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쌉쌀·향긋, 취향 녹인 한 잔[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가장 크게 느껴졌던 음식이 바로 핫초콜릿이다. 당시 집에서 가끔 특식처럼 마실 수 있었던 초콜릿 음료는 가루를 물이나 우유에 풀어 마시는 코코아였다. 그 또한 달콤해서 좋아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따뜻한 마시는 초콜릿’에 기대하는 맛은 아니었기에 의아했다. 그냥 우유에 초콜릿을 넣고 좀 흔들었다 뺀 것 같은 맛? 나는 입술에 코팅이 될 정도로 진한 초콜릿 그 자체를 마시고 싶은데. 하지만 아마 부모님도 정통 핫초콜릿은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핫초콜릿은 가루를 타서 만드는 코코아와 달리 초콜릿을 바로 녹여서 만든다. 마치 초콜릿 분수에서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초콜릿처럼 진갈색 그대로 걸쭉하고 진한 액상이 되어야 한다. 아주 먼 옛날, 강장 효과를 위해 씁쓸한 원형 그대로의 카카오를 갈아 마시던 아즈텍인처럼 날것의 겨울바람에 노출되어 온기와 원기 보충이 필요한 캠퍼에게 제격인 음료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핫초콜릿에는 에피카테킨 등 항산화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의외로 영양가가 있고(단, 정통 초콜릿을 사용할 경우) 단맛과 온기를 통해 추운 곳에서도 속부터 따뜻하게 데워주는 역할은 물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캠핑 후에 앓아눕는 일이 없도록 원기를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한 냄비로 아이 버전에서 어른 버전까지 손쉽게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겨울의 인기 캠핑 음료, 핫초콜릿에 대해 알아보자.
기본 핫초콜릿 마스터하기
우선 설탕과 향신료 등이 섞인 가루를 물이나 우유에 풀어 묽게 만드는 코코아와 달리 핫초콜릿은 진짜 초콜릿으로 만들어 질감이 좋고 진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아주 한여름만 아니면 보관하기 까다롭지 않으니 베이킹용으로 판매하는 판 초콜릿이나 단추 모양 초콜릿을 한 봉 사서 캠핑 짐에 넣어두자. 이때 깔끔하고 내 입맛대로 쉽게 변주할 수 있으려면 밀크가 아니라 다크 초콜릿을 카카오 함량이 65% 이상인 것으로 고르는 것이 좋다.
쌀쌀한 바람에 손가락이 자꾸 곱아든다는 핑계로 들고 있을 따뜻한 음료가 필요해지면 냄비에 초콜릿을 잘게 썰어 넣고 불에 올려보자. 여기에 우유를 붓고 가볍게 저으면서 데워야 바닥에 초콜릿이 눌어붙어 타는 일이 없다. 우유 대신 두유를 써도 좋고, 진한 맛을 내고 싶으면 생크림과 우유를 반반씩 섞어 넣어도 아주 좋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만약에 마무리로 술처럼 농도를 묽게 만드는 재료를 넣는다면 크림을 사용하도록 하자.
이렇게 녹이기만 해도 엄밀히 말해 뜨거운 초콜릿이 되는 셈이지만, 제대로 된 핫초콜릿을 만들려면 무가당 카카오 파우더를 조금 섞는 것을 추천한다. 시판 코코아용 가루와 달리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무가당 카카오 파우더는 달기만 해서 질리기 쉬운 핫초콜릿에 정통 초콜릿 풍미와 쌉싸름한 맛을 가미해 깊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브라우니나 초콜릿쿠키 등을 만들 때도 카카오 파우더를 조금씩 넣어야 깊은 초콜릿 풍미가 난다. 맛과 질감은 판 초콜릿, 초콜릿 풍미는 카카오 파우더로 잡는다고 생각하면 딱 맞다.
전체적으로 잘 녹으면 맛을 보고 쌉싸름한 맛은 카카오 파우더로, 단맛은 설탕으로 조절한다. 다크 초콜릿을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서도 알 수 있다. 당도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너무 단맛이 강한 초콜릿을 사용하면 나중에 과한 단맛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다크 초콜릿과 카카오 파우더로 초콜릿 맛을 완성한 다음 설탕으로 입맛에 따라 간을 맞추는 것이다.
