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버스 무게 견뎌내는 지름 20㎜ 볼트… 작은 것들의 거대한 기적
세상 토대가 된 발명품 분석
이집트, 기원전 3400년부터
못 활용해 배 만들어 바다로
남성 위주 공학 분야서 활약
여성 엔지니어 사례도 조명
손가락보다 작은 못에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숨어 있다.
인류는 약 8000년 전 석기시대부터 금속을 캐냈고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청동에서 강한 재료의 가능성을 찾았다. 가장 오래된 청동 못은 기원전 3400년 전의 것으로 이집트에서 발견됐다. 이를 활용해 배와 전차를 조립했다. 못은 원래 나뭇조각을 잇는 데 쓰였다.
인도산 철을 쓰는 로마 못은 품질이 좋고 크기가 균일하기로 유명했다. 숙련된 금속공은 철을 1300도 이상 달군 뒤 눈부신 백색으로 빛날 때 망치로 두드려 머리를 만들었다. 망치에 힘을 실어 정확한 방향으로 내리쳐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노동이다. 로마 제국 몰락 이후 유럽에서 못 제조 기술은 수 세기 동안 귀한 기술로 취급됐다. 못의 가치가 높아 산업화 이전에 영국은 목재 주택이 일반적이던 북아메리카 등 식민지로 못 수출을 금지했고, 이 지역에선 이사할 때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잿더미에서 못을 수거할 정도였다. 17세기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방화를 막고자 집을 살 때 못 개수를 계산해 지급하라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 건국 주역인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못 공장을 차렸다. 400명이 넘는 노예가 하루에 1만개의 못을 만들었다.
나중에 나사가 등장해 못이 더 큰 힘을 지탱할 수 있게 됐지만 만들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그 뒤 얇은 금속판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되자 못과 나사는 리벳으로 대체됐다. 냄비를 만들던 리벳이 더 크고 강해지면서 금속판, 선박, 교량을 이어 붙일 수 있게 됐다.
기술자는 리벳과 나사를 합쳐 더 쉽게 쓸 수 있는 볼트를 발명했다. 건물, 공장, 트랙터, 자동차, 세탁기 등 금속조각을 이어 붙여야 하는 모든 물건에는 못, 나사, 리벳, 볼트가 쓰인다. 저자가 구조 엔지니어로 6년간 일한 영국 런던 최고층 빌딩 더샤드(The Shard)를 견고하게 고정한 것도 바로 볼트다. 건설에 쓰이는 지름 20㎜ 볼트 하나는 약 11t의 인장 하중을 견딘다. 런던 2층 버스 무게다.
매혹적인 건축물 이야기를 들려준 '빌트'의 저자, 구조공학자 로마 아그라왈의 신작이 나왔다. 다리, 터널, 기차역, 마천루 등을 설계하는 저자는 자신을 평생 매료시켜온 주제를 마침내 책으로 써냈다.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작은 사물에 얽힌 이야기다.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작고 단순한 일곱 가지 발명품이 있다. 못, 바퀴, 스프링, 자석, 렌즈, 끈, 펌프다. 이들은 다양한 반복과 형태를 거쳤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경이로운 발명품이다.
팬데믹 시기에 집에 갇혀 물건을 분해해본 저자는 이 일곱 가지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기 이유식을 만드는 믹서는 기어와 톱니바퀴로 돌아갔다. 볼펜은 스프링과 나사, 회전하는 구가 중심이었다. 딸을 낳을 때 체외수정을 도와준 건 렌즈였다. 친구와 연락하게 해주는 전화와 인터넷에는 자석이 필수품이었다. 굴착기, 고층 건물, 공장, 전력망, 자동차, 인공위성 등 더 복잡한 물건도 언제나 이 일곱 가지를 기초로 한다.
쓰임새에도 특색이 있다. 스프링은 우리가 조용한 도시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도구다. 자석은 전화와 인터넷 등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물건이다. 렌즈는 실제로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을 탐구하게 했고, 펌프는 심장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서구 남성이 지배해온 엔지니어링 분야의 그늘에서 활약한 소수자도 조명한다. 그중엔 1893년 시카고 산업박람회에 참석한 유일한 여성 엔지니어가 있다. 조지핀 코크런은 식기세척기의 원형을 발명했다. 그동안 남성 엔지니어도 식기세척기를 발명하려고 수없이 시도했지만, 설거지와 거리가 먼 그들이 만든 기계는 번번이 그릇을 깨부쉈다. '그릇이 상하지 않는 설거지 기계'라는 자신의 필요와 생계를 위해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어낸 코크런은 사후에야 발명품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엔지니어링이 과학과 디자인, 역사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책을 덮고 나면 묵묵히 실험실과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이름 없는 엔지니어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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