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축구, 이변을 지워버린 이강인의 미친 왼발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4. 1. 1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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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롯한 아시안컵 우승 후보 ‘5룡+1’ 일단 첫 관문은 통과
아시아 축구 격차 좁혀져…밀집수비 깨는 힘은 압도적 개인 능력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아시아 정상으로 향하는 길 위에 이변이라는 단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 시간으로 1월13일 새벽 개막한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은 17일 현재 여섯 개 조가 모두 첫 경기 일정을 마무리했다. 12경기 중 무승부는 2경기뿐이었고 나머지 10경기에서 승패가 갈렸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각 조 포트1 팀들도 나란히 승리를 거뒀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포트1 팀은 보통 포트3 팀과 격돌한다. 전력 차가 분명한 만큼 최종 스코어는 모두 포트1 팀의 승리였다. 하지만 손쉬운 결과를 거둔 팀보다 경기 중후반까지 치열한 전개를 이어간 팀이 더 많았다. 아시아 축구의 전반적인 성장세가 돋보였다. 특히 아시아 내에서도 변방으로 꼽힌 동남아와 인도가 그런 분위기 형성을 주도한 팀들이었다.

1월1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한국과 바레인의 경기에서 대표팀 이강인이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강력한 우승 후보' 한국과 일본, 상대 거센 도전에 고비 맞기도

아시아 축구에는 흔히 '5룡'으로 불리는 전통의 강호가 존재한다. 대한민국과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호주다. 여기에 개최국이자 지난 대회 우승국인 카타르가 홈 어드밴티지를 안고 우승에 도전한다. 이들 6개국은 우승 후보답게 첫 관문을 일단 잘 넘었다.

A조의 카타르, 그리고 C조의 이란은 일찌감치 승기를 잡으며 편한 경기 운영을 했다. 카타르는 8만 관중 앞에서 치른 레바논과의 공식 개막전에서 두 에이스 아크람 아피프와 알모에즈 알리가 각각 2골, 1골을 터트리며 3대0 승리를 거뒀다. 지난 대회에서도 두 선수의 활약을 앞세워 첫 아시안컵 우승에 성공했던 카타르는 깔끔한 승리로 2연속 제패를 향한 신호탄을 쐈다. 팔레스타인을 상대한 이란도 경기 시작 2분 만에 선제골을 터트린 안사리파드를 시작으로 칼리자데흐, 가예디가 전반에 연속 골을 터트렸다. 후반에 간판 공격수 아즈문이 쐐기골을 넣으며 4대1 대승을 거뒀다. 한국·일본 못지않게 유럽파가 많은 이란은 중요한 순간에 주축들이 역할을 했다.

B조의 호주는 포트1 팀 중 유일하게 조 최약체에 해당하는 포트4의 인도를 상대했음에도 어려운 경기를 했다. 전원 수비를 펼치는 인도의 '텐백' 전술을 뚫지 못하던 호주는 후반 5분 잭슨 어바인이 상대 골키퍼의 실수를 틈타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 23분 조단 보스가 추가골을 넣은 호주는 28개 슈팅을 날리고도 2대0 승리에 만족해야 했다. F조의 사우디아라비아는 포트2의 오만을 상대했는데, 자신들 다음으로 강한 팀을 만난 탓인지 진땀승을 거뒀다. 전반 14분 허용한 페널티킥 실점으로 인해 후반 33분까지 끌려가다 가리브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8분이나 주어진 후반 추가시간 중 5분이 훌쩍 지난 시점에 극장골이 터졌다.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수 알부라이히의 헤더가 골망을 가른 것. 3분여의 VAR 판독 끝에 득점으로 인정받으며 2대1 역전승을 거뒀지만 사우디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5룡+1(카타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한국과 일본도 상대의 거센 도전으로 고비를 맞았다가 2골 차 승리로 출발했다. E조의 한국은 바레인과의 첫 경기에서 3대1 승리를 거뒀다. 2015년과 2019년 대회 모두 첫 경기에서 답답한 흐름 속에 1대0 신승을 거두며 대회 전체 흐름을 어렵게 풀어간 것에 비하면 그나마 만족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내용은 스코어보다 훨씬 치열한 승부였다. 경기 초반 상대 밀집수비에 막혀 고전하던 한국은 오히려 세트피스에서 위기를 맞았다. 흐름을 바꾼 것은 황인범이었다. 경기 시작 때보다 전진된 위치로 가서 공격에 가담했고 전반 38분 이재성의 크로스를 손흥민이 흘려주자 침착한 마무리로 선제골을 만들었다. 

