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나면' 시(詩)처럼 새길을 열어온 '아픈 의사'
사회를 보듬는 작가… "나의 첫걸음은 누군가에겐 길"
지난 6일 서울 중구 메디치미디어 스튜디오.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 북콘서트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북콘서트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그는 콘서트를 찾은 오랜 인연들과 인사를 나눴다. 40년 지기 대학교 선·후배, 그리고 제자. 모두 가볍게 지나치지 않았던 친구이자 동료이며 동지였다.
"책을 쓸 땐 사실 아팠던,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에서 겪은 세 번의 큰 수술과 이어지는 고통, 당시엔 우울증 치료를 통해 모든 것을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치유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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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술 이후 담도 폐쇄증이 발병했습니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은 뒤 1999년 담도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지만 2003년부터 다른 양상의 복통이 시작됐죠.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종양이 있었습니다. 입원도 수술도 처음은 아니었는데 눈물도 나지 않았더라고요. 친구가 가져다준 논문에서 대장암 3기의 5년 생존율은 50% 남짓이란 걸 알았습니다. 죽음 앞에 선 상황은 스스로를 향한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리석었죠."
암 수술과 항암 치료의 부작용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더 다지게 됐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병마보다 더 냉혹한 현실을 목도했으니 바로 생계 문제였다.
"노동강도가 높지 않다면 의사로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당시 '의료의 질' 평가를 시작한 심평원으로 공채를 통해 입사했습니다. 다른 건강한 사람과 경쟁을 하면서 일을 한다면 민폐였을 텐데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나라도 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죠."
일과 치료를 병행한 그는 2009년 7월1일 담당 의사로부터 '졸업장'을 받아냈다. 2020년 첫 내부승진으로 제10대 심평원 원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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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선택한 곳은 예사 병원이 아니었다. 태백병원은 탄광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폐 질환인 진폐증 환자를 주로 돌봐온 곳이었다. 최근엔 일반 질환, 소음성 난청이나 근골격계 질병을 호소하는 환자 가 늘어났다.
흰 가운을 입은 김 작가의 일상은 매일 오전 8시30분 시작한다. 근골격계 질병으로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하는 환자는 1~2명 정도다. 그는 "근골격계 직업병을 신청하는 환자들은 직업력이 복잡하다. 한곳에서만 일하지 않고 여러 회사를 돌아다닌 경우가 많다"며 "광산 광부로 또 건설현장 인부로, 아파트 경비원으로 직업병 여부를 어떻게 평가할지 늘 고민이 뒤따른다"고 털어놨다.
그는 20년이 넘도록 한 일터에서 일했지만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탓에 직장이 계속 바뀐 한 환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김 작가는 "직업병 환자의 진료를 보면 그 사람의 수 십년 인생을 듣게 된다. 어떨 땐 무력감과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다"면서 "의료인의 의무이자 의미 있는 노동으로서 그런 환자를 보다 정확하게 진료할 수밖에 없었다"고 되돌아봤다.
태백병원에서는 일반 진료도 이뤄진다. 검사 결과를 종합해서 환자에게 의심 질병과 식습관, 운동 등 다양하게 조언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김 작가는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높은 상황이 지속되는데 약을 거른다거나 흡연을 하면 약간의 협박과 겁을 줘 생활습관을 고치도록 유도할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김 작가는 자신을 "개척자"라고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픔과 일상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왔던 삶에 대한 평가였다. "어쩌면 모든 인연이 저를 여기까지 끌어준 것 같다"는 그는 박노해 시인의 '길이 끝나면' 싯구를 소개했다.
"길이 끝나면 거기/새로운 길이 열린다//~중략~//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박노해 '길이 끝나면')
사회에서 병원으로 발길을 옮긴 그는 병원 속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김 작가는 "거창한 말은 아니지만 누구를 닮았으면 좋겠고 배울 사람을 찾는 것보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나의 첫걸음이 다음 사람에게 길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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