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소련은 왜, 민간인 109명 탑승한 KAL902편을 격추했나…생존자들의 기억

강선애 2024. 1. 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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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8일 방송된 '격추의 시대-1978 어느 생존자의 기억'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프로야구 LG트윈스의 주장 오지환, 배우 곽시양, 모델 송해나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라진 비행기

오늘 '꼬꼬무'의 이야기는, 제보를 해온 사람이 있어. 그 분은 2살 무렵에 이 사건으로 신문에 났대. 먼저 제보자의 말을 들어볼게.

"어렸을 때 신문 스크랩을 쭉 해놓았던 게 있어요. 초등학교 됐을 때는 그걸 들춰봤죠 많이. 내 얼굴이 여기 있는 게 신기했고, 근데 내가 이걸 겪었다… 그때 초등학교 때는 신기하기만 했고, 그 이후로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이게 자랑거리가 되고,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이런 거."

-박동욱, 제보자

그 어릴 때 무슨 일을 겪었길래, 동욱 씨가 신문에 났던 걸까? 이게 그때 당시 신문에 난 사진이야.

여기 한복을 입은 아기가 바로 두 살 때 동욱 씨야. 동욱 씨 인생을 늘 따라다닌 그 사건, 과연 뭘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때는 1978년 4월 20일 목요일, 서울이야. 27세의 박희택 씨는 3일 후에 결혼식을 올려. 벌써부터 심장이 떨려와. 그때, 희택 씨의 형한테 반가운 전화가 왔어. 결혼식 하루 전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전화야. 희택 씨 형은 프랑스 파리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어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 그런데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오겠다는 거야. 조카들의 이름은 두 살 동욱이와 네 살 상욱이. 희택 씨는 앞서 우리가 만난 동욱 씨의 삼촌이야.

다음날, TV를 켠 희택 씨는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어. 뉴스에 '파리발 KAL기 902편 행방불명'이라는 보도가 나왔거든. 이 비행기는, 형의 가족이 탄 비행기야.

"놀란 정도가 아니고 초상집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분위기 자체가 그래 될 수 밖에 없는 거죠. 항공기 사고에서 행방불명은 십중팔구는 전부 다 완전히 추락이고 생존자가 없는 그냥 뭐 그런 걸 생각하니까. 난감하기 짝이 없는 거지."

-박희택, KAL 902편 탑승자 가족

사고도 보통 사고가 아닌 비행기 사고야. 비행기 사고 하면, '추락', '테러' 그런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그려지잖아. 그 시각, 서울 합정동. 미선이네 집에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어. TV를 켜자 이런 뉴스가 나와.

"프랑스 파리를 출발한 대한항공 902편이 행방불명입니다. 기장의 이름은 김창규, 그 여객기에는 승객 109명이 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AL기의 조종간을 잡은 김창규 기장. 바로 미선이네 아빠였어. 미선이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 기자들이 미선이네 집으로 몰려왔어. 평온했던 미선이네는 순식간에 뉴스에 나오는 집이 됐어.

"실종이라는 뜻이 죽음하고 곧바로 연결됐었어요. 실종, 돌아가셨구나. 막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그 당시에."

-김미선, 김창규 기장 첫째 딸

그럼, 비행기는 언제 어디서 사라진 걸까?

파리에서 우리나라까지, 현재는 직항 노선이지. 근데 1978년엔 항로가 좀 달랐어. 왜냐하면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 때문에. 공산 국가인 소련의 하늘은 지날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파리를 출발한 비행기는 먼저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으로 가. 여기서 연료도 채우고 두어 시간 쉰 다음에 다시 9시간을 날아 김포공항으로 가는 거야.

그런데, 앵커리지에 도착해야 할 비행기가 오지 않았어. 도착 시각이 30분이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야. 교신 기록을 확인해 보니, 그린란드 상공이 마지막이야. 그 후로는 흔적이 없어. 109명이 탄 비행기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결국, 공식적인 '실종'으로 발표됐고, 이 소식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어. 실종된 902편은 어떻게 된 걸까? 시간을 앞으로 조금 돌려볼게.

▲ 902편의 그날

4월 20일, 파일 오를리 공항. 아침부터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어. 한국으로 가는 902편 출발 시간은 낮 12시야. 이륙 30분 전에 승무원들은 비행 준비로 분주해. 오늘의 비행을 책임지는 건 바로 이 두 분이야.

