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20만곳 늘 때 흡연시설 103곳뿐… 모두가 “괴로워”

전수한 기자 2024. 1. 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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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L빌딩의 입구는 금연구역이면서 동시에 흡연구역이다.

서초구보건소가 이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지만, 흡연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빌딩 측이 나서서 재떨이를 설치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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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자 300만 비해 턱없이 부족
서울 금연구역은 30만 곳 육박
금연장소 지정만 하고 관리 안 해
꽁초 줍기 지친 상인 재떨이 설치
담배 판매 세금 10조원 쌓였지만
흡연부스 설치예산 사실상 ‘0원’
무늬만 금연구역… 19일 서울 도심 금연구역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주변에 가까운 흡연구역이 없어 이 일대 흡연자들이 몰리면서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윤성호 기자

서울 서초구 L빌딩의 입구는 금연구역이면서 동시에 흡연구역이다. 서초구보건소가 이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지만, 흡연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빌딩 측이 나서서 재떨이를 설치하면서다. 한 상인은 “구청에선 단속도 나오지 않고, 꽁초 줍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이게 낫다”고 말했다. 흡연자 김모(32) 씨는 “눈치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울 장소를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며 “나라에서 자전거는 팔면서 자전거도로는 없애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흡연 인구가 100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흡연장소 부족으로 금연구역이 사실상 흡연구역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서초구의 한 금연구역에 설치된 재떨이.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금연 환경 조성 정책 확대로 서울 지역 금연구역은 올해 1월 기준 총 29만9780곳에 달한다. 지난 2012년 약 7만9000곳이었던 금연구역은 ‘금연 환경 조성 및 지원’ 조례가 생기고 자치구가 경쟁적으로 금연구역을 도입하면서 12년 사이 20여만 곳 늘었다. 반면 공공장소 간접흡연 방지를 위해 설치한 흡연시설은 103곳에 불과하다. 서울 흡연인구 추정치가 300만 명이란 걸 고려하면, 흡연시설 1곳당 3만 명이 들어차는 셈이다.

흡연할 곳이 없어지면서 흡연자들은 금연구역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들은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며 흡연자들을 천덕꾸러기 취급한다. 양쪽 모두가 불행한 ‘금연구역 공화국’이 돼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흡연자들은 ‘철새’ 신세다. 골목길, 쓰레기분리장 등에서 깡통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 흡연하다가, 비흡연자들의 항의로 그곳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 다른 ‘비공식 흡연 스폿’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런 현실과 달리 흡연구역 확대를 위한 예산은 ‘제로’에 가깝다. 흡연율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흡연시설을 관리하다 보니 관계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지방자치단체도 관심이 없는 탓이다. 담배 세수가 10조 원을 넘어서지만 정작 담배세를 낸 흡연자들은 최소한의 흡연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담배 판매 수익으로 조성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2022년 국민건강생활실천 부문 지출(3700억 원) 중 흡연구역 확대를 위해 쓰인 예산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이례적으로 서울시가 흡연시설 설치 사업에 1억 원을 편성했지만, 설치에만 수백만 원이 드는 흡연 부스를 정기적으로 관리할 만한 재원은 못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담배세를 활용해 흡연구역의 기준을 마련하고 최소한의 흡연구역을 제공해 사회갈등을 줄여가겠다”고 공약한 바 있지만, 후속 조치는 없는 상황이다.

금연구역 확대 일변도 정책에도 흡연율 감소는 지지부진하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국 흡연율은 19.3%로, 전년에 비해 0.2%포인트 증가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센터 센터장은 “지자체가 정책적 효과에 대한 고심 없이 금연구역만 늘려놓은 결과, 비흡연자도 흡연자도 모두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흡연자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흡연구역을 조성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흡연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수한·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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