스>, JTBC <JTBC 뉴스룸>, YTN <뉴스Q>, <뉴스가 있는 저녁>’이다. SBS를 빼고, ‘청부 민원’ 타깃이 된 뉴스 프로그램이다.
회의가 열리기 전인 9월 4일~7일까지 민원 136건이 이 뉴스 프로그램들을 겨냥해 들어왔다. 분석 결과, JTBC 뉴스룸에는 63건, MBC 뉴스데스크에 48건, KBS 뉴스9에 21건, YTN 뉴스가 있는 저녁에 4건의 민원이 집중됐다. 민원 내용은 누군가 써준 것을 그대로 베낀 듯 거의 동일했다.
○ 류희림 위원장-다음 안건 의결번호 366호 KBS 1TV 코로나19 통합뉴스룸 KBS 뉴스9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옥시찬 위원- 잠깐만. 이것이 지금 긴급 안건으로 올라온 그런 내용이죠?
○ 지상파방송팀장- 예, 그렇습니다.
○ 옥시찬 위원- ...권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아름다운 합의 정신은 사라지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위원장께서는 김만배 관련 건에 대한 처리를 모두 마치신 후 연락을 주시면 그 후에 다시 회의에 참석토록 하겠습니다.
○ 류희림 위원장- 그러면 옥시찬 위원님, 지금 중간에 심의를 기권하시는 겁니까?
○ 옥시찬 위원- 저는 심의를 거부합니다. (퇴장)
- 제32차 방송소위 회의록 발췌
9월 12일 회의에선 야권 추천 방심위원이 없는 상태에서 류희림 위원장과 여권 측 황성욱, 허연회 위원은 이 뉴스 프로그램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YTN 뉴스Q’를 제외하고 모두 ‘의견진술’을 하도록 결정했다.
의견진술은 중징계를 염두에 두고, 방송사 관계자를 직접 불러 해명을 듣는 과정이다. 다만, ‘SBS 8 뉴스’ 관련 민원이 1건 있었는데 류 위원장과 여권 측 위원들은 ‘SBS 8 뉴스’ 관계자도 불러 ‘의견진술’을 듣기로 결정한다. 그러고선 다음 회의에 출석한 ‘SBS 8 뉴스’ 관계자에게 “굉장히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도했다”며 ‘문제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후 방심위는 ‘KBS뉴스9’에는 과징금 3천만 원, ‘MBC 뉴스데스크’에는 과징금 4천5백만 원, ‘JTBC 뉴스룸’(2022.3.7 보도)에는 과징금 1천만 원을 결정했다.
2차 시기 : PD수첩 등 추가 긴급심의 안건으로 만들기
2차 시기는 제32차 방송소위 회의를 앞둔 지난해 9월 10일부터 15일이다. 2차 시기 민원은 뉴스가 아닌, ‘PD수첩’ 등 시사프로그램과, 각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겨냥해 들어왔다. 10일에는 ‘MBC PD수첩’ 민원 12건이 연속해서 들어왔다. 또 13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만 민원이 들어왔는데 모두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10건, ‘주진우 라이브’에 6건, ‘YTN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6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6건의 민원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1차 시기와 마찬가지로 2차 시기에 들어온 민원들은 9월 19일 열린 제33차 방송소위에서 역시 긴급심의 안건으로 등장했다.
○ 황성욱 위원-이 사건은 사실상 대한민국에 뉴스타파만이 유일한 언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도로 확대된 것입니다. 아무런 검증도 거치지 않고 결과적으로 다 편집, 왜곡된 것이 그대로 시청자들한테 모두 보여졌고, 그것이 대선 3일 전이라는 여론조사도 공표되지 않는, 그러한 기간에 결과적으로 뉴스타파가 모두의 방송국이 되었던 그런 사건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건에 대해서는 전부, 방송국들이 경중은 있겠고 때로는 ‘문제없음’을 해야 될 프로그램도 있을 거라고 보여지지만, 일단 전부 어떤 취재 과정이 거쳐졌고 어떤 식으로 보도가 되었는지를 저는 확인하고 싶습니다. 전부 ‘의견진술’ 의견입니다.
○ 허연회 위원
- 저도 황 위원님 생각하고 똑같습니다. 전원 ‘의견진술’입니다.
○ 류희림 위원장
-...저희들이 한번 이번에야말로 이런 허위 녹취록이 떠돌았을 경우에 방송사들이 녹취록 자체가 조작되고 왜곡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취재해야 되는데, 마치 사실인양 인용부터 한 방송사부터 해서 다양한 방송사들이 있는데, 그 취재 과정을 저희들이 꼭 좀 한번 짚고 싶고,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가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관계자를 불러서 꼭 좀 얘기를 듣고 싶은 생각입니다. 물론 의견진술을 듣고 난 이후에 제재 수위는 그때 정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이번 방금 보고하신 긴급 안건 모두는 ‘의견진술’로 의결하겠습니다.
- 제33차 방심위 방송소위 회의록 발췌
‘MBC PD수첩’은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 1천5백만 원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는 ‘관계자 징계’를, ‘KBS 주진우 라이브’와’ YTN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는 ‘주의’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는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받았다. 모두 중징계에 해당하는 법정제재다. 법정제재부터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된다.
누군가 방심위를 통해 손 보고 싶은 방송 뉴스나 프로그램을 찍은 뒤, 여러 그룹의 사람들에게 표적을 할당하고 민원 내용을 써주고, 제출 시기도 조율한 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민원’은 억대의 과징금 처벌로 이어졌다. 류희림 체제 방송심의 전 과정의 유효성과 적법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류 위원장은 긴급심의 안건이 올라온 제32차(2023년 9월 12일), 제33차(2023년 9월 19일) 방송소위를 포함해, 제20차 전체회의(2023년 9월 25일), 제35차 방송소위(2023년 10월 5일), 제21차 전체회의(2023년 10월 16일), 제22차 전체회의(2023년 10월 30일), 제23차 전체회의(2023년 11월 13일) 등 모두 7차례 긴급 심의에 참여해 심의를 주도했다. 즉,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의혹 심의만 7번을 한 것이다.
뉴스타파 박종화 bell@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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