왼쪽은 기내 서비스를 총괄하는 주명룡 사무장, 오른쪽은 미선이 아빠 김창규 기장이야. 장거리 노선이니까 경력이 아주 빵빵한 베테랑 승무원들로 채웠어.

특히 김창규 기장은 이력이 어마어마해. '육군 항공대 출신 예비역 소령', '53년 입대, 육군 항공대에서 67년 제대할 때까지 비행', '예편 2년간 네덜란드 항공학 공부', '69년 KAL 입사, 이후 비행시간 1만 3천 시간' 등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기장이야.

"저희 비행기는 이제 곧 프랑스 파리를 출발합니다. 탑승 인원은 109명, 특히 해외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근로자분들이 많습니다. 안전하게 귀국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내에 울려 퍼진 김창규 기장의 인사말과 함께, 902편은 힘차게 날아 올랐어. 이륙 직후 주명룡 사무장과 승무원들은 기내식을 준비하고, 나눠주고, 간식까지 쫙 돌리느라 바쁘게 움직였어. 얼마 후, 식사를 마친 승객들이 하나 둘 잠들어. 이때부터가 승무원들의 쉬는 시간이야. 주 사무장도 앞쪽 자리에 앉아 잠시 쉬었어.

그때 잠든 사람이 많아 조용한 기내에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어. 맞아. 희택 씨의 조카 상욱이와 동욱이야. 엄마가 아무리 조용히 시키려고 해도 말을 안 들어. 어떻게 해야 하나 난처한 그때, 엄마의 눈에 탁 들어온 게 있었어. 마침 이코노미석 맨 앞자리라 창문이 커서 밖에 엄청 잘 보였어. 하늘에서 바라보는 구름이 그야말로 장관이야. 엄마는 아이들에게 바깥 구름을 보라면서 시선을 돌렸어. 그런데 그때, 창문 너머 아주 희한한 광경이 포착돼.

"보이다가 없어졌다가 여러 번 그랬어요. 내가 동욱이를 안고 있었는데 칭얼칭얼 거리더라고요. 그랬는데 바깥에 비행기가 보여. 앞이 뾰족한 비행기가. '동욱아 저기 바깥에 콩코드 비행기야'"

-허은옥, 동욱 씨 어머니, 902편 탑승객

'콩코드 비행기'는, 지금은 없어졌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르기로 유명했던 여객기야. 바로 이 비행기야.

콩코드는 앞코가 새 부리처럼 뾰족한 게 특징이야. 다른 승객 몇몇도 그 비행기를 목격했고, 급히 카메라를 꺼내 찍은 승객도 있었어. 그때 찍힌 사진을 보여줄게.

그런데 이렇게 비행기 안에서 다른 비행기를 목격하는 건, 굉장히 희박한 확률이래. 하늘에도 길이 있어서, 비행기 간격과 고도 설정을 다르게 해서 하늘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사전에 항로를 정한대. 그런데 밖에 비행기가 보인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 902편 조종실 분위기가 심각해졌어.

김창규 기장은 부기장에게 비행기를 확인하라 하고, 곧장 비상 주파수로 교신을 시도했어.

"This is Korean Airlines 902 Alien aircraft, this is Korean Airlines 902, over."

근데 호출에 아무런 응답이 없어. 김 기장은 조종간에 손을 뻗었고 혹시 충돌할까 싶어 비행기 고도를 낮추려 했어. 근데 1, 2분 정도 나란히 날던 비행기가 금세 사라졌어. 그리고 그 순간, 김 기장은 봤어. 비행기 꼬리에 있던 '붉은 별' 마크를. 이 비행기, 뭐였을까?

바로 그 때, "쾅!" 기내에 엄청난 굉음이 들렸어.

"얼마 지나서 번쩍하더니 쾅 하더니 귀가 터져나가는 것 같아요. 얼른 아이 귀를 막았죠."

-허은옥,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어머니

"천둥 번개 치는 것 같더라고요. 북극에도 천둥 번개가 치나? 그렇게 한 거예요. 콰당~ 뭐 그냥 소리가 말할 수 없이 왼쪽에서 그냥 번쩍하면서."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기체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우뚱, 앞으로 훅, 쏠렸어. 물건들은 여기저기 쏟아져 내리고, 통로에 서 있던 승객들은 그대로 넘어졌어. 지금 비행기가 고꾸라지듯이 곤두박질 치고 있어.

"그냥 떨어진 거죠. 순식간에 벌어진 거예요 순식간에."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

"안내 방송할 겨를도 없어."

