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들이 편안해지는 집이 있다

2024. 1. 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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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본에서 본 인상 깊은 TV 프로그램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아이는 울부짖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아이와 한 발을 떼게 하려는 부모의 노력이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난 그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몇 년 전, 또 다른 은둔형 외톨이를 접했다. 이번엔 소설 속 주인공이었다. 긴 소설은 주인공이 밖으로 한 발짝을 떼고서 끝이 난다. 책장마다 주인공은 그 한 걸음을 위해 숨을 고르고, 망설였다가, 결국 어두컴컴한 방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고립·은둔 청년의 조기 발견을 위해 자가진단시스템을 마련하고 129콜센터에 청년 항목을 신설한다. 이렇게 발굴한 청년들을 위해 전담 지원기관을 설치하고 청년도전 지원사업 등을 확대한다. 문화케어 프로그램을 늘리며 현장 종사자 관리체계도 효율화한다. 또 고립·은둔 청소년의 경우,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 전담인력을 두며 다양한 지원을 해나갈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5월 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와 민간 지원기관인 (사)씨즈와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청취한 바 있다.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두더집.

TV에서 본 아이와 소설 속 청년이 겹쳐졌다. 궁금했다. (사)씨즈가 운영하는 파란 주택 두더집 문을 열었다. 드르륵~ 작은 긴장은 그들의 반가운 인사에 녹았다.

휴식공간에 있는 빨간 찜통이 포근해보였다.

“며칠 전, 다같이 호빵을 쪄 먹어서요.”

자유공간인 거실에서 맨 먼저 빨간 호빵 찜통이 시선을 끌었다. 다양한 보드게임과 책들로 채운 수납장과 피아노도 보였다. 의자에 앉은 청년은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2층 공간에서는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잔잔한 클래식이 몹시 어울릴, 그런 분위기였다.      

씨즈 리플릿과 말랑말랑모임터 안내문.

(사)씨즈는 2010년부터 청년 세대의 자립에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다. 국제 교류와 로컬크리에이터처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다. 활력 넘치는 청년들이 모였고, 그들은 청년 정책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만났다. 그러자 사각지대가 떠올랐다. 이번엔 반대로 활력이 없는 청년들을 찾았다. 전보다 훨씬 모집하기 어려웠다. 청년들이 은둔하면서 인터넷을 가장 많이 한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렇게 소규모 채팅방에서 모이다가, 수월한 관리를 위해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을 만들었다. 회원 수가 1000명을 넘었다. 

2층에 있는 두 방은 동아리나 프로그램 활동으로 활용한다.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오프라인 공간, 두더집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이 이뤄진다. 또 가족 상담과 전문 서비스, 일경험 등도 제공하고 있다. 좀 더 깊이 은둔하는 청년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칫 그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조심스러웠다. 인근 편의점이나 고시원 총무들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지원하기도 했다. 

이은애 이사장과 인터뷰 중 온라인 상담 요청이 왔다.

“전 통합센터가 운영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모든 문제가 중첩될 수 있거든요. 고립, 은둔, 자립준비청년 등을 구분하곤 있지만, 부모나 형제를 돌보면서 사회와 고립되기도 하고 우울해질 수 있잖아요.” 이은애 이사장이 말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정부가 발표한 센터에 관심이 높다고 했다. 또 학교 밖 청소년 상황을 조기 파악하는 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기에 개입할수록 해결도 빠르니까. 그는 만성화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생각이다.  

피아노를 쳐도 책을 봐도 좋다. 굳이 어울리지 않아도.

“해외에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고립·은둔 청년 양상이 좀 다르다고 해요.” 

한국은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예로 일본에선 부모님과 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혼자 살며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 물론 개개인마다 양상은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이 공간에 오는 청년들은 꽤 전진한 셈이다.   

대화를 나누고 함께 먹기도 하는 식탁.

“처음에는 말도 못 하고 눈도 못 마주친 친구가 있었어요. 사연이 많더라고요. 지내다 보니 다방면으로 그가 가진 재능이 나타났어요.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렇게 자존감을 회복해 요즘은 리더를 맡으며 아주 적극적으로 됐어요.” 그는 많은 청년 중에 기억나는 일을 이야기했다. 

이곳 프로그램 중에는 대화 모임이 있다. 이 이사장은 한번 와보면 무척 놀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곳에서는 평생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을 꽤 본다고. 어디서도 말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터놓고 보니 비슷한 사람도 있고, 또 생각보다 불행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단다. 그 점을 체득한 청년들은 서로의 공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관계망이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 그런 관계를 어디서 찾기 어려우니까 이런 공간을 통해 만든 거예요.”   

고립·은둔 청년들 이야기   

이야기를 함께 나눈 세 청년들.

