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에 솟은 등대·건물 위에 선 돗대…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1. 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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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빛의 집'이다.

형제처럼 변주되는 다른 연작 속 등대들은 바다 끝이 아닌 황무지, 폐허에 서 있기도 한다.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상상 속 등대다.

일본어로 '먼 광경을 투영하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작가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낮은 수평선 위로 아찔하게 솟은 등대, 다리 등 구조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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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서울 3월 2일까지
일본 작가 노마타 미노루전
시간·장소 초월한 미학 담아

등대는 '빛의 집'이다. 길 잃은 배엔 길잡이고, 여행자에겐 지상의 끝을 알려주는 곳. 그런데 이런 등대를 상상해보자. 빛을 비추는 등명기를 대신해 작은 집이 꼭대기에 있다. 차를 마시는 소박한 다실(茶室)이다. 등탑에는 드문드문 창문이 뚫려 있고 1층은 영락없는 가정집이다. 형제처럼 변주되는 다른 연작 속 등대들은 바다 끝이 아닌 황무지, 폐허에 서 있기도 한다.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상상 속 등대다.

"차를 마시는 하나의 작은 우주다. 천장 위를 올려다보면 우주와 연결된다. 동일본 대지진 이전의 그림이라 빛이 너무 밝아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그리면서 나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작년 가을 한국에 진출한 영국의 세계적 화랑, 화이트큐브 서울의 첫 개인전 주인공으로는 일본 작가 노마타 미노루(69)가 선택됐다. 3월 2일까지 열리는 전시 '영원(映遠) - Far Sights'에는 작가의 1996년부터 2018년까지의 회화와 드로잉 20여 점이 걸렸다. 런던·뉴욕 등에 소재한 화이트큐브는 그의 여러 작업을 동시에 세계에서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했다.

Far Sights-2010. 화이트 큐브

기획자인 화이트큐브 런던의 아이린 브래드버리 디렉터는 "화이트큐브에서 여는 네 번째 전시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숭고한 미학을 만날 수 있는 작업들이다. 작가의 작업 전반의 변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열릴 런던 메이슨야드 전시에서 최근 연작의 최종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예술대를 졸업하고 광고 대행사를 5년간 다니다 전업 작가가 된 그는 도쿄 메구로 미술관, 일본 군마 현대미술관, 영국 벡스힐의 드 라 워 파빌리온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일본어로 '먼 광경을 투영하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작가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낮은 수평선 위로 아찔하게 솟은 등대, 다리 등 구조물을 그렸다. 초기작인 'Eastbound' 연작은 자포니즘(Japonism·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풍 사조)과 동양 미학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작가는 외부의 시선에서 일본 문화를 고찰했다. 산업화된 도쿄에서 자란 작가의 유년기 추억이 주요 소재가 됐다.

지난 12일 가족과 함께 방한한 작가는 "일본 미술은 전통적으로 보면 고구려에서 영향받아 발전한 측면이 있다. 아마 내 유전자에도 그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 가져올 작품을 고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Forthcoming Places' 연작에는 건물 위에 돗대가 달렸다. 작가는 "딸이 많이 아파서 한 달 동안 의식 불명인 상태였다. 그때는 사람을 그릴 수 없었고 오직 자연만 그렸다. 건강을 회복한 뒤,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희망을 담아 그린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Ghost' 연작은 철거되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건물들의 환영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는 한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작가는 "문명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른 것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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