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텔라의 화음과 양보의 힘[살며 생각하며]

2024. 1. 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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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작가
양보 통해 말의 힘 얻을 수 있고
그 말이 씨앗이 되어 세상 바꿔
지역과 진영 갈등으로 시끄러워
도돌이표처럼 날선 소리 안 끝나
포레스텔라의 화음과 조화 필요
우린 운명공동체 잊지 말았으면

도대체 이 화음이라니! 네 명의 가수가 만들어내는 화음이 웅장하면서도 달콤하며 애절하기까지 하다. 한 음씩 짧게 끊어 부르는 스타카토는 물론이고 음을 끊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 부르는 레가토와 숨소리 역시 이들은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서로 화음을 맞추고 한 사람의 소리처럼 강약과 속도를 조절하며 음악의 완성도를 높인다. 얼마나 연습을 해야 이게 가능할까. 도입부에서 절정과 결말로 넘어가기까지 매 마디마디, 한 음표 음표마다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이끌어나가는 그들의 노래는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포레스텔라 이야기다. 포레스텔라는 4명의 남성으로 이루어진 크로스오버 그룹으로,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곡을 소화해내는 실력파이다. 포레스텔라. ‘숲’이라는 포레스트와 ‘별’이라는 스텔라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 ‘포레스텔라’라고 한다.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은 ‘숲별’이라는 우리말 애칭으로도 부르는 모양인데, 그룹에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한 방송사의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중창이라는 미션 과정에서 함께 화음을 맞추면서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포레스텔라의 시작점이었고 탄생의 순간이었다. 묵직하게 파고드는 극저음과 고음, 남성소프라노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네 명의 소리가 어떻게 조화롭게 화합하며 곡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싶은데, 오히려 그 개성이 강한 소리 덕에 화음은 더 절묘하고 웅장하며 울림이 깊다. 저 혼자, 저만의 목소리로 저마다 가진 기량으로 얼마든지 대중을 매료시킬 수 있을텐데도, 그들은 혼자보다 함께함으로써 더 큰 사랑과 지지를 얻었다. 정말, 혼자만으로는 얻지 못할 소리이고 화음이며, 대중의 환호와 지지이다. 함께한 만큼 박수와 환호도 크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그들은 서로의 소리를 밀고 당기고 양보하며 독주를 경계한다. 어느 구간에서는 다른 이에게 양보하거나 주인공으로 치고 들어가고, 또 어느 구간에서는 화음으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해낸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퍼포먼스와 공연은 놀랍기만 하다.

오래 전 팝페라 그룹 ‘일디보’를 좋아했었다. 일디보가 이탈리아어로 하늘이 내린 남자라는 뜻이라던가! 그룹의 이름답게 그들의 하모니는 감탄을 자아냈고, 순식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는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다. 정말 그들이 가진 소리의 힘과 화음과 멋진 외모는 내 마음을 훔쳤고, 나는 한동안 그들의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렇게 나를 달뜨게 만들었던 그 일디보보다도 토종 포레스텔라가 보여주는 화음과 퍼포먼스가 더 웅장하고 애절하다.

옛날, 아주 옛날에 나는 합창단원이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맡은 파트는 소프라노였고, 학교 대표로 크고 작은 대회에도 여러 번 나갔다. 무대에 올랐을 때 온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 설렘과 긴장은 강렬한 자극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 떨림이 좋았다. 한데, 한 대회를 앞두고 연습하던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는데, 우리는 자유곡으로 가곡 ‘보리밭’을 선택했다. ‘옛 생각이 외로워’ 하는 고음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나는 힘껏 목청을 돋웠다. 그건 순전히 돋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합창단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욕심이 큰 만큼 내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선생님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튄다면서 자꾸만 노래를 중단시켰고, 종내는 한 사람, 한 사람씩 그 부분을 불러 보게 했다.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소리를 줄여 불렀다. 그러니 선생님은 튀는 소리를 내는 범인을 잡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러울 일이다. 여러 명이 부르는 합창은 한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소리를 모아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대회에 참가해서도 연습할 때처럼 불렀고 결과는 당연히 등위 밖이었다. 내 지나친 욕심이 불협화음을 만들고 조화를 해친 것이다. 선생님은 그 범인이 나라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하셨다.

포레스텔라가 들려주는 하모니는 합창단원이던 당시 부끄러웠던 나를 환기시켜 준다.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일러준다. 봐라, 노래만이 아니라 삶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자신의 소리를 낮춤으로써 다른 소리를 살리고, 다른 소리에 화음으로 자신의 소리를 더함으로써 조화와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의 소리를 죽인다고 해서 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보와 하모니를 통해 자신의 소리 역시 빛나며 말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말이 씨앗이 되어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사방이 시끄럽다. 지역과 진영, 이념과 세대, 젠더와 종교, 온갖 갈등으로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끝이 없는 도돌이표에 걸린 것처럼 날선 소리들은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타인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들으려 하지 않는데 어찌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까. 말과 생각은 달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목적은 같다는 것을 안다. 마치 ‘보리밭’을 부르던 나처럼 말이다.

포레스텔라의 화음과 조화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것은 힘을 빼야만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지혜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타고 가는 운명 공동체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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