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북한의 남침 징후 “척후병이 나타났다”
(시사저널=전영기 편집인)
요즘 북한 김정은의 대남 적대적 동향에 대해 '북풍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느 정파에 유리할까' 하는 식의 게임적 접근이 적지 않다. 위험하고 유감스럽다. 위험하다는 것은 북한의 공격이 여야,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 감행되는데 마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유불리가 다르다는 오해나 환상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외적의 도발에 국내의 일치된 대응이 어려워진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때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은 46인 해군 용사는 개별적으로 정치적 입장이 달랐을지 모르나 한국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북한의 공격을 받았다. 김정은의 공격적 자세보다 위험한 것이 한국인의 분열 아닌가.
김정은의 공격보다 위험한 한국 정치의 분열
유감스럽다는 것은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겪고도 우리 정치가 당파성에 사로잡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어서다. 천안함 폭침 후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 아니라 좌초한 것'이라는 등 무책임한 주장들이 난무해 여론 분열이 일어났다. 여야는 초당적 대처에 실패했다. 그해 11월 북한군에 의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또 발생한다. 민간인과 해병대원이 희생됐는데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천안함 때 야무지게 대응하지 못한 탓이 컸다.
한때 한국 정치를 두고 "정쟁엔 귀신, 외적엔 등신"이라는 조롱도 있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그사이 김정은의 핵무기 공격 능력은 더 강력하고 정교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김정은의 공격적 언행은 과거에 볼 수 없던 높은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위험이 쌓이면 터지게 마련. 정부와 정치, 국민이 4월 총선에 집중하되 북한의 도발과 포연 가득한 국제 정세로 시선을 넓히면서 판단할 필요가 있겠다.
시청률 10%를 돌파한 KBS의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각본 이정우)이 세간의 화제다. 당시 고려는 거란과 여진이라는 두 개의 적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이정우 작가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해당 드라마는 "죽기 살기로 싸우던 국내 정치 세력들이 거란이라는 거대 외적의 공격 앞에서 당파적 갈등을 줄이고 일치된 힘을 회복해 나라를 구원하는 스토리"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회에서 호족 세력을 제거하려는 현종과 외적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호족과의 싸움을 중단해야 한다는 강감찬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현종과 강감찬의 절충, KBS 《고려거란전쟁》의 교훈
그때 두 사람에게 "압록강 국경을 건너 거란의 척후병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접수된다. 이정우 작가는 사료에 따르면 거란의 척후병은 '원안(遠眼·멀리 보는 눈)'으로 불렸고, 5리 밖 동물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는 정밀한 시력의 소유자라고 했다. 앞으로 극의 전개는 외적 침략의 징후가 척후병을 통해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게 되자 현종과 강감찬은 현실 감각을 공유하면서 정책 절충점을 찾는다고 한다. 역사에 남은 귀주대첩은 이처럼 국내 특정 정치 세력의 일방적 승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요 정치 세력들이 외적 방어라는 공통 인식을 확보하고 타협하는 데서 시작됐다.
얼마 전에 권위 있는 북한 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로버트 칼린 전 CIA 분석관이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김정은이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38노스 공동기고). 두 전문가의 언급이 거란이 고려를 공격하기 위해 보낸 척후병처럼 현재 한국인의 분열을 싸매고 한국 정치에서 초당적 안보 협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헤커와 칼린은 6·25와 같은 북한의 남침 징후를 척후병이 되어 우리에게 소리치고 있다. 척후병은 척후병일 뿐이다. 과장할 것도 과소 평가할 일도 아니다. 척후를 보고 대비하면 막을 수 있지만 방치하면 커지는 게 적의 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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