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신인 예술가, AI…"창의력, 인간만의 전유물 아니다"

구은서 2024. 1. 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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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휴이넘이 온다
(7) AI 예술시장 빅뱅
예술, AI 능력 최적 분야 부상
시쓰는 AI로 추상사고까지 도전
2년 걸리던 번역출판, 7일 만에
프롬프트는 '질문' 보다 '유도'
상식 벗어나는 예술가 역량 중요
누구나 예술해도 아무나 감동 못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붓 한 번 잡아보지 않고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맨 왼쪽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나머지는 이미지 생성 AI ‘달리’와 ‘미드저니’에 이 그림을 각각 반 고흐, 에곤 실레 등 다양한 스타일로 그려달라는 내용의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한 결과다. 미드저니


한 소녀가 뒤를 돌아본다. 고개를 살짝 틀어 왼쪽 어깨 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묘한 표정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기에 머리칼을 감싼 이국적인 터번, 귓불의 커다란 귀걸이는 소녀를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 지난해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걸린 그림 ‘빛나는 귀걸이를 한 소녀’ 얘기다.

이 작품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새로 탄생한 ‘빛나는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다. AI의 그림이 미술관의 문턱까지 넘자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화가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AI 예술 시장 연평균 40% 성장

입체주의 스타일


AI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시대다. 예술과 창의력은 로봇이 넘볼 수 없는 ‘인간 최후의 영토’일 거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다. 예술 분야가 AI의 능력을 시험할 최적의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개발된 ‘시아’는 시 쓰는 AI로, 인간의 추상적 사고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 쓰는 행위에 도전했다. AI는 이미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 번역서 출판 과정은 통상 1~2년 걸리는데 챗GPT와 AI 번역기를 활용해 이를 7일로 단축한 사례도 등장했다.

에곤 실레 스타일


이런 움직임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의 예측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창의적인 일자리부터 AI에 먼저 대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창의력은 어떤 아이디어를 이루는 패턴을 파악한 뒤 작은 단위로 분해해 새롭게 조합하는 작업인데, 이는 AI가 가장 잘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반 고흐 스타일


관련 시장도 지속 성장이 예측된다. 마켓리서치는 생성형 AI의 예술 시장 규모가 2022년 2억1200만달러 수준에서 연평균 40.5% 증가해 2032년 58억4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리서치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콘텐츠 시장에서 AI가 생성한 콘텐츠 비중은 2020년 1%에서 2025년 10%로 증가할 전망이다.

 ○AI 논쟁에 할리우드까지 멈춰서

예술 분야에서 AI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분쟁도 늘고 있다. AI를 저작권자로 인정해줘야 할 것인가, AI의 먹이가 되는 창작물에 얼마만큼의 저작권을 보상할 것인가 등을 두고 법정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할리우드 작가 1만여 명이 소속된 미국작가조합은 148일간 초유의 파업을 벌였다. 맷 데이먼, 메릴 스트리프, 마크 러펄로, 제니퍼 로런스, 제시카 채스테인 등 유명 배우들이 동참하면서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멈춰섰다. 제작 지연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4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작가·배우 동의 없이 작품에 AI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학계에선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건 AI를 다루는 ‘인간’ 예술가”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육후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라스무스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KAIST가 개최한 ‘AI+ART 심포지엄-인공지능과 예술’ 심포지엄에 참석해 “200년 전, 카메라의 등장으로 회화가 죽었다고 했으나 정작 사진이라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탄생시켰을 뿐 예술 본연의 가치는 바꿀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AI를 접목한 예술교육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AI를 피아노, 붓과 같은 예술의 도구로 보는 것이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융합교양학부 초빙 조교수는 작년부터 ‘AI 시대의 예술’ 과목을 전체교양으로 가르치고 있다. 40여 명의 수강생이 각자 AI와 함께 시를 쓴 뒤 그 시를 다시 AI로 통합하거나 ‘단단한 물’ ‘딱딱한 불’ 같은 모험적 주제를 가지고 AI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오 조교수는 “수업을 해본 결과, 기술적으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아무나 예술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AI 명령어인 ‘프롬프트’는 ‘질문’보다 ‘유도’에 가깝다”며 “자신의 상식과 세상의 경향에서 벗어날 줄 아는 인간 예술가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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