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가 현대에 셋방살이”···커지는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목소리

이영경 기자 2024. 1. 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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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근대미술을 담당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금 대한민국 국립 미술박물관은 고전과 현대라는 2관체제에 머물러 있습니다.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함으로써 고전, 근대, 현대의 3관 체제(국립중앙박물관, 국립근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를 갖출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9일 서울시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2024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추진을 위한 전국 포럼’이 열렸다. 지난해 11월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위한 전국연구자포럼(포럼)이 조직된 후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열린 창립 기념 포럼이다.

현재 한국의 고전 미술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근현대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담당하고 있다. 근대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이 담당하고 있지만, 규모와 인력 면에서 제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는 미술사학자 최열은 “소장품 규모나 학예인력 구성을 보면 근대·현대·동시대 비례를 따져 볼 때 가장 취약한 영역이 근대”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경우 루브르 박물관은 고전 미술, 오르셰 미술관은 근대 미술, 퐁피두센터는 현대미술을 다루는 등 근대미술을 전문적으로 전시·소장·연구하는 미술관이 특화돼 있다. 영국 런던에도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일본에도 국립근대미술관이 있다.

홍지석 단국대 교수는 “근대미술관이 먼저 세워지고 그 이후에 현대미술관, 근현대미술관 등이 세워지는 것이 글로벌 표준”이라고 말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부모(근대)가 자식(현대) 집에서 셋방살이하는 미술관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근대미술이 유독 ‘찬밥신세’인 이유는 일제의 식민지배 때문이다. 근대로의 이행기를 일제 치하에서 보냈기에 ‘질곡’ ‘굴절’된 시기로 여겨졌다. 포럼 창립취지문은 “대한민국에 근대미술관이 부재한 상태는 ‘근대의 실종’을 상징하는 일”이라며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식민과 전쟁, 분단이라는 혼란의 역사로 말미암아 ‘근대’를 건너뛰고 바로 ‘현대’로 나아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근대미술관 설립을 위한 시도는 있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 덕수궁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추진했으나, IMF 체제로 전환하면서 ‘작은 정부’ 방침에 따라 취소되고, 1998년 12월 근대미술 전문기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이 들어섰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 인력 부족, 독자적 발굴·조사·연구 및 기획사업이 어려운 실정으로 한계가 명확했다. 2024년 1월 기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의 근대미술팀은 7명에 불과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1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하면서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목소리가 더 커졌다.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져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기’ 소장 작품과 이건희 기증품의 ‘근대기’ 해당 작품을 합하여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요구는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포럼은 창립취지문에서 “대한민국은 근대의 부재라는 비정상을 정상화시켜야 하고, 이를 통해 근대 국민국가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며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촉구했다. 이어 “근대미술품은 굴절과 수난의 역사 속에 파괴와 망실을 겪었다. 공공성을 지닌 국립근대미술관이 창설된다면 은폐된 근대미술은 비로소 태양아래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전국 각지에서 이뤄진 근대미술에 관한 조사와 수집, 각종 연구 성과를 집약하여 전시와 교육을 적극 수행함으로써 전문가는 물론 시민과 공유하는 중심기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근대·현대 미술을 모호하게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도 의식하고 있다. 최근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술관의 역할이 한정되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이름을 ‘국립미술관’이나 ‘국립근현대미술관’으로 바꾸는 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독립된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하기보다는 명칭을 변경하고 현대·근대를 포괄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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