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 앞에 꺾이지 않겠다’… 이 시대 ‘노라’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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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는 19세기 이후 줄곧 여성 해방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노라는 '인형'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집을 뛰쳐나간다.
지난해 12월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와이프'는 '인형의 집'을 모티브로 한 여러 시대 '와이프'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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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이자 엄마의 삶 벗어나
인생 정체성 찾아가는 얘기
희곡 ‘인형의 집’이 모티브
1959~2046년 네 커플 등장
여성·퀴어 사회적 지위 다뤄
배우들 ‘1인多역’ 연기 압권
첫 연극 데뷔 최수영도 주목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는 19세기 이후 줄곧 여성 해방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노라는 ‘인형’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집을 뛰쳐나간다.
지난해 12월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와이프’는 ‘인형의 집’을 모티브로 한 여러 시대 ‘와이프’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연극 속 ‘노라’들은 그 외연을 넓혀 시대적 관습에 갇힌 성 소수자들까지 끌어안는다. 영국 극작가 새뮤얼 애덤슨의 작품으로 연출은 ‘테베랜드’ ‘더 웨일’ 등의 신유청이 맡았다. 소녀시대 최수영의 연극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연극은 1959년부터 2046년까지 혈연으로 이어진 네 커플이 차례로 등장한다. 1959년엔 사랑하지 않는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데이지와 그의 동성애인 수잔나, 1988년엔 데이지의 아들 ‘아이바’와 동성애인 에릭, 2024년엔 무기력한 중년이 된 아이바와 에릭의 딸 ‘클레어’, 2046년 연극배우 ‘수잔나’와 클레어의 딸 ‘데이지’가 등장한다. 이들 커플이 각각 주인공인 4막은 모두 연극 ‘인형의 집’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노라가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나오거나 남성이 노라를 맡는 식으로 연출해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등장 인물들은 시간 속에 변화한다. 1959년 동성애인과 가슴 아픈 사랑을 했던 데이지는 1988년엔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가 되고, 1988년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 속에서도 ‘퀴어’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아이바는 2024년엔 성소수자 운동에 무관심한 중년 남성이 된다. 아이바는 1988년에 연인 ‘에릭’을 와이프라 부르며 설교를 늘어놓던 ‘갑’이지만 2024년엔 동성연인 ‘카스’에게 ‘와이프’로 불리는 ‘을’이 된다. 이 같은 인물들의 변화는 현실적이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하다.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이지만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모든 배우들은 막이 바뀔 때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1인 2역 이상의 배역을 소화한다. 가장 빛난 것은 전혀 다른 3개의 캐릭터를 연기한 이승주였다. 지난해 국립극단 ‘벚꽃동산’에서 ‘로파힌’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그는 이번엔 가부장적인 남편 ‘로버트’부터 자기주장이 강한 퀴어 ‘아이바’, 답답할 정도로 착한 남편 ‘핀’까지 1인 3역을 보여준다. 막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다른 인물로 변한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배신감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과묵하고 억압적인 남편을 연기하다가 막이 바뀌자 하이톤의 목소리로 쉴 틈 없이 외설적인 농담을 찔러대는 동성애자로 변하니 말이다.
반면 이번 작품으로 연극에 도전한 배우 최수영의 연기는 아쉬웠다. 파격적인 동성애 연기에 도전한 것은 인상적이었지만 베테랑 연극 배우들 틈에서 그의 연기는 힘에 부쳐 보였다. 첫 연극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대사 전달에 신경이 집중돼 감정 연기에 소홀해진 듯한 모습도 종종 보였다.
출연 배우들은 쟁쟁하다. 배우 정웅인과 송재림이 각각 피터와 로버트를 맡았다. 수잔나 역은 영화 ‘더 킹’에서 안희연 검사로 나온 김소진과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의 친모 역할을 맡았던 박지아가 출연한다. 최수영이 맡은 데이지 역에 배우 김려은이 더블 캐스팅돼 다른 매력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피터 역을 오용, 에릭 역을 정환·홍성원, 마조리 역을 신혜옥·표지은이 맡는다. 공연은 오는 2월 8일까지 계속된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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