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터지자 “엄마 말 잘 듣고 있어”…74년 만에 돌아온 경찰관

유새슬 기자 2024. 1. 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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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으로 근무하다 참전해 27세에 산화
“전쟁 발발하자 딸 머리 쓰다듬고 급히 뛰쳐나가”
5살이던 딸은 79세가 돼 아버지 유품 전달받아
고 김명손 경사의 초상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전남 영광군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보성경찰서 소속 순경이었던 김명손 경사(추서 계급)로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전남 영광군 삼학리 인근 야산에 6·25전쟁에서 전사한 경찰관 유해가 매장돼있다는 지역 주민의 제보를 받고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선 결과 2007년 5월 30여 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고인의 딸 김송자 씨가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싶은 마음에 2014년 11월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고 이후 국유단은 고인의 유전자와 정밀 대조 분석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유해가 수습된 지 17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1923년생인 고인은 보성경찰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했다. 김송자 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경찰관 한 명이 집에 찾아와 고인에게 ‘빨리 출동해야 한다’고 했고 고인이 김 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말 잘 듣고 있어라’라고 말한 뒤 급하게 뛰쳐나갔다. 김명손 경사는 당시 27살, 딸 김송자 씨는 5살이었다.

김 경사는 북한군의 호남지역 진출을 막기 위해 국군과 전남경찰국이 전개한 호남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고인이 소속된 경찰 1개 소대는 삼학리 일대를 지키다가 북한군 6사단 1개 대대와 맞서 싸웠고 김 경사는 1950년 7월28일 전사했다.

국유단은 지난 18일 광주시에 거주하는 김송자 씨를 만나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 확인 통지서, 유품 등을 전달했다. 79세가 된 김 씨는 아버지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듣고 꿈만 같아 며칠 동안 울기만 했다고 한다. 김 씨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를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버지가 그리워서 ‘연락선은 떠난다’라는 노래를 늘 불렀는데 이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자주 뵈러 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국유단이 2000년 4월 유해 발굴을 시작한 이래 신원이 확인된 6·25 전사자는 총 226명이고 이 중에서 경찰관은 26명이다.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고 김경손 경사의 유가족 자택을 찾아 고인의 딸 김송자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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