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의 사견] 날것의 언어로 본 저출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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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지식인들이 앞다퉈 회람했고 미디어는 대서특필했다.
'출산율 0.7명'을 우려한 지난달 뉴욕타임스 칼럼 '한국은 소멸하고 있는가?' 얘기다.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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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지식인들이 앞다퉈 회람했고 미디어는 대서특필했다. '출산율 0.7명'을 우려한 지난달 뉴욕타임스 칼럼 '한국은 소멸하고 있는가?' 얘기다. 의외였다. 읽고 건질 것이라고는 흑사병에 빗댄 발상과 유력지의 권위가 전부였던 터다. 기존 논의를 잘 정리했지만, 그뿐이다. '미친 집값'은 언급조차 안 됐다.
기자로서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저출산은 단연 단골 주제다. 진단과 해법이 백가쟁명식으로 나온다. 남성과 여성의 견해가 다르고, 젊은이와 노인도 그렇다.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들의 날것의 언어는 한국이라는 풍경화를 보다 정치하게 그려낸다.
출산은커녕 혼인부터 난관이다. 2022년 기준 25~29세 남성의 혼인신고율이 100명당 2명, 30~34세는 4명이다. 전자는 2015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30대 A씨는 특히 "5점짜리 남자, 5점짜리 여자 부부가 없어져간다"고 말했다. 10점 만점에 5점인 평균인들. 예전엔 끼리끼리 잘 이어졌다. 지금은 다 7 이상을 바란다. 아니면 비혼을 선언하는 게 지금 세대의 '망탈리테'(특정한 시대에 개인들이 공유하는 집단 의식)란다.
버젓한 결혼의 기준부터 높아졌다. 동네 예식장은 줄줄이 폐업하는데 억대 특급 호텔은 미어터져 예약 불가다. 20대 B씨는 "진짜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리는 이상적인 결혼식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 단독주택·빌라는 집도 아니다. '마용성'이니 '은중동'이니 서울 한복판에 20~30평 아파트로 시작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것'이 됐다. 세계 어느 선진국이든 수도의 집값은 비싸고, 신혼 땐 단칸방에 사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다.
고약한 체면치레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젠 '오르지 못할 나무'까지 쳐다본다는 게 문제다. 커뮤니티에 회자됐던 한 대학생의 고찰은 핵심을 찌른다. "메이저 의대 정원은 500명도 안 될 텐데 들어가려고 다들 애쓴다. 자랑할 만한 전문직·대기업·고소득 직장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이게 아니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조한다."
인스타그램의 영향이 상당하다. 드라마 속 재벌은 '남 얘기'였지만 여기선 '내' 친구, 동생이 24시간 자랑한다. 결혼도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시하는 곳'이다. 요즘 웨딩 촬영 땐 영수증에 없는 '간식비'가 붙는다. 사진값을 이미 다 내고서도 잘 찍어달라고 대접하는 게 관례란다. 도대체 그놈의 인스타가 뭐라고.
경제적 동인도 있다. 40대 C씨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저숙련 사무직 여성의 '나 홀로 서울살이'를 가능케 하며 비혼주의 토양을 마련했다고 본다. 2023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으로 2017년 대비 1.5배다. 동 기간 서울 전월세 연평균 상승률 1.0%를 고려하면 실질 주거비 부담이 6년 새 30% 가까이 줄었다. 적어도 집세를 아끼려고 연인과 합칠 유인은 많이 약화된 셈이다.
청약저축을 안 하니 월세·생활비를 빼고도 남는다. 몇 달만 아끼면 남들 다 하는 오마카세·호캉스도 가능하다.
반면 결혼해서 얻을 것이라고는 빚 딸린 변두리 집이요, 잃을 것은 그간 만끽했던 1인 가구 라이프 전체다. 그들은 '합리적' 결론에 도달한다. "만국의 비혼자여, 단결하라!"
[서정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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