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그.래.도] 내가 밥을 먹듯, 가자에선 사람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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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세번 만에 지쳐버렸다.
매주 토요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여는 집회에 세번째 참여한 날, 한 목사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가족들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결혼식을 오래 한대요." 나는 시금치나물, 계란탕, 어묵볶음을 먹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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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 자유기고가
딱 세번 만에 지쳐버렸다. 매주 토요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여는 집회에 세번째 참여한 날, 한 목사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나는 시계를 봤다. ‘추운데 빨리 끝내지.’ 아스팔트에 맞댄 엉덩이가 아파 짜증도 났다.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숫자에도 익숙해졌다. 숫자엔 체온도 피도 없다.
가자전쟁 백일,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만4천여명, 그중 70%는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쓰면서도 나는 이게 얼마만큼의 고통인지 상상할 수 없다. 서울 절반을 조금 넘는 넓이(360㎢) 가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고, 하루 평균 어린이 10명이 한쪽 또는 양쪽 다리를 잃는다는데(세이브더칠드런 발표), 나는 알고 싶지 않다. 알면 괴롭다. 내가 밥을 먹듯, 가자에선 사람이 죽는다. 둘 다 일상이다. 집회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이게 무슨 소용일까.
목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배가 고팠다. 옆에 앉은 활동가를 쳐다봤다. 25년 동안 팔레스타인 문제에 천착해온 그는, 울고 있었다. 매주 빠지지 않고 이 자리에 서는 그는 귀가 빨개진 채, 마치 친한 이 부고를 방금 접한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대체 그런 공감이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웠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땅, 한번도 만난 적 없는타인을 향한 그 고통스러운 공감이 경이로웠다.
그 뒤 몇주 동안 나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집회에 가지 않았다. 활동가는 집회 소식을 카톡으로 알려줬다. 폭설이 내린 지난달 30일, 사진 속 시위대의 우산 위로, 머리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그날 집회에서 방현석 작가는 “가자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행위에 대해 침묵한다면 세계 어디에서나 강한 자는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그런 피해자가 되기로 자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세상은 원래 그런 곳 아닌가’ 하며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집에서 밥을 먹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17차례, 매주 모여 외쳤다. “프리 팔레스타인!”
“어떻게 그렇게 계속할 수 있어요?” 1인분에 8천원 하는 한식뷔페 집에서 그 활동가와 밥을 먹은 날, 물었다. “안 할 수 없으니까요. 팔레스타인에서 계속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응답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충남 공주에서 유학 중인 한 이집트 학생은 집회에 참여하려고 거의 매주 혼자 서울로 올라온다고 했다.서안지구 이스라엘 정착촌에 둘러싸여 살던 팔레스타인 유학생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해줬다.옆 마을 사촌 결혼식에 가려면이스라엘 검문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단다. “가족들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결혼식을 오래 한대요.” 나는 시금치나물, 계란탕, 어묵볶음을 먹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스라엘 국가가 서고 하루아침에 고향에서 75만명이 쫓겨난 지 벌써 76년이 지났다. 이스라엘 불법 점령지는 계속 늘고 팔레스타인의 땅은 점처럼 남았다. 그 점처럼 남은 감옥에 수시로 폭탄이 떨어졌다. 유엔이 무슨 결의를 하건 이스라엘이나 미국은 꿈쩍 안 한다. 국제사회는 석달 만에 팔레스타인 사람을 2만명 넘게 죽여도 이스라엘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못한다. “100년 전엔 여자에겐 투표권이 없었잖아요. 200년 전엔 흑인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바뀌었잖아요. 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을 돌아가는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해요.” 100년 뒤, 200년 뒤라면당신과 무슨 상관이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염치가 없어 밥만 우걱우걱 먹었다.
저물녘 잠자리 찾는
한 떼의 새
내게 깃들인다.
어스름 속에 서 있는 나는
한 그루 나무
팔꿈치에, 어깨에, 머리카락에, 가슴에
새들이 파고들어
밤새 내는 소리가 아무리 괴로워도
쫓아낼 수 없다.
그 많은 새들이 다 내 형제들의 영혼
나는 그들의 집이 되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시인 무함마드 자카리아의 ‘저물녘’
지난 13일은 국제 행동의 날이었다. 한국을 포함해 45개국 121개 도시에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연대를”을 외치며 걸었다. 새를 껴안지 않는 나무도 자신을 나무라고 느낄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데, 타인을 사랑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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