알딸딸하게, 향기롭게, 색다르게 마시기
기본 핫초콜릿은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맛있다. 위의 설명을 따라 만들었다면 코코아와는 완전히 다른 음료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다양한 초콜릿의 종류가 있듯이 핫초콜릿도 본인의 입맛에 맞춰 얼마든지 변주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견과류 초콜릿 바? 소금이 들어 있어 ‘단짠’을 즐길 수 있는 솔티드 초콜릿? 민트 초콜릿? 이미 초콜릿과 어울리는 재료라면 뭐든지 넣어볼 수 있다. 게다가 이미 캠핑장에 가져갔을 확률도 높은 재료들이다.
그중 가장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변형 메뉴는 단연 어른을 위한 초콜릿, 기네스 핫초콜릿이다. 쌉싸름한 맛과 맥아의 단맛, 구운 곡물의 향을 지닌 흑맥주는 비슷한 풍미의 초콜릿과 잘 어우러지면서 깊은 맛을 선사한다. 풍미가 많이 날아가지 않게 하려면 우선 초콜릿을 평소보다 적은 양의 크림에 완전히 녹인 다음 불에서 내리고 기네스를 콸콸 부어 골고루 잘 섞는 것이 좋다. 이때 한 번에 너무 많이 부으면 초콜릿과 맥주가 분리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 물론 분리되어도 다시 데우면서 휘젓다 보면 핫초콜릿이 된다. 그리고 좀 분리되면 어떤가. 그래봤자 진한 초콜릿과 맥주인데. 술과 안주를 한입에 같이 넣는다고 생각하자.
내 취향은 맥주가 아니라면? 술이 들어간 초콜릿 봉봉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핫초콜릿에 다양한 리큐어를 넣어 칵테일처럼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칼루아 등 커피 리큐어나 에스프레소를 넣으면 모카 핫초콜릿이 된다. 럼이나 위스키도 초콜릿에 포인트가 되는 맛을 선사하고 속을 따뜻하게 해서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술이다. 캠핑장에 자주 가져가는 나만의 술이 있다면 약간 섞어서 테스트 삼아 마셔보자.
만일 견과류가 들어간 초콜릿 바를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땅콩버터와 땅콩가루를 넣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누텔라로 대표되는 초콜릿과 헤이즐넛의 궁합, 토블론 초콜릿 바에서 알 수 있는 초콜릿과 아몬드의 궁합, 스니커즈의 인기처럼 영원할 초콜릿과 땅콩의 궁합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걸쭉하게 만들어서 땅콩버터를 한 숟갈 더해 잘 섞은 다음 땅콩가루를 뿌려서 마셔보자.
그리고 정말 평소와 다른 맛을 테스트하고 싶다면 감귤류 계열을 섞어보는 것도 좋다. 영국에는 오렌지의 과육 모양까지 재현한 테리스 초콜릿 오렌지라는 과자가 있다. 달콤하게 조린 오렌지 껍질에 초콜릿 코팅을 입힌 오랑제트도 초콜릿 전문점인 쇼콜라티에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초콜릿이다. 그 향기의 조화가 산뜻하고 화사한 느낌을 선사한다. 다만 감귤류 자체는 산미가 강하기 때문에 설탕에 조린 오렌지필처럼 한 번 조리를 거친 것을 섞는 쪽이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완성한 핫초콜릿에 유자청을 한 숟갈 넣어서 섞어보자. 의외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의 재료가 없어도 상관없다. 뱅쇼를 좋아하는 캠퍼의 짐을 뒤져보면 어딘가에 시나몬 스틱이 굴러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핫초콜릿을 손잡이가 있는 캠핑용 금속성 컵에 부어 시나몬 스틱으로 휘저어가며 마셔보자. 은근한 향이 매력적으로 올라올 것이다. 양념통에 남은 고춧가루를 조금 뿌려 멕시코 스타일로 마셔볼 수도 있고, 숯불에 구우려 했던 마시멜로를 가위로 송송 잘라 띄워도 좋다. 에스프레소가 없다면 인스턴트커피를 넣어 모카 핫초콜릿을 만들어보자. 캠핑장의 텐트 개수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볼 수 있는 핫초콜릿.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즐길 수 있는 캠핑 음료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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