-박춘길,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아버지

"막 내려가길래 '어머 이렇게 죽나, 이렇게 죽는 구나' 했죠."

-허은옥,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어머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기체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난기류를 만난 걸 수도 있어. 아직은 상황파악이 안돼. 여기저기선 비명과 울음이 쏟아져 나와. 기내가 완전 아수라장이야.

▲ 목숨을 건 비상착륙

조종실 상황도 난리야.

"기장님! 저기 날개! 날개에!"

김 기장은 두 눈을 의심했어. 왼쪽 날개에 불꽃이 튀고 있었던 거야. 한쪽 날개에 이상이 생기니까 수평을 잡기가 너무 힘들어. 간신히 조종간을 붙잡고 있는데, 계기판을 보니 기내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기체 안에 산소가 줄어들고 있단 거야. 이럴 땐 빨리 고도를 낮춰야 해. 김 기장은 필사적으로 비행기를 하강시켰어.

35,000피트 상공에서 7,000피트까지, 단 3분 만에 내려왔어. 비행기는 고꾸라지듯 내려가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어. 김 기장이 비행기 상태를 살펴보는데 상태가 아주 심각해. 왼쪽 날개가 2미터 정도 잘려 나갔어. 그리고 엔진도 하나 꺼졌어.

가장 심각한 건, 항로를 완전 잃었단 거야.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어. 이제 답은 하나, '비상착륙' 뿐이야. 김 기장은 곧장 주 사무장에게 비상착륙을 준비해달라 상황을 알렸어. 주 사무장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차분하게 기내 안내방송을 했어.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비상착륙 체제에 돌입합니다. 넥타이를 풀고 만년필 같은 뾰족한 물건은 모두 꺼내세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감싸십시오."

주 사무장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만 해봤지, 비상안내를 자신이 실제로 할지 상상도 못했어. 지금 이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무려 109명이야. 이들의 생사가 한 사람 손에 달려있어. 바로 김창규 기장. 어둑한 창 밖을 바라보는 김 기장의 커다란 안경 틈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머릿속엔 '살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야.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그냥, 우선 승객들을 안전하게 모셔야 된다는 생각에 목이 탁 말라서 숨을 못 쉬겠더래요."

-이정순, 김창규 기장 아내

캄캄한 하늘을 헤치고 착륙할 곳을 계속 살피는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아. 게다가 지금 고도는 7,000피트로, 한라산 정도의 높이야. 갑자기 산이 나타나기도 하고, 고압선을 지나기도 해서 비행이 굉장히 까다로워. 그렇게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비행을 하며 30분이 흘렀어. 다행히 저 멀리 기다란 도로가 보였고, 곧장 착륙을 시도해. 1,000피트, 500피트, 300피트 조금씩 비행기를 하강시켰어. 바로 그때!

"기장님! 도로가 아니에요! 철로입니다!"

김창규 기장은 온 힘을 다해 조종간을 당겼어. 기체가 육지와 닿기 불과 몇 십 미터 전이었어. 902편은 다행히 다시 날아 올랐어. 이후에도 착륙 시도는 몇 번이고 계속돼. 내려갔다, 올라갔다, 곡예에 가까운 비행이야. 이 모든 걸 같이 경험하고 있는 승객들은 죽을 맛이야. 죽음의 공포는 점점 더 가까워져.

"죽는 걸로 알았죠. 죽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이미 나는 죽는 걸로 확신을 했죠. 그래서 메모를 남겼다니까요. 나중에 수색대가 왔을 때 이 메모를 찾으면 내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됐구나는 걸…"

-김우황, 당시 탑902편 탑승객

착륙 시도는 1시간 넘도록 계속 됐어. 이제 연료가 거의 바닥 났어. 곧 비행기는 추락할 거야. 바로 그 때, 저 멀리 거대하게 펼쳐진 호수가 보여. 자세히 보니 표면이 얼어있는 것 같아. 호수가 얼마나 얼었는지,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가 없어. 902편 비행기의 무게는, 기체 무게와 탑승객, 화물, 연료 등 대략 110톤 정도 돼. 게다가 기체가 땅에 닿을 때 가해지는 힘도 있어. 아무리 호수가 꽁꽁 얼었다고 해도, 이 모든 걸 버틸 수 있을까? 만약 얼음이 깨져버리면?

마지막 기회니까, 김창규 기장은 그 곳에라도 착륙하기로 결심했어. 육중한 기체가 서서히 고도를 낮춰. 10미터, 5미터, 1미터… 과연, 호수가 비행기를 버텨줄까?

