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가 4층에서 뛰어내렸다”···동물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하기 위하여[책과 삶]

이영경 기자 2024. 1.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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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불안·공포에 시달린 반려견 올리버의 죽음 이후
6년간 전 세계 ‘상처받은 동물’과 전문가 만나
학대당한 코끼리, 자해하는 보노보, 우울증 걸린 곰
인간 정신건강 연구 위해 희생된 실험동물
“동물 이해하려면 자신부터 이해”
극도의 불안과 강박장애를 지녔던 로렐 브레이트먼의 반려견 올리버. 브레이트먼은 올리버의 죽음 이후 ‘마음이 아픈 동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후마니타스 제공

우린 모두 마음이 있어

로렐 브레이트먼 지음 | 김동광 옮김|후마니타스|420쪽|2만3000원

이마 한가운데를 가르는 하얀 털을 경계로 양쪽 대칭을 이루며 온몸을 덮은 까만색 털코트, 가슴팍의 넘실대는 하얀 털, 두 눈 위에 콕 찍힌 갈색 점이 매력적인 올리버는 스위스의 목양견인 베른마운틴종이다. 광고에도 등장하는 “견종계의 슈퍼 모델”이다.

과학사학자 로렐 브레이트먼은 파트너 주드와 함께할 반려동물로 베른마운틴종 개를 꿈꿨다. 순종의 가격이 2000달러에 달하는 고급 견종인 베른마운틴종은 ‘그림의 떡’이었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파양된 올리버를 입양하게 된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몇달 후 이상한 징후들이 발견된다. 올리버는 혼자 남겨지는 걸 극도로 불안해했다. 집에 홀로 있을 때면 베개를 갈가리 찢어놓거나 창문 앞 바닥을 모조리 할퀴어놓았다. 강박적으로 자신의 앞발이나 꼬리를 핥았다. 근사한 하얀색 앞발은 털이 빠지고 피부가 벗겨져 진물이 날 정도가 된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다.

“엄마, 하늘에서 개가 떨어졌어요!”

맞은편 아파트에서 아이가 외쳤다. 올리버가 4층 아파트 창문에서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방충망을 입으로 물어뜯어 구멍을 내고 몸을 던졌다. 입이 피투성이가 되고 상처를 입었지만 올리버는 살아났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브레이트먼은 동물행동학자를 찾아가고, 올리버의 불안과 공황을 덜어줄 수 있도록 프로작과 발륨을 투약한다. 파트너와 퇴근 시간을 교대로 앞당기고, 올리버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갖은 시도를 한다. 분리불안, 폭풍우 공포증, 강박장애 등이 올리버의 진단명이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트먼의 일상은 서서히 부식됐다. 올리버는 2년 뒤 세상을 떠난다.

“올리버가 죽은 후 몇년 동안 나는 그를 떠올리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애써 피하려고도 해봤다. 대신 나는 코끼리와 앵무새, 고양이와 고래, 말과 바다표범을 만났다. 그들의 가죽, 깃털, 모피에 손을 뻗을 때마다 나는 올리버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저자는 “올리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서커스 공연으로 학대받고 극도의 공격성을 보이는 코끼리, 어린 시절 정상적으로 양육되지 못하고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해 자학을 멈추지 못하는 보노보, 사람과 같이 가족 같은 환경에서 지내다 좁은 철창에 갇혀 중증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곰, 좁은 수조에 갇혀 똑같은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는 돌고래…. 저자는 6년 동안 세계 곳곳으로 ‘마음이 아픈 동물’들을 찾아다니고 동물들의 회복을 돕는 신경과학자, 동물행동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수의사, 훈련사와 사육사 등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린 모두 마음이 있어>는 저자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하면서도 신경과학, 동물행동학, 심리학 등의 연구 결과와 현장 이야기를 충실히 반영한 과학 에세이다.

