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시각] MBTI 유행과 우리 시대의 냉소주의

2024. 1. 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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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TI가 확고부동한 유행이 됐다.

소개팅 자리에서도 직업이나 나이보다 MBTI를 먼저 물어보는 일이 흔하다고 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나는 MBTI 유행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다름을 이상함이라고 여기지 않는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MBTI를 향한 놀이적 관심을 넘어 일종의 '맹신'이 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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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을 이해시키고
상대 대한 배려 폭 넓혔지만
태생적 운명 결정론에 함몰
더 나은 삶의 가능성 믿어야

최근 MBTI가 확고부동한 유행이 됐다. 소개팅 자리에서도 직업이나 나이보다 MBTI를 먼저 물어보는 일이 흔하다고 할 정도다. MBTI는 일종의 성격 유형 심리 검사로, 누구든 이 검사를 하면 총 16가지 유형 중 하나의 유형으로 나온다. 이 검사가 워낙 유행한 나머지 요즘 청년은 다들 자기 MBTI 정도는 혈액형처럼 기본으로 외우고 다닌다.

개인적으로 나는 MBTI 유행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다름을 이상함이라고 여기지 않는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16가지 유형 중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성격'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16가지 중 하나의 성격에 해당할 뿐이지 특별히 그중 어떤 유형에 들어간다고 '이상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MBTI가 유행하면서 내향적인 사람이든 외향적인 사람이든, 생각이 많은 사람이든 감정적인 사람이든 다 각자의 성격으로 존중받게 된 면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MBTI를 향한 놀이적 관심을 넘어 일종의 '맹신'이 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그 경향은 MBTI에 따른 성격 유형이 타고난 것이며 영원불변하는 성향이라고 믿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라 성격 유형이 고도의 자기 합리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I(내향적) 성향이므로 사람을 전혀 만날 필요가 없다거나, 반대로 나는 E(외향적) 성향이므로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서 정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당연히 믿어버리는 것이다.

혹은 나는 P(인식적·무계획적)라서 원래 계획을 세울 줄 모르므로 그냥 무계획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반대로 나는 J(판단적·계획적)이므로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하면 당연히 대처 불가능하고 불편하며 기분이 나쁘다고 스스로 믿어버리기도 한다.

이는 마치 "타고난 성격이 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최근 유행하는 것과도 맥이 닿아 보인다.

요즘은 수많은 것이 이미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일찌감치 믿고 좌절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부모 재산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로 인생이 나뉜다는 이야기조차 옛이야기가 됐다. 최근에는 아예 특정 분야의 재능뿐만 아니라 노력하는 태도, 인내력, 다정함까지 타고나는 것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이 유행한다. 이것의 다른 이름은 냉소주의라고도 할 법하다.

이러한 냉소주의가 유행하는 것은 삶의 변화 가능성을 전혀 믿지 않고, 그저 모든 게 원래 정해진 대로여서 내가 이 삶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리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습관이나 현 상태를 바꾸기보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손쉽게 택한다. 삶이 애초에 성향이나 유전자에 따라 결정돼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삶에서 '희망'이라는 피곤한 가치를 지워버린다.

우리 시대의 삶이 여러모로 어려운 건 사실일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청년 세대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해버린 부동산 가격이나 고물가, 취업의 어려움 등이 모두 우리에게 희망보다 절망을 강요하는 것 같다. 여러모로 희망하기보다 포기하기가 쉬워진 시대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자기 합리화의 침실로 도망가 들어가 버리기보다 오늘 또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희망에 걸어보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삶은 문을 열고 나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모든 걸 냉소하는 사람에게는 다가온 삶도 도망가버릴 것이다.

운명은 정해진 게 없으며 우리는 변할 수 있는 존재이자, 오늘 그리고 내일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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