호수에 바퀴가 닿는데, 단단한 표면이 느껴져. 그 순간, 시야가 뿌옇게 뒤덮여. 바퀴에 긁힌 얼음이 튀어 올라 유리를 덮은 거야. 옆창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휙휙 스쳐 지나가. 바퀴는 끝을 모르고 쭉 미끄러져 나갔고, 김 기장은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당겼어. 간절한 바람과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서.

"기장님! 성공입니다! 무사히 착륙했어요!"

조종실에서는 서로를 얼싸안았어. 김 기장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어. 기내엔 환호와 울음소리가 가득해.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거니까.

"'아유 이제 살았다' 하고 박수 치고 막 그랬죠. 기장님이 정말 우릴 다 살렸죠. 그 기장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을까. 그 얼어붙은 호수를 찾아서 그렇게 잘 내려주신 게 우리를 살린 거죠."

-허은옥,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어머니

김 기장이 상황을 살피러 조종실에서 나오자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박수치고 엄지를 치켜세워. 승객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 된 거야. 기적을 경험한 승객들은 '남은 생을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대.

그럼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일까? 아니. 오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야.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거든.

▲ 희망은 절망으로

주 사무장은 곧장 비행기 안을 둘러봤어. 1열부터 한 줄 한 줄, 승객들을 살피는데, 20열에 접어드는 순간, 발걸음이 멈춰. 사람들이 이리저리 엉겨 있는데, 아래로 피가 흥건해. 그 수가 열 명은 넘어. 한 일본인 승객은 부상 정도가 심해 보여. 그리고 그 옆으론, 이미 사망한 사람도 있어. 한국인 남성이야. 비행기 파편에 치명상을 입은 것 같아. 왼쪽 날개가 떨어진 부근, 22열에서 26열 사이에 부상자가 집중됐어.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자가 더 늘 수도 있어. 한시가 급해.

일단 지금 상황은, 비행기가 어딘지 모를 호수 위에 불시착했어. 연료도 바닥나고 엔진도 모두 꺼진 상태야. 게다가 비행기 안은 엄청 추워. 날개가 부서질 때, 기체에 구멍이 뚫렸거든. 나가서 도움을 청해야 해. 수동으로 문을 여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순간 눈이 엄청 부셔. 호수 전체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거든. 어찌나 넓은지 끝이 안 보여. 비행기가 실제 착륙한 곳을 보여줄게.

4월에 얼음과 눈이 쌓인 곳. 여긴 어디일까? 중간 경유지인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 근처의 호수인 걸까?

"알래스카 어디구나. 우리는 지금 미국 영토에 들어와 있다. 알래스카니까 곧 구조가 될 거다 생각했죠."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어딘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 여기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사람들은 담요랑 옷가지로 몸을 돌돌 말고 기내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어.

"비행기에 무슨 이상이 생겨서 앵커리지 어디에 불시착한 거야 우리는. 그렇지만 기다리면 구조대들이 와서 구해간다. 그런 기대감을 갖고 우리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거지."

-박춘길,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아버지

사람들은 그렇게 얼음이 꽁꽁 언 호수에서 구조를 기다렸어.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

드디어 저 멀리, 비행기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발견했어. 그걸 본 승객들은 '이제 살았다'라고 생각하며 막 환호를 질렀어. 근데 유심히 밖을 바라보던 주 사무장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어.

"갑자기 '사무장님 사람이 와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툭 쳐다보니까 뭐가 시커멓게 오더라고. 앞으로 달려 나가서 앞문 탁 열었더니, 소련 군인들이. 그때 여기가 소련이라는 걸 알았어요. 군인들이 이런 모자에다가 빨건 거 막 달고 낫과 망치, 전부 이러고 있는 거야. 그때 딱 정말 혼이 나간다는 식으로. 비행기 떨어질 때보다 더 '인생 끝났구나' 이런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비행기에 다가온 사람들은 애타게 기다린 구조대가 아닌, 무장한 군인이었어. 그것도 소련군. 비행기가 불시착한 이곳, 소련이었어.

"아유 소련, 무섭죠. 끝난 거예요 이제. 끝난 거예요. 고국으로 온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거죠."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1978년의 소련. 당시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총성 없는 전쟁, '냉전'이 한창이었어. 우리에게 당시의 소련은, 북한과 함께 적성국으로 분류된 금기의 땅이야. 무장한 소련군이 총을 겨눈 자세로 비행기를 포위했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공포가 밀려와.

