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책방들 생겼더니…‘초단편문학상’까지 나왔네

최원형 기자 2024. 1. 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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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금지했던 팬데믹 시대 들어 주춤했다지만, 전국 각 지역에서 '독립서점' 또는 '동네책방' 성격을 지닌 책방들이 800여곳가량 운영 중이다.

지난해 열린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공모전은 이처럼 지역과 독립서점, 글쓰기가 만나는 오늘날 새로운 '책 문화'의 모습을 잘 보여준 사례다.

군산초단편문학상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의 '지역출판산업활성화지원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군산의 독립서점들이 주도해 벌인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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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작품집
군산 책방 12곳 등이 기획·후원
자격·분량·형식 등에 ‘제한 없음’
독자이자 예비 저자가 만드는 새 문화
지난해 12월23일 열린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작품집 출간기념회의 모습. 마리서사 제공

만남을 금지했던 팬데믹 시대 들어 주춤했다지만, 전국 각 지역에서 ‘독립서점’ 또는 ‘동네책방’ 성격을 지닌 책방들이 800여곳가량 운영 중이다. 여기를 주로 찾는 독자들은 저마다 자기 글의 주인인 ‘작가’이기도 하는 것이 이 새로운 책방들이 지닌 특색. 지난해 열린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공모전은 이처럼 지역과 독립서점, 글쓰기가 만나는 오늘날 새로운 ‘책 문화’의 모습을 잘 보여준 사례다.

군산초단편문학상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의 ‘지역출판산업활성화지원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군산의 독립서점들이 주도해 벌인 사업이다. 6~8월 공모를 진행해 9월에 대상 수상작을 선정했고, 최근 수상작품들을 모은 ‘2023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작품집’(프로파간다)을 펴냈다. 등단하지 않은 개인들의 작품을 모아 작품집을 펴내는 일이 종종 있다지만, 지역 책방들이 벌인 ‘문학상’ 이벤트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첫 행사인데도 무려 2719편이 접수되는 등 열기 또한 남달랐다.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작품집 표지.

공모전을 기획한 군산의 독립서점 ‘마리서사’ 임현주 대표는 “처음엔 500편 정도를 기대했”단다. 임 대표가 책방을 차린 2017년 이후 군산에 책방들이 여럿 생겼는데, “책방 손님 대부분이 독자이면서 ‘예비 저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마침 진흥원 지원사업을 계기로 군산의 동료 책방 12곳(마리서사·그림산책·리루서점·버틀러북스토어·봄날의산책·시간여행자의책방·심리서점쓰담·양우당·예스트·조용한흥분색·하늘책방·한길문고)과 우만컴퍼니(문화기획단체), 프로파간다(출판사) 등이 합심해서 일을 벌이게 됐다고 한다.

군산초단편문학상은 참가 자격, 공모 분야 등을 모두 ‘제한 없음’으로 두었다. “원고지 1~50매 내외”로 ‘초단편’이란 분야를 제시했을 뿐이다. 처음엔 ‘군산’이란 테마를 살리고 싶은 욕심에 군산을 다룬 응모작에는 가산점을 줄까도 논의했으나, 아무 제약도 두지 않는다는 취지에 맞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등단 작가들이 응모할 수 있는 문학 공모전이 전국적으로 적지 않으나, 이렇게 자격뿐 아니라 형식이나 분량까지 열어둔 사례는 흔치 않다. 이 ‘제한 없음’이 기획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열기를 불지핀 셈이다. 강형철(시인)·류보선(문학평론가)·신유진(작가·번역가)이 심사를 맡았다. 투견용 늑대개를 사육하는 인간의 오만한 시각을 거꾸러뜨리는 ‘팀버’(대상·이은미), 매일 나무에 오르는 소년에 대한 희곡 ‘호모 콰이어트 사피엔스’(가작·박우림), 지옥에 온 생물을 분류하는 일을 맡은 생물학자의 이야기 ‘지옥의 생물학자’(가작·양준서), 어머니의 삶을 갯벌에 투영한 시 ‘갯벌이라는 이름, 어머니’(가작·이생문) 등 작품집에 실린 여러 작품들은 이 제한 없는 공모전이 새로울 뿐만 아니라 깊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군산 지역 책방들이 지난해 만든 ‘군산 동네서점 지도’.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 포스터.

류보선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여기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들끓는 열정들을 제1회 군산초단편문학상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이 소설을 컴퓨터 하드에만 보관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한 이야기가 이대로 영영 잊히지 않고, 누군가에게 닿길 바랐다”는, 응모우수상을 받은 반히 작가의 소감이 이 ‘들끓는 열정’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열정이 자기 밖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깔아주고 있는 것은 저마다의 색깔로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독립서점들이다. 임 대표는 “지역마다 생긴 독립서점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 덕분에 책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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