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①] 두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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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막내 강아지 여름이는 어릴 때부터 힘이 좋았다.
스물일곱 살 때 나는 첫 번째 직장 장기신용은행에서 나왔다.
마흔 이후가 죽은 나이라면 스물 혹은 서른은 살아 있는 때다.
천륜보다 인륜이 더 무겁기 때문이거나 내가 가지게 된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 가급적 위험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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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해도 재미없는 마흔 넘어
두려움은 젊음의 병 아냐
직장·사랑 당당히 부딪쳐라
우리집 막내 강아지 여름이는 어릴 때부터 힘이 좋았다. 여름이는 생애 첫해를 제주도에서 보냈다. 매일매일의 산책길은 생기(生氣)라는 게 그렇게 힘찰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생명실험 같았다. 집을 나서면 주인과 멀어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듯 뛰어나가고자 했다. 목줄을 통해 팽팽하게 느껴지던 그 발랄함의 힘. 하루는 서귀포 화순의 금모래해변에 데려갔다가 바다 모래를 한 사발쯤 들이켰던지라 동물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의사는 돌도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니 "돈 워리".
오래전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독서 기록을 들춰보니 10년 전인 2014년 9월, 마침 마흔일곱 살 때다.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미국 소설가 제임스 설터는 로맹 가리보다 더 심하다. '스포츠와 여가'에서 그는 마흔 살을 이렇게 본다. 이미 경험할 것은 다 해봐서 무엇을 해도 재미없는, 스무 살의 젊음이 보기엔 굳이 더 살 필요도 없는 그런 나이로.
스물일곱 살 때 나는 첫 번째 직장 장기신용은행에서 나왔다.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되었다. 은행 일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봉도, 동료도 꽤 좋았다. 그런데 매일매일의 출근길이 넥타이만큼 답답했다. 그 이후에도
직장을 여러 차례 바꿨다. 하지만 첫 번째 이직만큼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갈수록 어려워졌다. 한 가지 걱정에서 애써 벗어나면 다른 두 가지 걱정이 생겼던 탓이다.
마흔 이후가 죽은 나이라면 스물 혹은 서른은 살아 있는 때다. 돌도 쇠도 소화시킬 수 있는, 무쇠 팔 무쇠 다리를 갖춘 무적 시대다.
가수 이상은은 '언젠가는'이라는 노래에서 그랬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고. 젊음을 모르니 젊음이 해야 할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을 알기 어렵다. 현재 가진 것이 없다고 미래에 가질 수 있는 대단한 것을 눈에 두지도 못한다. 혹은 한 줌도 안 되는 이미 가진 것에 속아 앞으로 가질 수 있는 한 아름의 기회를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마는 실수를 하기 쉽다.
두려움은 젊음의 병이 될 수 없다. 늙어가는 게 두려운 것은 두렵다고 생각한 나머지 어떤 일의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거다. 그러니 적어도 젊은 때만큼은 두려워하지 말기를. 그까짓 직장쯤에. 연애나 결혼, 출산, 주택 구입이나 진학, 건강, 부모 따위도 마찬가지겠다. 당당하게 부딪쳐 보기를. 어린 강아지처럼, 목줄을 끊고 나갈 정도로 팽팽하게.
시인 고명재는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에서 개와 같이 순수한 날의 날뛰는 힘을 찬양한다. "개의 눈과 아이는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전히 날뛰는 힘을 갖고 싶어서/ 눈 녹인 물을 내 안에 넣고 싶었다".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는 후학들에게 넘겨줄 가장 큰 지혜는 "'쫄지' 말라"는 것이라 했다. 사람이 살면서 '쫄아야' 할 대상은 셋밖에 없다고도 했다. 부모님, 아내 그리고 하나님. 살아보니 셋 중에 가장 신경 써야 할 분은 아내였다. 천륜보다 인륜이 더 무겁기 때문이거나 내가 가지게 된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 가급적 위험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겠다. 아내가 없었던 스물일곱의 나는 무서울 게 없어야 했다.
※ '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는 쉰일곱 살의 CEO가 30년 전 스물일곱의 젊었던 자신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매회 뽑은 1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억과 생각을 나눕니다.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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