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한 화이트 인테리어가 트렌드인 요즘, 오래간만에 컬러로 멋을 낸 집을 만났다. 네이비, 블루 컬러로 포인트를 주고 집 전체에 모던한 디자인을 적용한 이경민·이경희 부부의 집은 아름답고, 실용적이다.
경기 의정부에 위치한 154㎡(46평) 공간은 이경민·이경희 부부와 열 살, 세 살배기 형제가 사는 네 식구의 보금자리다. 6주 동안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쳐 20년 된 여느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구조를 완성했다.
"새해에 결혼한 지 12년 차가 돼요. 결혼 후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집에서 오랜 기간 전세를 살다 평수를 넓혀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죠. 이 집은 결혼 후 처음 장만한 '내 집’이기도 해요.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인 데다, 우리 가족이 장만한 첫 집인 만큼 고민할 것도 없이 아주 공을 들여 집을 고치기로 마음먹었죠. 리모델링 전략은 '디자인 능력은 물론 시공자의 소통 능력 등 여러 면을 고려해 마음에 드는 시공업체를 고른 후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자’였어요. 그게 집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거든요.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결정한 이들 부부에게도 주문 사항은 있었다. 심심한 화이트 인테리어 대신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로 집 전체를 디자인할 것,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별도 공간을 확보해줄 것, 레고 놀이를 좋아하는 큰아이에게 작게나마 전용 놀이공간을 마련해줄 것 등이 그것. 이번 시공을 맡은 디자인코멘트 신윤섭 실장은 이 의견을 듣고 블루 컬러 베이스의 세련된 공간을 연출했다. 아이들의 공간은 철거할 수 없는 내력벽을 적극 활용했다. 베란다 확장 후 남은 내력벽 뒤로 평상형 벤치를 놓았는데, 이로써 방과 다른 매력의 아늑한 독서 공간이 마련됐다.
번뜩이는 내력벽 활용 아이디어
거실은 부부의 주문 사항에 가장 부합한 공간이다. 진한 월넛 우드 디테일의 필름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그 앞으로 네이비에 가까운 딥 블루 컬러의 패브릭 소파, 비비드한 컬러감의 블루 선반, 블루 컬러 베이스의 그림이 어우러져 부부가 원하는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모습이 완성됐다. 거실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곳은 베란다 확장 공간. 소파 옆에 설치된 선반형 파티션은 베란다 확장 후 철거할 수 없는 내력벽을 적극 활용해 디자인한 것으로, 비비드한 색감의 블루 철제 선반을 뱅 둘러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곳에 활력을 주는 것은 물론 실용성까지 더한다. "새집에 이사하면 아이들의 독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각각 방을 하나씩 내어주고 서재와 드레스 룸, 부부 침실을 확보하고 나니 따로 활용할 수 있는 방이 없더라고요. 그때 실장님이 베란다 활용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내력벽에 인테리어 요소를 더해 파티션 역할을 부여하고, 벤치를 만들어 독서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말이죠. 내력벽 뒤가 좁다 보니 참 아늑한 공간이 완성되었는데, 아이들이 그곳을 아지트처럼 여기며 참 좋아해요. 그곳에 앉아 바라보는 바깥 뷰가 근사해 저희 부부도 애정을 가지는 장소가 되었고요."
주방의 레이아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집 주방은 따로 분리하지 않았음에도 별도의 공간으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 파티션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인데, 그 덕에 주방이 구분되는 효과가 생긴 것은 물론 자질구레한 살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생겨났다. 주방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파티션은 사실 철거할 수 없는 내력벽을 활용해 만든 것. 주방과 거실 모두를, 리모델링을 방해하는 골칫덩어리로 치부되던 내력벽을 활용해 변신시킨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코지 코너의 재발견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에 이르는 긴 복도를 만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복도 끝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저희 집의 코지 코너도 여느 집처럼 벽면이었어요. 옆으로는 부부 침실로 들어가는 문이 나 있었고, 부부 침실에 들어가면 또 하나의 문을 통해 파우더 룸과 부부 욕실이 이어져 있었죠. 이 공간을 대대적으로 손봤어요. 복도 끝 코지 코너의 조적 벽체를 모두 철거하고, 철거 후 드러난 파우더 룸에 세면대를 설치해 건식 세면 공간 겸 파우더 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죠." 이경민·이경희 부부 침실 옆 오픈된 파우더 룸은 얼핏 유럽 호텔 욕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은 조적 세면대 받침에 쓰인 타일과 세면대 마감재. 블루 컬러의 수전과 블랙 세면대, 레트로 무드 패턴 타일의 조화는 세련됨을 넘어 힙한 느낌까지 풍긴다.
파우더 룸의 변신으로 부부 침실 구조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입구. 여닫이문 대신 철제 간살 디테일의 슬라이딩 도어를 시공해,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집이 아닌 여행지의 숙소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부 공간 역시 호텔을 연상시킨다. 바닥부터 침대 헤드월까지 원목마루로 연결해 따뜻한 느낌을 극대화한 것은 물론 헤드월 뒤편으로 간접조명을 달아 아늑한 무드를 더했다.
침실 반대편 공간은 부부 욕실이다. 세면대를 바깥으로 뺀 덕에 욕실 공간이 훨씬 여유로워졌는데, 그 덕에 넓은 조적 욕조 시공이 가능했다. 욕조는 집에서 두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물을 가득 받아두면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즐긴다고. 집의 컨디션이 생활의 질을 한껏 높인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만족도가 상상 이상이라는 이경민·이경희 부부. 집 꾸미는 재미에 매일이 즐겁다는 이들 부부의 달뜬 목소리에서 공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