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아틀리에] 욕망을 그리는 작가, 욕망을 브랜딩 하다
작품 모티브로 한 음료 판매하는 카페 스튜디오
시각 예술을 미각으로 확장하는 작품 제작 아이디어
무라카미 다카시 스튜디오 닮은 분업 시스템이 특징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성지’로 소문난 카페가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라운지 희움’이다. 이곳에서는 커피와 차를 회 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는 ‘오마카세’로 맛볼 수 있다. 특히 재스민 허니티, 논 알코올 아이리시 커피, 스파이스 주스 등 6개월마다 바뀌는 오마카세 메뉴는 모두 교정기를 낀 여자아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지희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해 컬렉터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음료라니. 무슨 의미일까. ‘시각예술을 미각으로 바꾼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그를 ‘작가의 아틀리에’가 직접 만났다.
김지희의 작업실은 그가 운영하는 카페 ‘라운지 희움’이 있는 건물 2~3층에 위치해 있다. 건물 옥상에는 작가의 시그니처 이미지를 형상화한 거대한 피규어가 설치돼 있는데 조금이라도 작가에게 관심이 있는 이라면 멀리서도 ‘저 건물이 김지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피규어 역시 작품인데 혹한의 계절에 야외에 설치해두면 불안하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아깝고 걱정되기는 하지만 저를 상징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꼭 이곳에 설치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라운지 희움에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기반으로 제작한 다양한 피규어, 와인 등이 전시돼 있다. ‘유명 작가가 연 카페’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장사가 잘 될텐데 굳이 이런 공간을 기획한 이유가 있을까. 작가는 “작업할 때 ‘뿌리는 단단하게, 가지는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엄격하리 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되, 이 작품이 새로운 파생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시야를 열어두고 있다”며 “작품을 디자인뿐 아니라 미식에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술가의 협업이 식음료(F&B)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발상이 획기적이다.
협업을 유연하게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완성된 결과물은 원작 이상으로 꼼꼼하다. 라운지 희움의 상징인 ‘아트 브루 오마카세’는 6개월 단위로 메뉴가 변경된다. 작품의 디자인뿐 아니라 맛의 구현에도 참여하고 싶었던 작가는 1년여에 걸쳐 혼자 바리스타를 물색했다. 작가는 “점장님과 직접 작품이 잘 드러나는 맛을 연구했고 실제로 음료가 완성되고 나니 바리스타보다는 셰프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될 정도로 작품의 디테일을 음료에 잘 표현해줬다”고 말했다.
김지희 작가는 세밀화를 수없이 많이 그려낸다. 작품을 제작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사업체 운영을 한다니,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는 건지 묻자 “작가는 작품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를 단단하게 꾸리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명품 브랜드가 판매되는 논리를 적용했다. 샤넬·에르메스 등 명품이 잘 팔리는 것은 단지 제품이 고급 소재를 쓰기 때문은 아니다. 명품은 브랜드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디자이너 팀을 구성하고 누구나 욕망하는 물건처럼 보이도록 마케팅하는 모든 전략이 더해진 결정체다. 작가는 누구나 욕망하는 것들을 이미지로 구현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교정기를 낀 여자아이 혹은 선글라스를 낀 각종 동물이다. 이들의 선글라스에는 미국·유럽 등 환상적인 여행지가 보인다. 작품의 배경에는 금 혹은 눈부시게 반짝이는 보석이 장식된다. 그의 작품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끄집어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욕망’을 소재로 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욕망하길 바랐고 이를 위해 스튜디오를 철저히 분업화했다. 작가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작품을 알리고 팔고 전시하는 일은 스태프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스튜디오는 마치 작품을 양산하는 공장처럼 운영된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롤모델로 생각한 작가가 무라카미 다카시였다”며 “좀 더 스튜디오가 단단한 작가가 되고 싶어 이런 공간을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다”고 말했다.
직원만 뽑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반짝이는 기획력을 자신의 회사에 실험하고 있다. 미술계의 관행을 깨고 작품의 판매 기준을 재정의한 ‘트렁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통상 미술 작품은 10호, 50호, 100호 등 ‘호당 가격’으로 책정된다. 미술 시장에 처음 진입한 이들은 이 ‘호당 가격’에서 진입장벽을 느낀다. ‘1호당 가격이 얼마인지’ ‘작품이 몇 호인지’를 묻고 이를 빠르게 계산해 자신의 예산과 비교해야 한다. 초보 컬렉터들은 대개 여기서 위축감을 느낀다. ‘트렁크 시리즈’는 작가가 이러한 소비자들의 분위기를 읽고 선보인 새로운 작품 컬렉션이다. 작가는 “소비자에게 자신의 상품을 판매할 때는 가격이 명확해야 한다”며 “트렁크 시리즈는 이를 위해 ‘스몰·미디엄·라지’ 등 대중적인 용어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작품의 근간을 흔들지 않되, 협업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도 그만의 전략이다. 전시가 열릴 때는 우선 전시가 열리는 지역과 미술관의 분위기를 먼저 조사한다. 지역의 역사·문화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후 지역성과 자신의 작품을 결합할 수 있는 작품을 메인 작품으로 내세운다. 덕분에 작가의 작품은 누가 봐도 ‘김지희의 작품’임을 알 수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진부하거나 동일하지 않다.
예컨대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애프터눈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우리나라 신윤복 작가의 회화 작품과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연결해 작품 속에 녹여냈다. 덕분에 많은 파리의 유명 인사들이 작품을 사들였고 작가 자신도 유명 인사가 됐다. 같은 해 태국 조이만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태국의 왕관 ‘랏 끌라오’를 쓴 여성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는 전략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미 작가는 중국·대만에서 작가계의 아이돌로 불린다. 김지희의 팬들은 작품을 한 점만 수집하지 않는다. 컬렉터들은 ‘트렁크 시리즈’를 한 점이 아니라 많게는 수십 점을 구매해 벽면 가득 장식한다. 컬렉터라기보다 팬에 가까운 행위다. 2022년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사운즈 개인전 당시에는 새벽부터 작가의 그림을 보기 위해 갤러리가 문을 열기도 전에 긴 줄을 늘어서는 ‘오픈런’이 벌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올해도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달 27일부터 4월까지는 중국 선양의 K11 쇼핑몰 내 1200평 규모의 미술관에서 대형 개인전을 연다. 세계 100대 슈퍼 컬렉터인 에이드리언 쳉이 이끄는 선양 K11 미술관은 트레이시 에민, 오노 요코, 마리아나 아브라모비치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열린 곳이다.
작가의 화려한 작품은 특히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끈다. 최근 2~3년간 대만·홍콩 등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국 이상으로 많은 활동을 한 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4년에 걸쳐 완성한 10m에 이르는 대형 작품도 걸린다.
작품만큼이나 화려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작가는 여전히 안주할 생각이 없다. 그는 “이번 중국 전시는 작가로서도 중요한 시점에 얻은 좋은 기회로 1000평 정도의 전시 공간에 100점 정도의 작품이 전시된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는 소재를 더 다양하게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10m 작품에는 제 작품의 주인공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이를 계기로 좀 더 서사를 담은 작품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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