거침없이 기내로 진입한 소련군은 총구를 겨누며 기장을 찾았어. 기내 안은 바짝 얼어붙었어. 주 사무장이 가장 먼저 나가서 두 손을 번쩍 들며 총을 쏘지 말라고, 이 비행기는 민항기라고 외치며 부상자가 있다고 알렸어. 군인들은 매서운 눈으로 기내를 훑어봐. 기내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당연히 없어. 소련군은 부상자 상태를 확인하더니, 헬기를 부르겠다고 했어.

얼마 뒤, 소련군 헬기가 도착하고 부상자와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부터 태웠어. 동욱이네 가족도 첫 번째 헬기에 올랐어.

"다친 사람부터 나가고 그 다음에 우리가 앞에 있으니까, 애들 있는 가족부터 내리더라고요. 그냥 하얀 눈이에요 전체가 다. 저기 헬리콥터 틀어놓고. 그래서 쭉 걸어 다닌 발자국이 있어서, 그걸 따라가서 헬기에 탄 기억 밖에 없어요."

-허은옥,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어머니

당시 실제 모습이야.

남은 승객들도 소련군 안내에 따라 기체 밖으로 나왔어. 승무원들은 맨 마지막에 내려. 주 사무장은 그제야 불시착한 기체를 봤어. 아직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대.

왼쪽 날개는 뜯기듯이 잘렸어. 더 놀라운 건, 바로 기체에 난 구멍이야. 구멍의 수가 200개도 넘어. 대부분 골프공만 한 구멍인데, 어떤 건 팔뚝이 들어갈 만큼 크기도 해. 어쩌다 비행기가 이 지경이 된 걸까?

"기체가 완전히 뚫린 거예요. 파편에 의해서. '단지 기체에 어떤 결함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지 저는 이게 상상도 못했어요. 미사일을 쏜 거예요."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바로 미사일 공격. 기체결함이나 기상악화가 원인이 아니었어. KAL 902편은 소련 전투기에 격추당한 거야.

아까 창 너머로 보였던 그 비행기 기억나지? 콩코드 여객기가 아니라 소련군 요격기였어. KAL 902편이 불시착한 곳은, 소련 영토인 코르피야르비 호수였어. 우리는 소련에 허락 없이 들어온 침입자였던 거야. 비행기가 무슨 이유에선지, 예정된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으로 넘어왔어. 당시는 냉전시대. 그러다보니 안보에 극도로 예민했고, 자신들 영공에 들어온 낯선 비행기를 보고 '미군 정찰기가 침입했다'고 여긴 거야.

근데 이상하지 않아? KAL 902편은 민항기야. 비행기 외부에 태극마크도 달고 있어. 근데 민항기라는 걸 몰랐을까? 아니면 설마, 알고도 쏜 걸까? 정확한 건 몰라.

▲ KAL 902편 격추사건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소련 헬기들이 쉼 없이 날아와 승객들을 데려갔어. 이제 승객들의 운명은 소련군 손에 달렸어.

소식은 한국으로도 전해졌어. 살아있다는 말에 안도했지만, 하필 소련이라니. 만감이 교차해. 당시 소련은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기 전이라, 협상은커녕 연락하기도 힘들어. 어쩌다 비행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간 건지, 승객들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건지, 추측성 기사가 무수히 쏟아졌어. 맨 처음 보여준 동욱 씨의 어릴 때 사진도, 이때 실린 거야.

승객들을 태운 헬리콥터는 1시간쯤 날아가 한 마을에 도착했어. '켐'이라는 곳이야.

소련군은 승객들의 여권과 카메라를 압수했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거야. 그러더니 어떤 건물로 안내해. 안에는 간이침대들이 쭉 놓여있어. 군인들은 침대마다 사람들을 배정해. 그리고 식당으로 불러서 간단한 요기 거리를 나눠줬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음식이 도저히 넘어가질 않더래.

"그 당시에는 미소 냉전에다가 남북한 극한 대치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북한의 영향에 의해서 북한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그런 불안감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거야. 순간순간이 불안한 거야."

-박춘길,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아버지

"일본 사람한테 너희 가면 '우리 여기 잘 있다'라고 이야기해달라고 그랬죠. 혹시나 일본 사람만 보내주고 우리는 안 보내줄까봐."

