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골문 등지고 헛발질 하는 정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 시장 개장식’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발언한 뒤 여러가지 정책들이 언급되고 있다. 상장주식 대주주 양도세 완화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확대 등이다. 증시 투자 세 부담을 줄여 투자 수요를 끌어올리면 주가도 오른다는 발상이고 전략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말하면서도 쏙 빼놓거나 무게를 덜 두는 사안이 있다. 바로 기업 지배구조다.
코리아디스카운트 핵심은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국내 기업의 주가가 본질가치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의미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래된 개념이다. 그간 핵심 원인으로 꼽힌 게 국내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다. 큰 틀에서 지배구조는 지배주주·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감시하는 기제다. 세부적으로는 내부 지배구조(소유구조·주주총회·이사회·경영진승계·보수구조 등)와 외부 지배구조(법·제도·시장경쟁구조·인수합병시장·언론 등)로 나뉜다. 한국 기업은 내·외부 지배구조 둘 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우리는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의지, 즉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매우 비관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에 있는 재벌에 대한 현 정권의 자세는 엉망진창이어서다. 소유분산기업(비재벌)에 접근하는 자세도 이상하다.
현 정권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관련해서 일의 우선순위가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는 재벌이어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은 대부분 기업집단 형태다. 여기서 지배구조의 문제인 기업가치 훼손, 기업범죄 등의 대부분이 발생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지정하는 ‘대규모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중 재벌(총수가 있는 대규모기업집단)은 72개, 이들의 매출 총액은 1975조원이다. 재벌이 전체 대규모기업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다.
그런데 현 정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수 없는 대규모기업집단’(포스코·케이티·케이티앤지 등)만 문제 삼아왔다. 더구나 구조적·제도적 접근이 아닌 대표이사 연임 문제만 관심을 갖는다. 소유가 분산된 기업이 주인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전형적으로 재벌이 ‘우리는 주인이 있어서 훌륭하다’며 자기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방어할 때 쓰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후진적 지배구조의 핵심 재벌은 놔두고
현 정권의 일의 우선순위가 꼬여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연금의 총수 없는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개입이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이라면 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 안에서 소유분산기업보다 훨씬 비중이 높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걱정해서 투자 수익률을 제고해야 하는데 말이다.
현 정부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다고 나는 본다. 특히 윤 대통령은 재벌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의 외교 순방, 엑스포 유치전에서의 재벌과의 동행에서 드러났다. 재벌 총수 개인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을 너무 많이 따라다니는 것이 피곤할 수도 있겠으나 공짜는 없다는 논리가 작동을 한다면 재벌들에게 뭔가 이익은 생길 것이다. 단순히 정권과 재벌의 ‘주고받기’(give and take)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미국의 거대기업(super-sized firm)과 관련된 논의를 보면 거대기업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강화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거대기업의 선거자금 기부와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정치인·관료 포획, 거대기업 경영진의 사회적 영향력 강화, 그리고 그것을 통한 거대기업의 시장지배력 유지·강화 등이 문제이다. 윤 대통령이 재벌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면 할수록 한국 사회에서 재벌은 점점 더 불가침의 영역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불가침의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거칠 것이 없는 존재는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소유분산기업 대표 연임에만 촉각
그나마 현 정권이 관심을 가지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현 정권은 집권 초반부터 소유분산기업의 대표이사 연임 문제만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그 결과 작년에는 구현모 케이티(KT) 전 대표가 물러났으며, 올해 들어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백복인 케이티앤지(KT&G) 대표가 스스로 연임을 포기했다. 비재벌이라고 해서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물러난 대표들이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시장의 반응도 묘할 뿐만 아니라 그 막전막후도 이상하다.
작년 케이티에 대한 정부의 인사개입 논란이 있던 기간에 케이티 주가가 급락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이슈가 있을 때 주가는 상승한다. 시장은 현 정부의 소유분산기업 대표이사 연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라고 읽지 않고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관치로 읽었다. 시장의 예상이 틀린 것일까? 케이티는 대표가 바뀐 뒤 임원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정책특보, 검사 출신 등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얼마 전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의 회장 연임에 대한 구두개입 논란이 빚어졌던 포스코홀딩스의 경우 최정우 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군에서 탈락한 이후 경찰이 최고경영자 후보추천위원회 소속 이사들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를 수사하면서 주가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현 정권하에서 국민연금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유독 민영화된 공기업의 인사 문제에 대해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두로 개입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뭔가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재벌과는 패턴이 다르다. 재벌은 지배주주의 지배권 유지 및 승계와 관련된 사익 추구가 주요 문제이다. 드러나는 형태는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통행세·상표권 등인데, 주로 총수가 자신의 지분이 적은 회사의 자원을 지분이 많은 회사로 이전한다. 그러나 소유분산기업에 이런 지분구조는 존재하지 않고 이는 재벌에 비해 상당한 장점이기도 하다. 소유분산기업의 주요 문제는 ‘제국 건설’(empire building)이다. 과잉 투자, 문어발식 인수·합병 등을 통한 규모와 범위의 확장과 이에 뒤따르는 경영진 참호 구축을 말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최고경영진의 권력이 커지고, 커진 권력을 이용해 사익 추구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최고경영진이 막강한 인사권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 이사회를 채우거나, 조직 내 자신의 파벌을 형성하고, 로비를 위한 전관 영입을 통해 기업의 독과점 지위를 유지·강화하거나 최고경영진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포스코는 소속 계열사가 42개이고 케이티는 무려 50개인데, 이 왕국의 인사권과 자본배분 권한을 가지는 회장은 막강한 자리이고 이를 잘 견제할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 정권은 전 정권하에서 선임된 회장을 낙마시키는 것 외에 어떠한 지배구조 개선의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전 정권 탓만 하다가 온 임기를 다 쓰는 초유의 정권이 탄생할 거 같다. 이게 다 미래를 위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본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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