캘리포니아 대자연을 누비던 회색곰 모나크는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포획한 후 22년을 철장에 갇혀 지독한 우울과 고독에 시달리다 안락사당한다. 사후에도 박제가 되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후마니타스 제공
1920년대 놀라운 지능으로 유명세를 떨친 고릴라 존은 2년간 영국의 가정집에서 인간과 함께 지내다 서커스단에 팔려간 뒤 3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후마니타스 제공

저자의 여정은 인간과 동물의 정신·감정의 유사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동물의 마음에 금이 간 것은 인간이 돈을 벌거나 위로를 얻으려 동물을 이용한 결과임이 드러난다. 인간의 정신건강을 향상하기 위한 연구에서 실험동물이 고통스러운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감정은 구조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의인화’에 대해 짚는다. 동물을 섣불리 의인화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도, 의인화를 통해 동물의 행동과 감정적 삶을 좀 더 정확히 해석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의인화는 자기중심적인 투사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 속에서 우리 인간 자신의 일부분, 조각들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역의 과정도 가능하다. 다른 동물의 정신질환을 파악하고 그 회복을 돕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빛을 비추는 일이기도 하다. 고통받는 동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늘면서 학대받거나 유기되는 반려동물 수 역시 늘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꼭 필요한 목소리다.

원죄는 데카르트에게 있다. 데카르트는 동물이 감정이나 자각이 없는 ‘살아 있는 기계’라고 봤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수백년간 완강히 지속됐으며, 20세기까지만 해도 동물에게서 인간과 비슷한 감정이나 의식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로 간주됐다.

찰스 다윈이 데카르트의 생각에 일격을 가했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동물과 사람이 비슷한 감정적 경험을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자연학자 윌리엄 로더 린지 역시 “사람과 동물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린지는 정신병원에서 일하며 동물의 정신이상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린지는 동물의 정신질환이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봤다. 실제 불안해하거나 성난 동물의 폭력성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잃게 하기도 한다. 책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코끼리, 곰, 말의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연구가 비인간동물의 희생 속에 이뤄졌음을 지적한다. 정신질환 연구에서 동물은 늘 인간을 대리한 실험 대상이 됐다. 대표적인 것이 모성에 관한 해리 할로의 연구다. 할로는 새끼 원숭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분리해 가짜 어미 인형들과 함께 있도록 했다. 뾰족한 철사로 만든 가짜 어미에게 다가가는 새끼는 젖은 먹을 수 있지만 신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새끼 원숭이는 젖이 나오지 않지만 헝겊으로 감싼 부드러운 가짜 어미를 택했다. “영장류의 건강한 발달에는 접촉과 애정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할로의 고통받는 원숭이들이었다.”

로렐 브레이트먼과 코끼리. 후마니타스 제공

저자는 올리버에게도 투약된 프로작, 발륨 등 항정신병 의약품 개발에 실험동물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 역시 짚는다. 원숭이, 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신경안정제’라 불리는 밀타운을 시작으로 발륨, 할돌 등이 개발되고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용 항정신병제가 문제행동을 하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점이다. 반려인의 정신과 약을 나눠먹는 개들이 생겨난 것이다. 저자는 “미국에는 7800만마리 이상의 반려견이 존재하며 이는 화이자나 일라이 릴리 같은 회사들의 거대한 시장”이라고 말한다. 일라이 릴리는 ‘반려견을 위한 프로작’인 쇠고기 향이 나고 씹을 수 있는 레컨사일을 발매해 분리불안 치료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올리버에게 발륨이나 프로작은 일부 도움이 되긴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약물 사용이 문제 해결의 비법이 될 순 없다고 말한다. 개별 동물의 성격, 유전적 요인, 성장 과정, 경험에 따라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상이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는 동물들의 고통을 알아보고 치료법을 찾는 출발점은 세심한 관찰과 관심에 있다. 마음이 아픈 동물들을 옆에서 돕는 사육사, 수의사들의 관심과 노력은 동물들을 서서히 고통 속에서 건져올렸다. 실험실에서 어머니와 분리된 후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끔찍한 자해행동을 반복하던 보노보 브라이언은 사육사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건강한 우두머리로 성장한다.

치유를 돕는 우정은 종의 경계도 뛰어넘는다. 예민한 경주마 시비스킷은 마구간에 혼자 남겨지는 걸 두려워했지만, 조랑말 펌프킨과 개 포카텔, 거미원숭이 조조와 함께 지내며 안정을 되찾는다. 밤이면 시비스킷은 그의 목을 껴안은 조조와 그의 배에 기댄 포카텔, 지근거리의 펌프킨과 함께 잠들었다. 이후 시비스킷은 신기록을 쏟아냈다.

책엔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많지만,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다.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동물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신을 이해해야 해요”라고 태국의 ‘코끼리 수도승’은 말한다. 나의 마음과 다른 존재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인식할 때, 나를 돌보고 타자를 돌볼 수 있다. 반려종으로서 인간과 동물이 제대로 관계 맺기 위해서, 진정한 회복과 치유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영감 어린 사례들이 넘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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