-허은옥,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어머니

당시 북한을 '북괴'라고 부르던 시절이야. 북한 괴뢰 집단이라고. 근데 소련은 공산진영의 선봉에 선 나라야. 사람들 사이에선 공포스러운 이야기만 돌고 있어. 내일이면 동생 결혼식인데, 이런 외딴 곳에 갇힌 신세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밤이 되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잠들기 시작하고, 소련군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주 사무장도 겨우 막 잠이 들었는데, 눈감은 얼굴 위로 스윽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누군가 어깨를 턱! 치며 일어나라고 해. 군인들이었어. 너무 놀라서 비명도 안 나왔어.

"깨우더라고. 밖으로 가서 다른 건물로 가는데, 그 건물로 들어섰는데 한 10m쯤 되는 빨간 그 소련기가 바닥까지 내려져 있는데. 그게 얼마나 압도를 하는지 아… 그냥 정말 그것도 혼이 나가더라고. 그걸 딱 보는데 아… 첫번째 질문이 뭐냐하면, '네가 왜 여기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묻더라고."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방 안엔 소련군과 통역관, 그리고 주 사무장 뿐이야. 커다란 소련기 아래, 심문이 시작됐어. 왜 소련에 왔는지, 일부러 항로를 이쪽으로 돌린 게 아닌지 물어. 주 사무장은 아니라고, 몰랐다고 답했어. 방 안은 공포 그 자체야. 지금 소련군은, 우리 비행기가 미군 정찰기가 아닌지 확인하고 있어. 실제로 정찰기가 민항기로 위장한 사례들이 꽤 있었거든.

KAL 902편이 민항기로 위장한 정찰기라니. 민간인 승객이 100명 넘게 타고 있었어. 그 사람들 목숨을 담보로, 국경을 넘을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주 사무장은 차분하게 설명했어. 우리는 민간인이고, 미국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소련군은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았어.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두명의 스파이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거야. 특히 소련군의 의심을 받는 사람이 있었어. 바로 김창규 기장.

소련군은 김 기장의 이력을 문제 삼았어. 육군 항공대 출신이라는 것. 베트남전에 참전한 거 아니냐, 미군과 연관이 있지 않냐, 온갖 가능성을 들이대는 거야.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의심이지. 민항기 조종사 대부분이 군에서 비행기를 몰던 사람들이야. 조종사를 양성하는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드니까 군인 출신들이 많이 민항기 조종사가 돼. 이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너무 일반적인 일이야.

"저희는 믿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버지가 베트남전을 갔다 이런 말까지 있었는데 아니거든요. 그런 루머는 저희는 귓전에 담지도 않았죠."

-김혜선, 김창규 기장 둘째 딸

근데 아무리 항변해도 심문이 끝이 안 나. 소련군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 바로 KAL 902편의 '항로' 때문에. 애초에 왜, 소련 영공으로 비행기가 넘어왔냐는 거야. 당시 항로를 살펴보면 이상하긴 해.

원래 항로는, 파리에서 앵커리지를 거쳐 김포로 가는 거지. 실제 KAL 902편의 마지막 교신 지점은 그린란드 상공이었어. 그런데 비행기가 불시착한 소련의 호수야. 이 정도면 유턴에 가까울 정도로 비행기를 꺾어야 해. 이건 뭐, 일부러 찾아왔다고 하는게 자연스러울 정도야.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건, 조종석에 있던 사람들 뿐이야.

김창규 기장과 함께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사람이 있어. 바로 '항법사'야. '항법사'는 인간 내비게이터라고 보면 돼. 운전할 때 지금은 내비게이션 보지만, 예전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를 보면서 길을 안내하고 그랬잖아? 하늘길도 똑같았어. 지금은 GPS 신호로 항로를 찾지만, 1978년엔 항법사가 직접 길을 안내했어. 나침반을 기준으로 해와 별의 방향을 보면서 길을 찾는 거야. 사람이 직접 항로 각도를 계산한 거지.

하지만 실제 극지방으로 가면, 나침반 오차가 심하대. 장치가 고장 나거나 오차를 잘 잡아내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게다가 비행기 속도는 시속 900km가 넘어. 항로가 조금만 꺾여도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게 돼.

비행 과정을 돌이켜 보니, 중간에 문제가 있긴 했어. 김 기장 눈에 해가 지는 방향이 평소와 달랐던 거야.

"항법사, 이 경로가 맞나?"

"이 길이 맞습니다. 북극권이라 조금 달라 보일 수도 있어요."

여기서 항법사의 실수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항법장치들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분명한 건, KAL 902편이 고의로 소련 영공에 들어온 건 아니라는 거야. 하지만 소련군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심문은 계속 이어졌어.

