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수집 어르신을 통해 느낀 노인복지의 필요성
이른 아침, 갑작스레 낮아진 기온에 옷을 주섬주섬 껴입은 채 장갑까지 착용하고 집을 나섰다. 며칠 전 폐지수집 노인에 관한 정부의 전수조사 발표 이후 폐지수집을 직접 해보기로 한 날이었다.
보통의 직장인이 출근을 시작할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미 부지런한 분들이 폐지 대부분을 수거해간 후였다. 뒤늦게 천천히 돌아다니며 남은 폐지를 폐유모차에 모으고 계신 한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아침부터 나와 돌아다니고 계시다는 할머니의 뒤를 쫓아 간접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한쪽 구석에 한 무더기의 박스를 가리키자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며 ‘저 박스는 건드리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나름대로의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능숙하게 앞장서 다니며 박스가 있는 곳을 안내했다. 다세대 주택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분들이 주로 수거하고, 할머니처럼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분들은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 뒤늦게 나오는 박스를 수거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폐지를 수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부분 박스 윗부분만 뜯어진 채로 밖에 내놓는데 테이프나 스테이플러 침을 제거하고 박스를 펴는 것에 꽤 많은 힘이 필요했고, 균형있게 쌓아 끌고 다니는 것도 적지 않은 힘이 필요했다. 장갑을 꼈지만, 영하의 날씨에 손이 금세 시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동네를 돌고 업체에 방문해 바닥의 대형 저울에 무게를 측정하고 폐지 값을 정산받았다. 약 3시간 동안 돌았다는 할머니의 손에 쥐어진 돈은 2000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말벗을 해줘서 고맙다며 1000원짜리 한 장을 내미는 할머니의 손을 끝까지 물리치며 돌아섰다.
정부는 지난 2023년 말 ‘2023년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관심도, 별도의 조사도 없었는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두터운 지원을 시행한다는 정부의 노력과 고령화에 따른 노인일자리 정책의 일환으로 조사가 진행된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폐지수집 노인의 평균 연령은 76세로 1주일에 6일, 1일 평균 5.4시간을 근로하며 월 15만9000원을 벌고 있었고, 시간당 수입은 1226원으로 최저임금의 13% 수준(2023년 기준)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미치는 폐지수집 노인의 더 큰 문제는 건강에 있었다.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고 인지하는 비율이 건강하다고 인지하는 비율보다 높은 것은 물론이고, 우울증상 보유 비율은 전체 노인 대비 2.9배 가량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월부터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지역 내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현황 점검을 위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구축된 관리체계를 중심으로 복지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도록 복지 담당자가 직접 관리하고 공공일자리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노인일자리와 보건복지서비스 지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경우 2024년 103만개의 일자리를 확보할 계획인데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폐지수집보다 더 높은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한다. 특히, 근로 능력이 우수하거나 소득 활동에 대한 욕구가 높은 노인은 사회서비스형으로 유도해 월 70만 원 가량의 소득 활동을 지원함과 동시에 보다 안정적인 근로 활동을 위해 산재보험 가입 역시 함께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부터 지자체별로 모집 중인 노인일자리의 경우 1월이 지나면 희망하는 분야가 조기 마감될 수 있어 근로 의지가 있는 노인이라면 지자체 복지 담당자에게 물어봐 관련 기관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인근 지역 노인복지센터에서 일자리 업무를 담당하는 지인은 “상시모집하는 일자리도 있지만 지원 가능한 예산과 인원은 한정적이니 지난 12월부터 올라온 모집공고를 확인하고 이번 달까지 담당자와 상의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전했다. 지인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홍보하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모든 노인에게 손길을 내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이웃에서라도 근로가 가능한 노인분들에게 노인일자리를 추천해 삶의 질 향상을 돕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폐지수집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정부의 발표에 ‘어디 센터에 가서 등록하라는데 서류 준비하고 전화를 받고 좀 복잡하다’라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노인 계층인 만큼 정부의 정책 의지와 함께 노인의 눈높이에서 일자리를 유도하고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맞춤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노인 대상 주택 공급 확대, 노인 부양자 가산점, 기초연금 상향과 노인 돌봄시간 상향 등의 노인복지 정책을 발표한 상황이다. 고령화사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보다 세밀한 정책 설계와 노인 눈높이에 맞는 홍보로 어르신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대우받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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