이날 이곳에 모인 청년 몇몇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김지연(32), 주나(닉네임, 25), 블라(닉네임, 23). 모두 이곳에 온 계기와 날짜는 다르다. 같은 건 이곳에 자주 와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김지연(이하 김) : 전 학생 때 심한 왕따를 당했어요. 집에선 게임만 하고 학교에선 그냥 무기력하게 잠만 잤죠. 이 트라우마가 군대와 취업까지 이어졌어요. 이곳이요? 취업 준비를 하며 일경험 프로그램을 검색하다 찾게 됐어요. 

주나(이하 주) : 저는 친구들과 교류가 어려웠어요. 대안학교에서 연관된 곳을 알게 돼 여기도 오게 됐어요. 

블라(이하 블) : 전 대학을 다니다가 코로나19 이후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어졌어요. 집에서 지내는 도중 이곳을 알게 됐죠.

두더집으로 편하게 한 걸음 내딛으면 좋겠다.

이들의 은둔 기간은 두어 달부터 10년까지 각자 달랐다. 심할 때는 자해나 입원을 했던 청년도 있었다. 은둔 생활은 엇비슷했다. 방안에서 게임, 인터넷에 몰두했다. 생활습관이 무너지고 대화가 멈췄다. 가족들과 사이도 원만하지 않았다. 그나마 온라인에서 게임을 하며 대화를 나눴지만, 곧 한계를 체감했다. 

김 : 실제 이야기할 누군가가 절실했어요. 이곳에 와서 서로 대화하며 자신감이 붙었죠. 여기는 애써 사람들과 섞이지 않아도 되거든요. 편안해서 안정을 찾은 거 같아요. 

주 : 맞아요. 여기선 제 존재가 고스란히 받아들여진다는 게 좋아요. 어디 가면 직업을 꼭 묻잖아요. 저도 할 말 없지만, 상대방도 어색해해요. 여긴 그렇지 않거든요. 

김 : 구체적으로는 생활 속 기술을 배워 좋았어요. 목공 동아리에서 톱질 같은 도구 사용법을 익혀 도마를 만들었어요. 참 텃밭 동아리 활동도 즐거웠어요. 직접 키운 채소로 요리했거든요.   

할머니집, 친구집처럼 정겹다.

주 : 예전과 달라졌어요. 명상하면서 스스로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전 지금 무척 행복하거든요.

김 : 새로운 친구들과 말하기 힘든 고민이나 상처를 같이 나눌 수 있어 좋아요. 심리적 압박을 좀 줄였다고 할까요. 사회에 나가기 전 여러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블 : 편하게 있을 공간이 생겨 좋죠.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요.

무엇이 좋았을까. 그들은 집과 멀어도 매일 오게 된다고 말했다. 활력이 주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까우면 더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덧붙여 또 어떤 바람이 있는지도 물었다.  

김 : 청년주택, 일자리 같은 경제적 지원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또 지방에도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겨 사회로 나가는 발판이 되면 좋겠고요. 

블 : 청소년 때 여길 알게 된다면요? 정말 좋죠. 저도 미리 알았다면 자주 다녔을 거 같거든요. 혼자서 오래 고민하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잖아요.    

비슷한 걱정을 나눌 수 있는 것처럼 편안한 게 있을까. 깊이 공감해주고 믿어주는 만큼 안정이라는 테두리는 활짝 커진다. 

두더집에 관한 안내. 두더지는 땅속에서 생활하지만 가끔 밖으로 나온단다.

고립과 은둔은 결코 게으르거나 정지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표현할 단어가 없을 뿐. 스스로 돌아보면서 더 많이 성장하고 치유할 수 있다. 그렇게 깨달은 이해는 상대를 대할 때도 전달된다. 그래서 이 과정이 참 중요하다. 이 단계를 잘 거치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건강해질 수 있다.

한 청년이 알림판을 보고 있다.

복지부는 고립 청년을 54만 명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다. 청년 수가 감소한 시대, 경제적으로 7조 원의 아까운 인력 낭비기도 하다. 더 멀리 뛰기 위해 웅크렸을 뿐이다. 일어설 수 있도록 따스한 관계들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어디서든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포용하는 만큼 세상은 훨씬 밝아지지 않을까. 

분명 밝은 낮에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어두워져 있었다.

“고등학생인 줄 알았잖아요. 아니, 그렇게 피부 좋은 비결이 뭐죠?”

어두워진 문을 나서며 물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 중 한 친구의 나이를 듣고 적잖이 놀라서다(진짜 동안이었다). 곧 까르르 웃음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은둔해서 그래요!” 

지금 방에서 인터넷만 바라보는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생생한 활력이었다.   

두더지땅굴 : https://dudug.kr/

정책기자단|김윤경otterkim@gmail.com
한 걸음 더 걷고, 두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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