▲ 기적의 생환

승객들이 지내고 있는 수용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군인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까지 나섰어. 마을 주민들은 승객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대. 왜냐하면 외부인을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소련은 1917년 혁명 이후 외부와 문을 닫았어. 이 마을에 외국인이 온 건 무려 50년 만이래. 음식도 나눠주고 부상자들을 적극 간호해. 특히 상욱이와 동욱이. 두 아이가 있는 곳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아. 아이들은 켐 마을에 온 최연소 방문객이었어. 말은 안 통해도, 얼마나 귀여웠겠어?

"소련이라고 그래도 정말… '여기 사람들 다 보통 사람들이네' 그런 걸 느꼈고. 무서운 사람들이 전혀 아니더라고요. 사람들 다 좋고."

-허은옥,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어머니

그렇게 이틀째, 갑자기 수용소가 분주해져. 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을 다 불러서 줄을 세워. 공항으로 이동한대. 마침내, 송환이 결정된 거야. 승객들은 이제 곧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려.

"그 기분… 환희라고 합니까? 뭐라고 합니까? 눈물 나더라니까요. 그리고 애들이 그렇게 보고 싶고. 왜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애들이 더 보고 싶어요. 더 보고 싶어요."

-김우황, 당시 KAL 902편 탑승객

하지만 완벽한 송환이 아니었어. 김 기장과 항법사는 뺀 거야. 더 조사할 게 남았다면서. 김 기장은 자신은 괜찮으니 승객들을 잘 부탁한다고, 마지막까지 챙겼어.

소련 무르만스크 공항으로 이송된 승객들은 미리 도착한 여객기로 갈아타고 핀란드 헬싱키로 넘어갔어. 소련에서 핀란드 국경을 넘는 순간,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 사이에서는 환성이 터져 나왔어.

"그때 전부 만세 부르고 '아! 살았구나. 죽었다 살았구나' 전부 다 박수 치고 좋아한 거야."

-박춘길, 당시 탑승객, 동욱 씨 아버지

1978년 4월 24일 월요일 오후 6시 40분. 악몽 같던 시간을 겪어낸 승객들은 무사히 한국 땅을 다시 밟았어.

맨 앞에 아이를 안고 내려온 가족이 희택 씨 형님네 가족이야.

"죽다 살아났으니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마음은 그런데 표현을 잘 못 해서 '형님 오셨냐 고생했습니다' 이 정도지."

-박희택, 당시 902편 탑승객 가족

두 형제는 그렇게 무사히 만났어. 한 승객은 트랩을 내려오자마자 땅바닥에 입을 맞추기도 했어.

돌아온 승객들에겐 그날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있었어. 주머니에 이런 것들이 있었거든.

소련 켐 마을 주민들이 준 선물이야. 사탕, 동전 같은 소소한 것들이지만, 손님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이 느껴져.

이건 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야.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던 거야.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의 정이라는 게 참 신기하지?

109명의 탑승자 중 107명이 생존했어. 사실 이것도 천운이었어. 첫 번째 미사일은 다행히 빗나갔고, 두번째 미사일은 왼쪽 날개 근처에서 폭파됐어. 그런 비상상황 속에서도 KAL 902편은 불시착에 성공한 거야.

하지만 안타까운 희생자도 있었지. 귀국 비행기엔 사망한 승객의 유해도 있었어. 출장 갔다 돌아오던 한국인 남성과, 가족과 함께 타고 있던 일본인 남성.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어.

"당시 사무장으로서 굉장히 미안한 일이죠. 같이 살아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주명룡, 당시 KAL 902편 사무장

사실, 생존한 승객들도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야. 애초에 격추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 아무리 위급해도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놔야 할 행위야. 전세계 언론이 소련을 비난했어.

그럼 아직 억류된 김 기장과 항법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때 승객들이 오셨을 때 아빠는 며칠 후에 올 거다 하는 장담이 없었거든요. 승객들만 보내고 두 분이 억류되어 있었을 때의 기분은 너무 슬펐어요. 감사하지만, 내 아빠가 안 오시니까…"

-김미선, 김창규 기장 첫째 딸

미국이 우릴 대신해 송환을 요청했지만, 대답이 없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했어.

"승객과 승무원을 지체없이 송환한 소련 당국에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사고는 고의가 아닌 만큼 2명의 승무원도 조속히 송환하여 줄 것을 거듭 요망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담화문 中

열흘이 지나서야, 소식이 전해졌어. 그리고 기장과 항법사는 13일 만에 한국 땅을 밟았어. 소련에서 일주일 내내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대.

