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의 '내남결'에 열광하는 당신, 혹시 2회차 인생 원하나요?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또 2회차 인생이야?" 누군가는 타박한다. 그런데 결국 또 보게 된다.
2회차 인생을 사는 주인공을 그린 회귀 드라마는 최근 몇 년 사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촉발됐고 최근 '완벽한 결혼의 정석'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 유사한 이야기틀을 가진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노크하고 있다. 한 때 타임슬립, 의학, 법학 드라마가 유행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대중이 2회차 인생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어려운 팍팍한 세태와 맞물려 있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를 취하고자 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약,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지만 이는 부질없는 후회다. 시간을 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서 한때는 타임슬립 드라마가 그 갈증을 해소해줬다. 뜻하지 않은 기회로 과거 특정 시점으로 가게 되고,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2회차 인생을 사는 회귀물은 그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미래의 기억을 간직한 채 과거의 나로 깨어났기 때문에 주변의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그만이다. 그 안에서 조금씩 삶에 변화를 준다. 당연히 내 인생은 윤택해진다.
원래 대중은 이런 얘기를 좋아했다.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3∼1994년 방송된 MBC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TV인생극장'은 두 가지 삶을 모두 살아보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방송인 이휘재가 주인공으로 열연했고,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삶과 선택에 대한 욕구는 회귀 드라마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자. 재벌집의 하수인으로 살던 남자가 피살된 후 그 집의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난다. 미래를 알고 있는 터라 서울대 법대 합격에 대한 대가로 할아버지에게 분당 땅을 요구한다. IMF를 앞두고 이를 피해가고,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911 테러를 적절히 활용한다.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대세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안에서 적절히 나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가는 것이 골자다. 그런 뛰어난 수완을 보이니 재벌가 창업주인 할아버지의 절대적 신임도 얻는다. 그리고 그 궁극적 목적은 1회차 인생에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을 찾는 것, 즉 복수다. 모든 시청자들이 그 복수를 지지했다. 그렇기에 결국 2회차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결과에 도달했을 때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대리만족을 만끽하던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친 탓이다.
또 다른 회귀물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행보를 타산지석 삼은 듯 더 영리하게 2회차 인생을 매만지고 있다. 역시나 그 시작은 복수다. 주인공 강지원(박민영)은 암투병 중 남편과 절친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현장을 목격하고 오열하던 강지원은 결국 살해당한 뒤 10년 전 자신으로 다시 깨어난다. 그리고 쓰레기 같은 남편과 평생 자신을 기만했던 절친을 결혼시키려 한다. 그래서 제목이 '내 남편과 결혼해줘'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화제작이나 기대작이라 보긴 어려웠다. 최근 침체된 월화극으로 편성됐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맡은 배우 박민영은 불미스러운 일로 구설에 올라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재미, 박민영의 호연, 기발한 설정 등이 맞물리며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단박에 2024년 현재 가장 주목받는 드라마로 등극했다.
일단 일반 회사를 배경으로 해 '재벌집 막내아들'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진입장벽도 낮다. 재벌가의 이야기는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오피스물의 성격도 띤다. 강지원은 평소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실적을 가로채려는 과장과 상무에게 한 방 먹인다.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향해 복수하는 장면도 백미다.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동창회에 등장 후 당당하게 제 할 말을 하며 일진 무리를 제압하는 강지원의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이들이 적잖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2회차 인생이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설정을 넣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유지혁 역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깨어나 두번째 삶을 살고 있다. 원래 강지원을 흠모하던 유지혁은 더 이상 주저하거나 참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강지원을 보호한다. 자신의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우유부단함에 대한 반성이다. 게다가 그는 재벌 2세다. 이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하지만 상관없다. 2회차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시청자들은 '현실감'으로 이 드라마를 재단하지 않는다.
이런 설정은 서로가 2회차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두 사람을 그린 6회 엔딩으로 이어진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다가 상대방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상황 설정은 간지럽지만 짜릿하다.
이런 감정의 종착지는 대리만족이다.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는 건 모든 인간의 소원이다. 우량한 주식 종목에 투자해 돈을 많이 벌고, 위험을 피하며, 내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낸다. 물론 내가 할 순 없다. 그러니 내가 지지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2회차 인생을 응원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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