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가’ 사설 달고 ‘날쌘 제비’ 너름새 날다…명창 김정민 23번째 ‘득음’ 판소리[이사람]

강석봉 기자 2024. 1. 19. 06: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어온 판소리 ‘흥보가’ ‘적벽가’ 공연
23번째 완창, 20일 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
이번엔 판소리 ‘흥보가’, 또다시 매진 무대
소리 전통 틀어잡고, 시각 예술 변주하고
명창 김정민



‘제비 몰러, 관객 후리러 나간다.’

오는 20일 돈화문국악당에서 펼치는 명창 김정민의 23번째 완창 판소리에 대한 전예측이다.

이번 무대도 매진 행렬이다. 차고 넘친 객석에 제비처럼 몰려든 관객을, ‘득음’ 판소리로 그 마음을 후려 취향 저격할 게 뻔하다.

단정적 프리뷰 전 리뷰는 이전 공연에 대한 오마주다. 수많은 국내 공연에서 터진 객석의 추임새는, 두 번의 이탈리아 공연과 프랑스의 처녀 공연에서 그 열기를 이었다. 또다시 오는 4월 프랑스 공연을 앞둔 갑진년 첫 완창 공연인 이번 무대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판소리 오작교다. 결국 노둣돌에 올라 기승한 것은 말이 아니라 청룡인 셈이다. 갑진년 ‘값진’ 공연이 개봉박두다.

판소리 ‘흥보가’의 한 장면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인 명창 김정민은 도전적이다. 당돌한 그는 ‘돗자리를 거부했다. 병풍’에도 의지하지 않겠단다.

시대가 바뀌었다. 야외무대가 아닌 실내 무대에서 펼치는 공연이다. 그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

야외 공연은 광활한 공간으로 산란하는 시각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에 비해 실내 무대는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김정민의 비기는 너름새다. 무대에서 뛰고 날며 관객의 시선을 죄며 푼다. 3만 자가 넘는 사설은 프롬프터가 아닌 그의 머릿속에 있다. 개 목줄에 발목 잡힐 일은 애저녁에 없다.

판소리 ‘적벽가’의 한 장면



이 때문에 그의 판소리 무대는 논란을 불러오기도 한다. ‘가만히 좀 서서 부르라’는 핀잔도 없진 않다. 하지만 10년간 이어온, 그의 무대는 되돌릴 수 없는 시대 정신이 됐다. 누구보다 많이, 누구도 하지 못한 정기 공연을 통해 유료 관객을 모은 그의 공연은 대세가 됐다.

그는 “병풍 앞에서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3∼5시간 붙잡아 둘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무대는 변주해도 그의 판소리는 정통을 단단히 틀어잡고 있다.

명창 김정민



김정민은 고 박송희 명창의 제자이자 박록주 명창의 손제자로, 박송희 명창으로부터 ‘흥부가’와 ‘적벽가’를 사사했다.

판소리는 전승 지역에 따라 호남 동부 지역의 ‘동편제’, 호남 서남부 평야 지역의 ‘서편제’라 부른다. 김정민의 흥보가는 동편제다. 조선 말기 명창 송흥록으로부터 이어진 소리재는 뱃속에서 위로 뽑아내는 통성(通聲)으로 노래한다. 이를 ‘대마디 대장단’ 창법이라 하는데, 남자 소리처럼 ‘꾹꾹’ 눌러주고 ‘확확’ 내지른다.

무대를 벗어난 그의 활동도 그의 무대처럼 변화무쌍하다. 1994년 판소리 소재의 영화 ‘휘모리’ 주연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MBC·KBS·EBS 등에서 강연 ‘우리소리 우습게 보지 마라’로 국악을 알렸다. 최근에 강연식 국악 공연이란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잔칫날’ 등 트로트 곡을 내기도 했고, 화장품 회사(지오앤위즈) 대표이기도 하다.

명창 김정민



김정민 명창의 다양한 활동은 판소리 대중화라는 밑자락이 숨겨져 있다. ‘트로트로 전향하는 후배나 제자의 현실도 되돌리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트로트를 불러도 처음처럼 국악으로,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지속 가능한 국악에 투자하겠다.”

우리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시나브로 피어오른 유럽의 K-판소리에 대한 관심이다.

김 명창은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2019년 완창 무대를 선보인 이후 매년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22년 6월에는 밀라노에 있는 1400여 석 규모의 테아트로 달 베르메 극장에서 ‘적벽가’ 공연으로 좌석을 매진시켰다. 프랑스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정되어 있다. ‘K-판소리’가 알려지면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감독 레오나르도 치니에리 롬브로조의 제안으로 다큐멘터리 ‘오페라 솔로’(가제)도 현재 촬영 중이다.

제비는 판소리 흥보가의 ‘제비노정기’에서 축융봉-희안봉-황릉묘-봉황대-황학루 등 십이제국을 거치며 강남에 이른다. 김정민의 판소리는 제비의 여정을 훌쩍 넘어 유럽을 물들였다. 이제 보은표 박씨를 물고 돌아온 제비처럼, 다시 한국에서도 판소리가 부활하는 역사를 예비한다. 그 중심에 명창 김정민이 있다.

명창 김정민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