"아빠가 트랩에서 모습을 보이셨을 때, 감격했죠. 그때 정말 감격하고."

-김미선, 김창규 기장 첫째 딸

"저희 앞에 와주셨을 때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 아버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혜선, 김창규 기장 둘째 딸

"국민의 배려로 인하여 이렇게 조국의 땅을 다시 밟게 된 데 대해 충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창규, KAL 902편 기장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김창규 기장을 치켜세웠어. 하지만 기장님은 고개를 잘 들지 못했대. 기장으로서 희생자를 낸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아버지가 굉장히 마음을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리고 저도 옆에서 보기에 굉장히 안타까웠고요."

-김혜선, 김창규 기장 둘째 딸

그럼 이제 다 끝난 걸까?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다 돌아왔지만, 아직 하나 귀국하지 못 한 게 하나 있어. 바로, 호수에 불시착한 KAL 902편. 우리가 기체 반환을 계속 요구하는데, 소련은 끝끝내 반환을 거부했어.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하니 블랙박스와 음성기록장치라도 돌려달라 했는데, 역시나 안 줬어.

이건 소련이 902편을 분해하는 사진이야. 분해해서 연구용으로 썼다는 말도 있고, 정찰의 흔적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했다는 말도 있어. 결국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소련은 격추에 대해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어. 진실은 그렇게 가려졌어.

▲ 반복된 비극

그거 알아? 진실이 가려지면,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5년 후인 1983년, 뉴욕 JFK공항. 대한항공 007편이 이륙했어. 비행기는 앵커리지 공항에 들러 급유를 마치고 김포로 향해. 그런데 조금씩 항로를 이탈하더니, 또다시 소련 영공에 잘못 들어서게 돼. 902편 사고 이후, 자동항법장치가 설치된 상태였는데 웬일인지 수동모드로 되어 있었대. 소련은 이번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또다시 민항기를 격추시켰어. 이땐, 미사일이 빗맞는 천운은 일어나지 않았어. 비행기에 타고 있던 269명이 전원 사망했어. 지금까지, 한국 국적기가 당한 최악의 사고야. 사망자들의 유해는 단 한 구도 찾지 못했어. 5년 만에 같은 비극이 반복된 거야.

후폭풍은 아주 거셌어. 전국적으로 궐기대회가 일어나고 진상 규명과 소련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어. 유가족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분노하고 절망했어.

소련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어. 902편도, 007편도, 민항기로 위장한 정찰기라고 생각했고 격추는 정당한 행위였대. 심지어 007편을 격추시킨 소련 조종사는 "민항기인 걸 알고도 격추했다"고 인터뷰도 했어. 소련이 1991년 붕괴될 때까지 격추한 민항기가 총 9대, 그 중 2대가 우리나라 비행기였어.

그래도 달라진 건 있어. 1983년 007기 격추 사건 이후로, 영공을 침범하였다 하더라도 민간 항공기를 격추하지 못하도록 법안이 명시됐어. '모든 항공 규정이 피로 쓰였다'는 말을 알아? 정말 많은 시행착오와 수많은 희생을 치른 결과인 거야.

그리고 이때, GPS가 민간에게 모두 공개됐어. GPS는 미 국방부가 개발한 거야. 이전까진 군사 목적으로만 사용했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민간 사용을 허가한 거야. 덕분에 항로 시스템도 점점 더 개선됐어. 다행이긴 하지만, 조금 씁쓸한 얘기지?

1978년에 일어난 사건도, 1983년 사건도, 모두 냉전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미국과 소련이 서로 날을 세우고 있던 시기, 죄 없는 민간인들만 희생된 거지. 그런데 기억나지? 902편 승객들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켐 주민들. 희망은 어쩌면, 그런 평범한 곳에 있는지도 몰라.

오늘의 이야기는 사고의 최연소 생존자인 박동욱 씨의 제보로 시작됐어. 동욱 씨 인생에 아주 큰 사건이었는데, 사람들이 잘 기억을 못하는 것 같더래. 주변에도 78년 사건보다 83년 격추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아. 그런데 이 사건, 애초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두번의 격추 사고가 있었는데, 유독 902편 사고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 희생자가 적다고 잊어버린 걸까? 만약 첫 사고가 있었던 1978년에 명명백백히 문제를 짚어냈다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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