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내 반미감정 급증…이라크 총리 "미군주둔 이제 불필요"

현윤경 2024. 1. 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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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섣부른 철수로 IS 복귀·중동 불안 부른다" 경고
"수다니 총리, 이란·미국 사이에서 정치적 줄타기 중"
이라크 내 반미·반이스라엘 시위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벌이는 전쟁의 여파로 중동에서 반미감정이 급증하면서 이라크에서도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가운데 무함마드 시아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가 이라크에서의 미군 주둔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알수다니 총리는 1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인터뷰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합군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없어졌다고 믿는다"며 이라크 주둔 미군과의 관계 재편을 재차 주장했다.

그는 국제 동맹국의 철수하더라도 이라크군의 역량이 약화할 것이라고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라크 전역을 통제할 수 있는 유능한 보안군을 갖췄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국경은 완전한 통제 아래에 있다. 우려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2014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결성된 이라크 주둔 국제연합군은 미군 2천500명과 미국의 동맹 20여개국 소속 병력 90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이라크 보안군에 대한 훈련과 병참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군의 이라크 주둔은 테러단체 격퇴라는 명목적 사유를 넘어 중동 내에서 자국 세력을 지키기 위한 거점 유지 전략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1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연설하는 무함마드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알수다니 총리는 전세계 정·재계와 학계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열리고 있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지난 16일 이뤄진 WSJ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불만도 표출했다.

그는 전쟁의 발단이 된 작년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전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겪고 있던 고통을 서방은 못 본 척했다고 지적하며 미국은 '제노사이드'(genocide)를 끝내기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말살을 추진하는 인종청소급 정책으로 국제법정에서 처벌받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뜻한다.

알수다니 총리는 또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가 이라크 주둔 미군을 빈번하게 공격하는 것을 비판하는 한편 최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지도자를 겨냥한 미군의 드론 공격 역시 "이라크의 주권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싸잡아 비난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머무는 알아사드 공군기지 [로이터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직후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는 현재까지 이라크와 시리아 주둔 미군과 국제 동맹군을 겨냥해 드론, 미사일 등으로 최소 55차례 공격을 가했다.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이 잦아지자 이라크 주둔 미군은 지난 4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동부에서 드론 공격을 감행,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하라카트 알누자바 지도자인 무슈타크 자와드 카짐 알자와리를 제거하는 등 중동 군사개입을 강화해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붓고 있다.

알수다니 총리는 지난 9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과의)관계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며 이라크 주둔 연합군을 겨냥한 공격이 계속 벌어지지 않도록 철수 시기에 합의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앞서 지난 5일에도 총리실 명의 성명을 내고 "미국 주도 국제연합군의 이라크 주둔을 영구 중단하기 위한 조처를 마련하고자 양자위원회 출범 일자를 논의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수다니 총리는 그러나 WSJ과의 이날 인터뷰에서 연합군의 구체적인 철수 시한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또한, 향후 재편될 양자관계에 입각해 이라크군에 조언하는 역할을 할 미군 병력이 일부 이라크에 남아 있는 방안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의 입장은 국제연합군의 일부 조정은 필요하겠지만 이라크군의 역량이 아직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미군과 국제연합군이 섣불리 철수하면 IS의 재건 기회로 작용할 수 있고 중동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인민동원군(PMF) 병사들이 미군 공습으로 숨진 친이란 무장세력 관계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미 국가안보보장회의(NSC)는 미국이 수다니 총리와 국제연합군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이런 논의가 언제 시작될지, 또한 연합군의 역할이 얼마나 조속히 조정되거나 종료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NSC 대변인은 지난 17일 WSJ에 보낸 이메일에서 "IS 격퇴를 위해 10년 전 구성된 국제연합군이 그동안 성공적인 활동을 한 만큼 (이라크와) 상호 조정으로 이행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만한 시점"이라면서도 "IS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협이며, 그 위협은 진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WSJ은 알수다니 총리와 작년에 인터뷰할 때에는 그가 IS에 맞서고 있는 이라크군을 훈련하고, 지원하려면 외국 군대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었다면서, 최근의 입장 변화는 가자 전쟁이 시작된 이후 그가 친이란 이라크 강강론자들로부터 받는 압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알수다니 총리는 2022년 10월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세력의 지지 속에 임명된 시아파 진영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라크군이 아직은 자체 역량과 자원이 역부족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에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철수를 거론하고 있지만, 미군의 당장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과의 관계 재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한 전직 미국 관리는 이와 관련, "그는 한편으로는 이란과 이란의 대리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길 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부가 미국과 동맹의 지원 없이는 존속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며 알수다니 총리가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정치적인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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