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기원… 진흙판의 비밀 [맥락+]
인류 최초 문자 미디어➋
수메르 사람들의 점토판 발견
농경 기반 국가의 탄생
파피루스가 점토판을 대체
이집트의 상징 파피루스
시간적ㆍ공간적 제약이 있는 말을 문자로 남길 수 있었던 건 역사적 함의가 크다. 문자가 없었다면 고대문화도, 지금의 찬란한 문명도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 문자 미디어' 1편에서 우리는 말이 문자가 된 경로를 짧게 살펴봤다. 2편에선 '책의 기원'으로 불리는 점토판이 만들어진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 '책의 기원'이라 불리는 점토판과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문자가 기록된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점토판이나 석판에 남은 것들이다. 책의 기원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과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 두루마리는 대략 BC 3000년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는 지리학상 중동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주변 지역으로, 현재 이라크 부근을 일컫는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이 자연적으로 가져다준 비옥한 토지 덕분에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발전했다. 고대문자가 만들어진 것도 '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강의 하류엔 강물이 운반한 흙과 모래가 쌓이면서 삼각주를 뜻하는 델타(delta) 지대가 만들어진다. 두 강의 하류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지류와 늪과 못, 개펄이 넓게 발달했다. 고대 수메르인,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히타이트인들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하류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깨끗한 진흙으로 점토판을 만들었고, 이는 문자를 기록하는 '틀'이 됐다.
추정컨대, 점토판의 진흙이 굳기 전에 철필로 설형문자를 새기고 햇볕에 말리거나 가마에 넣고 구워 만들었을 듯하다. 햇빛에 말리기만 했다면 점토판은 부서지기 쉬웠을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대인들은 점토판을 불에 굽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러 부수려고 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선 닳거나 손상되지 않는 점토판이 만들어졌고, 고고학자들은 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을 남긴 수메르(Sumer) 사람들의 점토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에 해당한다. 고대 인류가 기원전 6000년께 청동기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이곳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선 농경을 기반으로 한 국가가 탄생했다.
수메르인은 대략 기원전 7000년부터 이 지역에서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3000년에 크게 번성했다. 수메르 사람들은 점토판에 문자를 새기는 작업을 20 00년 동안 해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고대학자들이 점토판 속 쐐기문자를 해독하면서 수메르 문명의 일부가 드러났다. 그중엔 대사제 라가시(Lagash)가 왕 우루카기나(Urukagina)에게 보낸 편지도 있고, 홍수 이야기와 노아의 방주, 인간 창조, 바벨탑 내용도 들어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나 소아시아에서 출토된 점토판 기록의 분량이나 특질로 볼 때 고대인들은 보존력을 무척이나 중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대부분의 점토판은 개개인의 상거래를 기록한 서류와 국가의 문서들이다. BC 6세기께 아랍어와 알파벳이 등장하면서 사용하기에 훨씬 더 간편한 '파피루스(papyrus)'가 차츰 점토판을 대체해 나갔다.
파피루스는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피로스(papyros)인데 라틴어에서 비롯됐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종이와 비슷한 재료다. 같은 이름의 갈대과의 식물 잎으로 만든다. 파피루스 식물의 학명은 사이페루스 파피루스(Cyperus papyrus)인데 보통 2~3m 크기로 자란다. 지금은 수단 지역의 나일강 상류에서만 서식한다. 고대에는 이집트 통치 지역 전역에 무성해 이집트의 상징이기도 했다.
공병훈 협성대 교수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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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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