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들겠다고? [김민아의 훅hook]

김민아 기자 2024. 1. 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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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마포을 출마를 선언한 김경률 비대위원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① “제가 국회에서 여러 답변을 할 때 국회 좌석들 보셨습니까. 대부분 비어있었죠. (국회의원은) 250명이면 충분합니다.”

② “(전략공천이) 아닙니다. 우리 공천 시스템은 어제 발표드린 내용입니다. 당내 절차는 당연히 거쳐야 합니다.”

지난 17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하 한동훈)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①부터 본다. 한동훈은 지난 16일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의원 수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국민이 지금 국회가 하는 일에 비해 의원 숫자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다음날 기자들이 의원 정수 감축을 두고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포퓰리즘’ 이란 지적이 나온다며 입장을 물었다. 이런 지적에 반박하려면 여론조사 결과 같은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동훈은 달랐다. ‘내가’ 국회에서 답변할 때 의석이 비어있었다는 걸 근거로 댔다. 나르시시스트인가.

②를 둘러싼 상황은 이렇다. 한동훈은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4월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김경률 비대위원이 (서울 마포을에) 나서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 위원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손을 치켜든 그는 자신이 마포을 도전을 권유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밝히는 이유는 혹시 마음이 변할까 해서”라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행사장에는 마포을 표밭을 갈아온 현직 당협위원장(김성동)도 있었다.

기자들이 물었다. “김 위원을 전략공천한 겁니까.” 한 위원장 답변은 ②였다. 당대표가 특정인의 공천을 기정사실화하고는 뒤늦게 아차 하며 시스템 뒤로 숨은 것이다.

정치는 ‘말’이다. 정치인의 말은 새로운 말을 낳고, 때로는 과거의 말을 배신한다. 새로운 말이든, 배신당한 말이든 세상에 나온 말들은 모두 기록되고 기억된다. 한동훈도 비대위원장 취임 후 20여일 간 많은 말을 했다. 그 말들은 이제 ‘정치인 한동훈’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한동훈이 취임 이후 강조해온 대표상품은 ‘격차 해소’다. 지역 순회 일정의 첫 번째인 대전 방문(2일)에서 운을 뗐다. “당이 100일 남은 총선에서 격차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5일)에선 “격차 해소를 통해 개별 시민의 삶이 개선될 사항이 가장 많은 곳이 경기도”, 부산(10일)에선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지역격차와 문화격차 해소”라고 했다. 14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고 없애는 데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레토릭만 있지 별로 실체가 없지 않느냐”(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는 지적도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2022년 7월 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이 법무부 장관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동훈은 “격차 해소는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정치는 누가 하는가? 국회가 주역이다. 국회는 대의(代議)기관이다. 대표자가 있어야 주권자의 뜻이 대의된다.

의원 1명이 대표하는 주권자 수가 많을수록 주권자의 목소리에 반응하기 어려워져 대표성이 약화된다는 건 초보적 상식이다. 의원 수가 줄어들수록 의원 개개인이 누리는 권력은 커진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려다보니 “제가 국회에서 답변할 때 의석이 비어있었다” 류의 발언이 나오는 거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국회의원 정수는 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 등 300명이다. 50명을 감축하려면 비례대표를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비례 제도를 아예 폐지한다 해도 지역구를 최소 3곳은 줄여야 한다.

실제로 의원 정수를 줄인다면 어떤 의원이 줄어들까. 다시 말해, 어떤 주권자들의 대표자가 줄어들까. 힘없는 시민, 가난한 시민, 조직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시민, 인구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지역 시민,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청년, 장애인…의 대표자가 줄어들 터다. 이들 시민은 격차사회의 약자요 소수자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 길도 좁아지며 거대 정당 중심의 정치 양극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의원 정수 감축은 빈부·지역·세대·성별·학력 격차를 해소하긴커녕 확대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격차 해소와 의원 정수 감축은 결코 같이 갈 수 없다. 둘 다 하겠다는 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내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의원 정수를 늘려 대표성은 강화하되, 세비를 포함해 의원 전체가 받는 혜택의 총 규모는 줄이거나 동결하는 게 정답이다.

한동훈은 정치에 입문한 지 한 달도 안 됐다. 정치 초년생이 정치혐오를 타개할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신 정치혐오에 편승하는 일부터 배우다니 유감이다. 여전히 정치에 기대 거는 주권자들에겐 표를 달라 할 자신이 없나? 그래서 정치를 혐오하는 일부에 매달리려 하나?

18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동훈은 “저는 이기는 길이라면 뭐든 하겠다. (총선일인) 4월 10일까지 완전히 소모되겠다”고 말했다. 필승 의지는 인정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격차 해소인가, 의원 정수 감축인가? 시스템 공천인가, 낙하산 공천인가? 우왕좌왕하지 말고 하나씩만 하라. 정직하게.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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