전반을 1대0으로 마쳤지만 후반 6분 만에 위기가 발생했다. 전반과 달리 적극적으로 밀고 올라오는 바레인이 문전 혼전 상황에서 알하샤시의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든 것. 하지만 동점골을 허용한 지 5분 만에 이강인이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만들었고, 후반 23분에는 황인범의 패스를 받아 페인팅으로 수비를 따돌린 후 왼발 슈팅으로 쐐기골을 넣었다. 전반의 답답한 흐름과 후반 초반의 위기를 벤치의 과감한 교체, 그리고 이강인의 개인 전술로 극복한 승리였다. 

D조의 일본도 베트남을 상대로 비슷한 패턴의 승리를 가져갔다. 전반 11분 미나미노 다쿠미의 선제골로 손쉬운 승리를 만드는가 싶었지만 베트남의 기세는 무서웠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직선적이고 집중력 높은 세트피스 공격으로 잇달아 일본 골문을 흔들었다. 전반 16분 응우옌딘박, 33분 팜뚜언하이가 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일본은 잠시 당황했지만 특유의 세밀한 플레이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미나미노가 전반 45분 동점골을, 나카무라 게이토가 전반 추가시간 재역전골을 터트렸다. 교체 투입된 최전방 공격수 우에다 아야세가 후반 40분 쐐기골을 넣으며 일본은 4대2로 승리했다. 

이강인·미나미노 등의 뛰어난 기량, 해결사 역할

한국·일본·호주 등이 FIFA랭킹에서 60~ 80계단 이상 차이 나는 팀들을 상대로 어려운 승부를 했다는 것은 확실한 시사점이 있다. 아시아 축구가 전술로 랭킹의 차이를 좁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스포츠 과학의 발달로 선수들의 체력 증진을 통해 피지컬 격차까지 극복하기 시작하며 과거와 같은 대승, 낙승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부분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선수 개인의 역량이다. 상대 수비가 진을 치고 있는 위치까지 무난하게 전진하지만, 페널티박스 부근의 마지막 20m 공간에서 골이라는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 전술의 퀄리티로 결정된다. 이강인이 자신의 아시안컵 데뷔전에서 가장 잘 보여줬다. 바레인전 결승골은 마치 야구의 변화구를 연상시키는 궤적으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팅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정확한 볼 터치와 드리블 방향 선택에서 월드 클래스를 보여줬다. 파리 생제르맹 입단 후 한층 자신감이 붙은 이강인은 최근 A매치 6경기에서 6골 3도움을 기록 중이다. 

일본도 베트남전 위기 상황에서 미나미노가 멀티골로 개인의 역량 차를 증명했다. 특히 페널티박스 안의 좁은 지역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고 힘들이지 않은 슈팅으로 선제골과 동점골을 만들었다. 일본의 결승골이 된 나카무라의 전반 추가시간 득점은 이강인의 바레인전 결승골 못지않은 작품이었다. 베트남 수비수 3명에게 둘러싸였지만 방향 전환 후 오른발 감아차기로 골대 상단 구석을 갈랐다.

개막전에서 낙승을 거둔 카타르는 돌격대장인 아피프의 활약으로 이번에도 포문을 열었다. 카타르가 집중 투자한 유망주 출신으로 과거 스페인의 비야레알, 스포르팅 히혼 등에서 뛰며 유럽파로도 활동했던 아피프는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를 연상시키는 돌파와 결정력으로 레바논 수비를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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