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나이에 취업하고 결혼해야 ‘행복한 삶’이라는 세상[연구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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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하고, 타인의 행복을 기원한다.
우리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일자리를 얻고,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서 늦지 않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소위 '정상적인'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배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이 그어 둔 직선을 따라가고자 애쓰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곤 한다.
세상은 행복이라는 말로 우리를 마취시켜서 지금의 현실을 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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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하고, 타인의 행복을 기원한다. 행복은 뭘까. 사람들은 인문학적으로 행복의 의미를 규명하거나, 과학적으로 행복의 원리와 기능을 밝히려 한다. 그러나 과연 정답이 있을까. 사실 많은 질문에는 정답이 없고, 꼭 있어야 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질문은 조금 비틀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페미니스트 학자인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후마니타스)에서 ‘행복은 무엇인가’ 대신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점에서 새로운 질문은 적실하다.
세상은 어떤 형태의 삶에만 ‘행복’이라는 말을 붙인다. 우리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일자리를 얻고,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서 늦지 않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소위 ‘정상적인’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배운다. 이런 매끈한 직선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삶들은 ‘불행’한 것이 된다. 직선에 들어맞는 삶은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이 그어 둔 직선을 따라가고자 애쓰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곤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행복이 약속되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제나 신년 목표나 다짐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행복이 본질적으로 약속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기루다.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내가 가는 길에는 아직 없는 것. 그러니 우리는 신기루 대신 지금의 삶을 바라볼 때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세상은 행복이라는 말로 우리를 마취시켜서 지금의 현실을 잊게 만든다.
신기루 같은 행복은 우리의 욕망을 넘어 서로의 의무가 되기도 한다.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해. 아니,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을 망쳐, 그러니 너는 나의 행복을 위해 행복해야 해. 즉, 나의 행복을 위해 너는 너의 불행을 감춰야 해. 이렇게 행복이 의무가 될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행복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행복한 웃음 뒤에는 어떤 욕망과 의무와 폭력이 감추어져 있는가.
행복은 구원이 아니다. 차라리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에도 우리는 행복에 사로잡혀 있겠지만, 가끔은 세상이 무엇을 불행하다고 여기는지 되묻고, 도리어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로서의 “불행할 자유”를 즐기자. 행복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자. “불행할 자유는 그러므로 행복을 제쳐 두지 않을 것이다.”(400쪽) 불행 속에 복이 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안희제 작가·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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