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주식회사’ 시대, 정부는 대기업 권력 억제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4. 1. 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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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경제인 단체장, 기업 회장 등과 떡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오른쪽부터 신동빈 롯데 회장,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 손경식 경총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윤 대통령,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류진 한경협 회장, 강지영 로보아르테 대표, 구광모 LG 회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윤태 |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사회학)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를 맞아 ‘불평등 주식회사’(Inequality Inc.)라는 부의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대기업은 불평등 증가에 큰 책임이 있다. 대기업은 노동자보다 부유층에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며, 조세를 회피하고, 의료와 교육 등 공공서비스를 시장화하면서 전 세계적 부의 집중을 심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에 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40년 넘게 주류 경제학자들은 기업과 부자의 세금을 감면하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난다고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세금과 복지가 늘어나면 기업과 경제에 부담을 준다고 정치인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달리 낙수효과는 없었고 저임금 일자리만 늘어나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옥스팜이 지적한 대로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억만장자 5명의 재산은 2배로 늘어난 반면 인류의 60%는 더욱 가난해졌다. 낙수 경제학이 실패하자 일부 학자들은 불평등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경제적 지구화와 기술의 진보를 탓한다. 하지만 무역과 탈산업화가 자동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은 공장 해외 이전, 생산 자동화, 노동유연화, 외주화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최고 경영자의 연봉과 주주의 배당을 늘린다. 반면 노조의 단체 교섭력이 약해지고 비정규직과 플랫폼 종속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보통 사람의 소득은 줄어든다. 1600개 글로벌 대기업 가운데 0.4%만이 직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고 옥스팜은 지적한다. 불평등은 경제와 기술의 구조적 변화보다 대기업과 노동자가 가진 힘의 불균형 때문에 커지고 있다.

사회세력의 권력관계에 따라 국가별 불평등 수준이 달라진다. 조세 부담률과 사회 지출 수준이 낮은 미국과 영국보다 누진세와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는 북유럽 국가의 불평등 수준이 훨씬 낮다.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 만든 결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대부분 정부는 대기업과 부유층에게만 유리한 감세, 긴축, 탈규제, 공기업 사유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소수 부유층이 경제를 지배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부 정책이 실행되면서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저항도 거세졌다. 이에 놀란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은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등 ‘포용 성장’을 제안했다. 세계의 부자들이 모인 세계경제포럼도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옥스팜이 지적한 대로 2020~2021년 새로운 부의 63%를 전 세계 최상위 1%가 가져갔다. 낡은 신자유주의 정책은 죽어가지만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스팜은 ‘불평등 주식회사’ 보고서를 통해 하위 40% 소득이 상위 10%와 같은 수준이 되도록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대기업 권력을 억제할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 의료, 교육, 돌봄 서비스 분야에 대한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기업이 공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둘째, 독점을 해체하고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의 권한을 확대하며,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를 인상하고, 자본 이득과 횡재 이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기업을 개혁해 이해관계자의 이익 공유를 촉진하고,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공정무역 기업, 환경 친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이 제안은 너무 이상주의적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과거 노예제 폐지, 보통선거, 공교육과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상식이 되었다. 한 사람의 꿈은 이상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힘을 모으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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