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휴가론 부족…아이 못 낳는 노동환경 손대야”

천호성 기자 2024. 1. 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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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저출생 대책, 전문가 의견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앞다퉈 저출생 공약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성북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4월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저출생 대책 모두 출생률을 높이는 데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주된 요인인 장시간 노동,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 단절 등을 해소하는 구조개혁 대책이 추가로 나와야 한다고 짚었다.

한겨레가 19일 여야의 저출생 대책 관련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니, 우선 재원 마련 대책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날 내놓은 저출생 종합대책은 모든 신혼부부에 가구당 1억원의 ‘결혼·출산지원금’을 10년 만기로 대출해주고, 자녀 한명 땐 이자 면제, 두 명 땐 원금 50% 감면, 세 명을 낳으면 원금 전액 감면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현재 8살 미만에 월 10만원 지급하는 아동수당은 8∼17살에 월 20만원을 주는 것으로 확대한다. 또 자녀 두 명을 낳으면 24평, 세 명을 낳으면 33평의 분양전환 공공임대 주택에 입주 기회를 준다.

민주당은 대책 시행에 연 28조원이 들 것으로 봤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이 빠져 실행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지난해 쓴 저출생 예산(32조원) 만큼의 재정을 한꺼번에 추가로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혼·출산지원금처럼 ‘목돈을 일시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출생률 제고라는 정책 목표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해미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겨레에 “저소득층 부모일수록, 향후 자신의 실직 등으로 가계 소득이 줄더라도 아이를 안정적으로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기를 원한다”며 “일시금보다는 아이가 성인이 돼 독립 가능한 연령까지 수당을 확대하는 데 정책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대책은 현재 열흘인 남성의 유급 출산휴가를 한 달로 늘리고,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을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올리는 등 일·가정 양립에 무게를 뒀다. 임신부만 쓸 수 있는 임신 중 육아휴직을 배우자에게도 허용하고, 노동자가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신청하면 회사의 승인 없이 바로 쓸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매년 5일 쓸 수 있는 유급 자녀 돌봄 휴가도 신설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역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정부의 재정 지원 대폭 확대 대책은 모호해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보험을 주요 재원으로 운영되는 육아휴직은 고용보험 가입자만 쓸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임금 근로자의 77%만 고용보험에 가입됐고, 비정규직 가입률은 54.2%에 그친다. 여당은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일·가정양립 제도를 확대해 내년부터 프리랜서와 특수고용형태노동자에게 육아휴직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미가입자에게까지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지원할 경우 기금재정 악화와 보험료율 인상 가능성이 높다 보니 정부 일반회계 전입금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경영학)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대한 실태 파악이 제대로 되어있는지부터가 의문”이라며 “일반회계 전입금을 과감히 투자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거나, 전국민 고용보험을 실행하는 등 적극적인 방향과 방법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기능을 흡수·통합해 ‘인구부’를 신설하겠다는 여당의 대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이런 대책은 여성 정책을 ‘출산’으로 국한하고, 인구출산 정책에서 여성을 도구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혜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은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 공약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여성 관련 정책이 출산밖에 없다는 정부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그 근거로 “저출생 대책으로 출산 휴가도 언급했는데, 이를 관장하는 고용노동부를 흡수·통합하겠다고는 하지 않느냐”며 “여가부가 해야 하는 성평등 관련 업무는 없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대책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의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긴 노동 시간, 출산 여성의 경력단절,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한 출산 기피 등을 해결하지 않고서 일시적인 금전적 지원이나 휴가·휴직 확대로 출생률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이다. 유해미 선임연구위원은 “부모가 출산·육아기에 근로시간을 줄이고, (출퇴근·근로 시간 등을)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고용 상태를 이어가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막대한 현금 등을 지원하는 것보다 이쪽이 현실적이고 재정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짚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 역시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늘리고, 이들이 필요로하는 주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등 거시적인 변화에 대해 정부와 각 정당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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