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3위 등극한 메리츠, 일등 공신은 화재... 외국인 투자자들은 뭘 봤나
메리츠화재, 지주 순익 기여도 70% 이상
중형사지만 실적은 업계 1위 삼성화재 앞질러
공격적 투자, 장기인보험 집중, 손해율 관리, 빠른 의사결정 덕
부동산 PF 부실 우려는 불안 요인
신년 들어 대부분 대형주가 추풍낙엽이지만,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다르다. 지난해 4월 메리츠화재와 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해 통합 지주사로 출범한 메리츠금융은 시가총액에서 하나금융을 제치고 금융지주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약삭빠르고 경영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메리츠금융그룹은 다른 금융회사들과 도대체 어떤 점이 다른 걸까.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메리츠금융지주는 전 거래일 대비 700원(1.19%) 오른 5만9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16일 6만1100원에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메리츠증권은 시총 12조4260억원을 기록하며 KB금융, 신한지주에 이어 세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주가는 16일 기록한 최고가와 비교하면 소폭 내린 수준이지만, 지난해 4월 통합 출범 첫날의 주가(4만5600원) 대비 30% 넘게 오른 상황이다.
주가 상승은 외국인 덕분이다. 작년 1월 당시 외국인 지분율은 5%대였다. 지난해 2월 외국인 보유 지분이 13%대로 커지더니 합병, 그리고 이후로도 지속된 순매수 덕분에 지금은 17%가 넘는다. 올해 들어서도 외국인은 90억5455만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메리츠금융 계열사들은 모두 실적이 좋지만, 최근 가장 돋보이는 곳은 메리츠화재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기준 메리츠화재(1조3400억원)가 메리츠금융(1조7991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4.5%에 달한다. 전년(58.94%)보다 비중이 더 커졌다. 증권가에서는 작년 연간 메리츠화재의 예상 순이익을 1조6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이는 메리츠금융의 연간 예상 당기순익(2조2620억원)의 70%를 웃돈다.
메리츠화재는 2022년 총자산과 보험수익 기준 10.9%, 11.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중상위권(5위) 보험사다. 빅4에는 아직 진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적은 최상위권이다. 지난해 3분기 메리츠화재는 당기순이익 4963억원을 기록해 분기 기준 실적으로 업계 1위인 삼성화재(4032억원)를 앞섰다. 누적 기준으로는 DB손해보험을 앞지르고 업계 2위를 기록 중이다.
최근 손해보험사 실적은 ‘착시’가 많다는 것이 업계 전반적인 평가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의 고객서비스마진(CSM)은 어느 정도 ‘마사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CSM이란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보험계약의 미래 이익을 현재가치로 나타낸 지표인데, 구체적 산출 기준이 없다 보니 보험사들이 스스로 낙관적 전망을 내놓기 일쑤였다. 주목되는 것은 빅4 모두 지난해 상반기 CSM이 3000억~7000억원 늘어날 때 메리츠화재는 3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뻥튀기’가 덜 한데도 3분기 기준 CSM이 1조2400억원으로 삼성화재보다 높았다.
장기보험에서는 7조1295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업계 4위를 차지했다. 삼성화재와의 차이도 1조원 수준으로 4년 전(약 4조원)과 비교해 격차를 줄였다.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지표인 신지급여력제도 비율(K-ICS)은 지난해 3분기 기준 229.3%이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권고 수준인 150%를 크게 웃돈다.
메리츠화재의 성장 배경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가 있다. 보험사들은 저금리 시기 운용수익률을 높이고자 부동산 PF 투자에 나섰는데, 메리츠금융이 제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작년 3월 말 메리츠화재의 국내 PF 대출은 9조4000억원으로, 운용자산의 28.7%를 차지한다.
이 덕에 기업이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총자산이익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메리츠화재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평균 총자산이익률(ROA)은 2.35%이다. 이는 업계 평균의 약 2배 수준이다. 부동산 운용뿐만 아니라 장기보험 판매가 증가하면서 매출이 커진 점도 총자산이익률 상승에 영향을 줬다. 같은 기간 평균 운용자산 이익률은 4.26%로, 업계 평균(3.22%) 대비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메리츠금융 내부에서는 빠른 의사 결정으로 타사 대비 이익 극대화 전략이 수월하다고 평가한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확보가 필요했던 롯데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작년 1월 1조5000억원 규모의 공모 펀드를 결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메리츠금융은 선순위로 9000억원을 출자하고, 롯데그룹이 후순위로 6000억원을 부담했다.
한 증권사 사장은 “당시 우리도 유사한 사업을 검토했는데, 투심위 등을 거치려니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항상 느끼지만, 메리츠금융은 의사결정 구도가 간단한 것이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 돌입 등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부동산 금융 비중이 높은 메리츠화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메리츠화재의 건설업·부동산·임대업 대출 잔액은 9조6892억원이다. 전년 동기(6조8572억원) 대비 41.3% 증가했다.
연체액은 손보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작년 3분기 기준 메리츠화재의 건설업·부동산·임대업 대출 채권 연체 금액은 2046억8600만원으로, 전분기(1586억2600만원)보다 약 30% 늘었다. 같은 기간 흥국화재는 309억원, 롯데손보 160억원, 현대해상 2억원으로 집계됐다.
메리츠화재는 부동산 PF와 관련해 ROA에서 볼 수 있듯이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고,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메리츠화재에 따르면 부동산 PF 관련 선순위 대출 비중은 98%고, LTV(주택담보대출비율)도 42% 수준이다. 선순위는 후순위보다 고객사에 문제가 생기면 먼저 상환받을 수 있는 대출 방식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부동산 측면에서는 해당 부서의 목표에 맞게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다”며 “다만 시장 변화에 따라 투자 자산을 다각화하고,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연체액이 증가했으나, 자산운용 금액에 비하면 크게 문제 될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수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증권가 전망은 낙관적이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부동산 등의 영향으로 4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메리츠금융은 이를 비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물론 아직 4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만큼 ‘어닝쇼크’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예상 밖 부진은 없을 것으로 본다. 증권가에서 6개월 전 추정한 메리츠금융 지배주주순이익은 4783억원이었는데, 1개월 전엔 4940억원으로 도리어 올랐다.
손해율 관리 측면에서도 돋보인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메리츠화재는 자동차보험에서 79.6%의 비교적 안정적인 손해율을 기록했다. 손해보험 업계에서는 자동차보험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손해율을 80%선으로 집계한다. 메리츠화재는 손보사 중 점유율이 6.7%로, 다른 대형 손보사들에 비해 점유율이 높지 않다. 메리츠화재는 몸집을 키우는 대신 손해율 관리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즉 자동차보험처럼 돈이 안되는 쪽은 힘을 쏟지 않는다는 얘기다.
메리츠화재는 2025년까지 ▲장기인보험 매출 1위 ▲당기순이익 1위 ▲시가총액 1위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특히 장기인보험 매출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암, 치매 환자 등의 급증에 대비해서도 손해율 관리를 지속해서 하고 있고, 시장 변화나 추세에 맞춰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메리츠금융은 지주 차원에서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펼치며 주주들의 투심을 잡고 있다. 작년 메리츠금융은 향후 당기순익의 50%를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자회사를 합쳐 소각한 자사주는 총 5888억원에 달한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감소하는 주식 수만큼 주당 환원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합산한 메리츠금융의 배당수익률은 작년 9.4%, 올해 11% 수준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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