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김사부' 작가는 왜, 일제강점기 괴물 이야기에 빠졌나
(SBS 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이 글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선한 사람들의 꿈과 성장을 이야기하고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낭만이란 무엇인지를 풀어내던 강은경 작가. 따뜻한 시선으로 휴머니즘과 행복을 이야기하던 그가 1945년 어두웠던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크리처물, 즉 '괴물'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박서준, 한소희가 주연으로 나선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 관한 이야기다.
'경성크리처'는 경성 최고의 자산가인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 장태상(박서준 분)과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는 토두꾼 윤채옥(한소희 분)이 일본군이 운영하는 옹성병원 지하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탄생한 괴물을 마주한 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슬픈 사투를 그린 드라마다.
일제강점기라라는 시대에 크리처를 접목시킨 '경성크리처'는 공개 후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다. 시대가 주는 독보적인 분위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배우들, 가슴 뜨거워지는 전개가 충분히 볼 만하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전개가 느려 긴장감이 떨어진다거나 독립군을 가볍게 다뤘다는 지적, 캐릭터 설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혹평도 나왔다.
강 작가는 이런 엇갈린 반응을 보면서 "만드는 포인트와, 기대했던 포인트가 달랐구나"를 느꼈다며, 자신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포인트를 뒀지만, 대중은 크리처물 특유의 장르적인 재미에 좀 더 기대를 품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30년 가까이 드라마를 써온 작가에게 충분히 자존심 상하는 냉혹한 평가일 수 있는데, 강 작가는 이번 경험이 앞으로 써 나갈 자신의 작품들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덤덤히 받아들였다.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이지만, 여전히 이를 부정하거나 무지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작품에서 그 시대를 다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도전이다. 그만큼 결과물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각오가 남달랐을 터다.
일제강점기,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저한테 중요했던 건, 그 시대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장태상, 윤채옥이란 인물로 제가 키워드로 가져가려 한 '생존', '실종'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저변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삶으로 버텨낸 사람들이 있었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경성크리처'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1945년 경성의 봄, 어둡고도 화려한 격동의 그 시대를 살아간 다채로운 인물들이 촘촘히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강 작가는 그 시절 '실종'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며, 각 캐릭터의 서사를 쌓는데 힘썼다. 일본 경무관의 협박에 사라진 조선인 애첩 명자를 수소문하는 장태상,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으려는 윤채옥의 이야기 외에도, 착실히 의대에 다니던 착한 아들이 갑자기 군에 끌려가 찾으려는 어머니, 사라진 동생을 찾으려 옹성병원에 위장 취업한 독립군 형의 이야기 등이 극에 등장한다.
"실제 그때 자료를 보면, 이유 없이 사라진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고, 강제징용을 당하기도 했고, 이별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 많아요. '실종'이란 키워드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쌓을 수밖에 없었죠. 인물들의 서사를 설명하느라 속도감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지만, 저한테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OTT 작품에서 '속도감'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킹덤', '스위트홈' 등 K-크리처 장르물이 글로벌 OTT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숨가쁜 전개에서 오는 박진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에서 기인했다. 그런데 '경성크리처'는 크리처물을 표방하지만 '속도감' 부분에서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강 작가는 속도감이 중요하단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도감을 살리려고 기술적으로 제가 뭔가를 하진 않았어요. 저도 요즘 콘텐츠를 보면서 속도감의 중요함을 느껴요.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작품도 있겠죠.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밟아가야 하는 정서들을 밟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삼아 화려한 볼거리와 빠른 전개로 크리처 중심의 스토리를 만들었다면, 크리처물로서 더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 작가는 '타기팅(Targeting)' 조차 하지 않으며 작품에 계산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타기팅을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봐주면 좋겠다'며 타깃층을 삼는 게 부질없다는 걸, 오래전에 알았거든요. 대중은 항상 의외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줘요. 타깃을 잡는다고, 그대로 안 되더라고요. 다만 만드는 내내 '우리의 진정성, 모두의 최선, 그것만 다 하자'는 것에 집중했어요. 만드는 순간에는, 그 과정에 좀 더 집중하려 했어요."
일제강점기 그 힘겨운 시절을 버텨낸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강 작가가 바라는 건, 그렇게 꺼낸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이다. 한류스타가 출연하고,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나가는 작품인 만큼, 해외 시청자들의 접근성이 좋다. 이를 기회로, 일제강점기가 어땠는지, 어떤 일본의 만행이 있었는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국내외 시청자가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독립군 비하도, 일본인 미화도 아니다
"준택이도 애국단 청년들도, 굉장히 어리고 젊어요. 독립을 하겠다는 의욕이 앞서고 이 시대의 어둠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강렬한 친구들인데, 그게 과연 현실과 부딪쳤을 때, 끝까지 '독립을 할 거야' 그랬을까, 그 사람들은 공포도 두려움도 없었을까, 싶었어요. 물론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고 맹렬하게 달려가는 독립군도 있었겠죠. 제가 그리고 싶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 현실에 대한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뚜벅뚜벅 가는 준택이와 청년들의 이야기. 그게 그들 이야기의 방점이에요. 그 시대의 인간군상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게 참 쉽지만은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그분들이 했던 일을 현실적으로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할 때 독립군은 무조건 무적이었을 거 같지만, 윤봉길 의사는 20대 초반, 유관순 열사는 심지어 10대였어요. 그 젊은 친구들이 느꼈을 공포, 어려움. 근데 그걸 다 버티고 그 일을 해냈구나, 거기에 도달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착하게 그려진 일본인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반응들도 있다. 경무관의 지시로 장태상을 미행하는 업무를 수행하다가 인간적인 갈등에 빠져 결국에는 장태상을 돕는 일본 순사 모리(이규성 분), 조선인들이 옹성병원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고 그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를 방관했던 것을 사과하는 화가 사치모토(우지현 분) 등 선량하게 그려진 일본인 캐릭터에 대한 불편함이다.
731부대와 생체실험… 모성애 가진 크리처의 탄생
"일본은 731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어요.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에도 명시된 곳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죠.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유명한 제약회사의 CEO도 됐다고 하는데…"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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